[도민과 함께 한 제주대병원 20년] ⑤상급종합병원 격상 목표, 송병철 원장 "도민-지역 윈윈하는 선순환"

제주를 대표하는 거점 의료기관이자 도민의 의료 안전망 역할을 자임하며 지난 2001년 문을 연 국립 제주대학교병원이 지난 11월 1일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열악한 의료체계를 극복하고, 인술을 펼치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뒤따랐다. 제주대병원의 역사는 곧 제주 공공보건의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의소리]는 약 100여 년 전 제주 근대 의료를 태동시켰던 제주자혜의원으로부터 오늘날 제주대학교병원이 의료자치 실현에 도전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되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향한 비전과 과제를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 주
제주대학교병원 설립 20주년을 맞아 병원 로비에 설치된 연혁표. ⓒ제주의소리
제주대학교병원 설립 20주년을 맞아 병원 로비에 설치된 연혁표. ⓒ제주의소리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와 마주하며 공공의료의 가치는 빛을 발했다. 지역 내 종합병원 중 하나로만 여겨지기도 했던 제주대학교병원은 갑작스런 감염병의 위협 속에서 지역거점병원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교육부의 한해 예산 중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에 투입되는 예산은 불과 500~6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국립대병원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다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스스로 자생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온 것도 사실이다.

 유의미한 100억원의 적자…공공의료 가치는 빛났다

'밑 빠진 독'이나 다름 없었던 코로나19 국면에서 제주대병원은 공공의료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도맡았다. 필수 인력을 더 확충하고 시설비를 들여 내부 시설을 수 차례 뜯어고쳤다. 병원의 성장폭은 줄었고, 2020년 적자는 100억원대를 넘어섰다. 누군가에게 청구할 수도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는 곧 국립대병원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도민들의 인식에 깊이 각인된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국가기관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제주도가 병원 증축을 위해 선뜻 지방비 일부 지원을 결정해준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섬 제주는 대대로 의료인프라가 열악했다. 큰 병이 들면 소위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가기 일쑤였다. 과거에 비해 상당한 개선을 이뤘다고는 해도, 오늘날까지 외부 의료유출 규모는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제주도민이 원정 진료로 인한 관외의료 유출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관외 유출 환자 비율이 7.4%에서 2019년 8.4%로 증가했다. 관외 의료비 지출도 2015년 1068억에서 2019년 1930억원으로 증가했다. 10년 전인 2009년 관외 유출액이 964억원임을 감안하면 10년간 2배 이상 증가한 결과다. 외부 의료기관 진료비 지출 비율은 16.7%로 올라섰다.

송병철 제주대병원장은 앞으로 병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핵심 키워드로 '의료자치'를 꼽았다. 제주도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의료 인프라가 지역 내에 완비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타 지역보다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이 높다. 전국적으로 병상 기준 10%가 공공의료인데, 제주도는 30%가 넘는다. 제주대병원에 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다.

   ‘충분치 않은 도민신뢰’ 가장 큰 숙제 풀겠다

송 원장은 "제주대병원이 미래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제주대병원에 가장 바라는 역할은 '도내의료전달 체계의 최종 책임을 지는 병원'이었다. 방문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본인 혹은 가족이 수술 등을 요하는 중증질환으로 입원이 필요 시 어느 병원을 이용하겠느냐'라는 물음에 내원 고객의 약 28.5%정도가 수도권 및 타지역 상급종합병원을 선택했다"며 "이러한 조사 결과는 아직도 제주도민들에게 제주지역 의료기관이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도민의 선택은 결국 도외 의료기관으로 원정 진료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이러한 악순환은 제주대병원을 포함해 제주지역 의료기관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제주대병원은 의료자치 실현을 위해 2030년 이전에 의료비 관외 유출율을 10% 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국내에서 의료질 및 의료시설이 가장 좋은 서울, 부산, 대구 등의 관외 의료 유출율이 10% 전후라는 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송병철 제주대학교 병원장.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송병철 제주대학교 병원장. ⓒ제주의소리

이와 연계해 제주대병원은 이제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진입을 목표로 두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이란 중증질환 등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종합병원을 뜻한다. 우수한 의료인력과 의료시설, 전공의 수련 및 교육기능, 향상된 의료서비스 등의 조건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준비돼야만 인정될 수 있다.

전국적으로 45개의 상급종합병원이 위치해있지만, 제주에는 한 곳도 없다. 현재 지정된 상급종합병원은 대부분 800~10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이다.

이미 제주대병원의 경우 입원환자 중 전문진료질병군 비율이 30% 이상이고, 단순질병 환자의 비율이 14%를 밑도는 등 상급종합병원으로서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전문진료질병은 중증질환 진단과 고난이도의 치료를 요하는 경우에 분류된다. 암이나 뇌줄중, 심근경색과 같은 질환이 이에 속하지만, 보다 더 엄중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중증도가 결정된다. 가령 위암으로 입원한 환자가 폐렴 등으로 입원 치료하면 일반진료질병으로 분류되지만, 위절제술을 시행해야 할 경우 전문진료질병으로 분류된다. 폐혈증 쇼크가 와도 입원치료만 필요로 할 경우 일반진료질병이고,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게 되면 전문진료질병이 된다.

즉, 다른 병원으로 이관시키지 않아도 병원 자체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최근 제주대병원의 관련 지표는 기존의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제주대병원은 의료서비스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 항목 중 심장·뇌 질환, 암 질환, 예방적 항생제를 사용하는 수술, 중환자실 등의 항목에서 모두 1등급을 획득했다. 유일하게 2등급을 받은 신생아 중환자실 평가의 경우 간호인력 부족에 따른 것으로, 올해 충원을 통한 1등급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전 세계의 여러 기관의 수준을 평가하는 SCIMAGO 연구소의 국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에서도 제주대병원은 국내 의료기관 중 34위에 올라있다. 제주대병원의 의료 수준이 전국 상위 10% 이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최소 국내 상급종합병원 10개 보다는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다만, 제주대병원은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규모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상급종합병원 평가항목 중 의료인 수와 전공의 수련 진료과 수 등을 평가하는데, 의료인들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비수도권 지역의 병원으로써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의과대학 학생 정원이 40명인 제주대병원은 인력 수급 면에서도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지역 한계 극복한 상급종합병원 진입 목표  

제주대병원이 제2의 도약을 꿈꾸며 기존의 660병상에서 800병상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수립한 것은 필연적인 조치였다. 단순 양적 확대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진입 기반을 확립함과 동시에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여나가기 위한 복안이다.

현재 계획된 증축 병동은 제주대병원 본관의 동쪽 부지에 위치하고 있다. 해당 건물 내에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까지 모두 만들어 일종의 '하이브리드 작은병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했다. 대형 재난사고에 대비함은 물론, 감염병 대응 시국에서는 일반환자와 겹치지 않는 격리병동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게 된다.

송 원장은 병원 시설 투입에 따른 선순환을 꿈꿨다. 그는 "착한 적자는 없다고 본다. 적자가 생기면 재투자가 되질 않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제주도민들에게 돌아간다"며 "기존 서울로 가던 의료비가 1900억원이라면 이중 10%의 발길만 되돌려도 190억원, 절반을 되돌리면 800~900억원이 제주로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그는 "중증질환 환자를 제주대병원이 수용하게 되면, 꼭 우리 병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증 환자는 지역내 다른 종합병원으로 갈 수 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라며 "병원의 수익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선순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 원장은 "새 병동이 완공되면 제주대병원은 진정한 의미의 대학병원의 역할과 함께 재난 의료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제주도민들이 십시일반 후원과 제주도의 재정적 지원도 이뤄지는 등 도민의 건강증진과 안전을 위해 협업하는 좋은 모델이 자리잡고 있다"며 "도민들이 함께 일궈낸 자랑스러운 도민의 병원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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