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58) 땅도 못 견디게 굶면 농사 잘 안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못 존디게 : 못 견디게  
* 굴민 : 굴면
* 용시 : 농사 / ‘용시’ 또는 ‘농소’→ 농사

땅도 숨을 쉰다고 한다.

이따금 한두 해 농사를 쉬었다 해야지 계속 작물을 재배하면 소득이 매우 안 좋다는 얘기다. 땅도 무리해 농사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못 견디게 군다’고 의인화한 표현이다. 

사람이 일하다 지치면 고단한 신체에 휴식을 취해서 원기를 회복해야 하듯이, 땅에 농사짓는 것 또한 같은 이치라는 것을 매우 실감 나게 나타냈다.

1971년 8월부터 10월 사이 제주도 오라1동에서 촬영한 사진. 밭모퉁이에서 숯을 굽기 위해 흙과 건초들을 쌓아올리고 있다.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8월부터 10월 사이 제주도 오라1동에서 촬영한 사진. 밭모퉁이에서 숯을 굽기 위해 흙과 건초들을 쌓아올리고 있다.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워낙 토질이 척박한 제주도는 예로부터 농민들이 이로 인해 보통 골머리를 앓았던 게 아니다.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땅에 곡식을 갈아 거둬들이려고만 했으니 밭이 기가 빠져 농사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래서 토질을 좋게 한다고 퇴비로 밑거름을 하고. 흙을 북돋워 주는가 하면, 작물이 자랄 때에도 중간 중간에 오줌을 등짐으로 지어 날라 뿌려주곤 했다. 한겨울 찬바람 속에 바닷가에 밀려오는 듬북을 걷어가 말려 눌을 눌었다가 파종할 때 밭이랑에 깔아주곤 했던 것이 모두 약해지 토질을 회복시키려 한 궁여지책이었다.

지금은 농촌에 가 봐도 이런 퇴비나 듬북으로 거름을 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들 화학비료를 쓴다. 그리고 검질매는(김매기) 대신 제초제(독한 농약)를 뿌려 그때그때 해결하고 있다. 고식지계(姑息之計)로 임시변통이다. 흙의 산성화가 급히 진행될 게 뻔한 일이라, 우리 농촌의 앞날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긴 안목에서 토지의 기를 돋우기 위해 한 해 농사를 쉬었다가 하는 ‘휴식년제’를 받아들여야 하리라. 한 농부가 평생을 두고 단 일 년도 쉬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냥 일인가.

한라산을 비롯해 오름 등에 일정 기간 입산 금지를 하는 것이 휴식년제와 같은 맥락이다. 한라영산이며 기기묘묘한 이 섬의 오름들이 외부에서 몰려드는 매니아들 발길에 얼마나 신음하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거친 발길에 파이고 무너지고 한 상흔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얼마나 못 견디게 굴었으면 그랬겠는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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