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57년째 삶을 이어가는 이곳, 제주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꼭 와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섬이다. 내가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 땅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문화적 혜택과 교육의 기회가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10여 년 전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직업재활교육을 받기 위해 몇 년간 서울살이를 할 때도, 제주에 없는 교육의 기회를 가져보고자 낯선 공간임에도 열심히 ‘배울 수 있는 것’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제주로 돌아와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찾아오자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즈음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우리를 지도해주셨던 복지관 선생님으로부터 ‘에스페란토’를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교육이 어려워 카카오톡을 이용한 비대면 교육으로 진행하기에 오히려 공간적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에스페란토’는 낯설었지만 국제어라는데 마음이 끌렸고, 예전부터 외국어 하나쯤은 꼭 배워 외국인과 회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 오랜 꿈을 흔들어 깨웠다. 그 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가까이에 있는 핸드폰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시작했다.

에스페란토는 폴란드에 살고 있던 자멘호프 박사가 창안해 1887년에 공포한 일종의 국제어이다. 자멘호프 박사는 어린 시절 민족들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또한 한 국가 내에서도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겪으면서, 하나의 언어인 국제어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마침내 에스페란토를 창안해 그 바람을 실현했다. 

특히 그는 이 언어가 세계평화를 위한 도구로 쓰이기를 바라며, 인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이 언어를 창안하고 공표했는데, 민족 내부에서는 민족 고유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공통어로 사용하자는 것이며,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문법구조를 단순화시켰다. 또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언어 외에 모든 면에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에스페란토주의’라 불리우며 이 정신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급·전파되어 지금은 전 세계에 120여 개국에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가 있다고 한다.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는 에스페란토를 배워가며, 나는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중학교 때부터 배운 영어, 고등학교 때 배운 제2외국어인 프랑스어, 몇 년 전 배워본 중국어 등 공부는 했지만 정작 그 언어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내가,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zoom이나 skip를 이용해서 외국 에스페란티스토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가치를 학습방에서 함께 공부도 하고, 온라인으로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코로나블루를 함께 이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가 안겨 준 일종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내면세계가 좀더 넓어지고 풍요로워졌다고나 할까?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1년에 한 번씩 세계 각 나라로 돌아가며 “에스페란토 세계대회”가 개최되는데 그때는 세계 각국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모여 전혀 통역 없이 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두 차례 이 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하는데 진작 에스페란토를 배우지 못해 그 좋은 기회를 흘려버린 것이 참으로 아쉽다.

고동완. ⓒ제주의소리
고동완. ⓒ제주의소리

하루 빨리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어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세계대회에 참석해 세계의 친구들에게 ‘나는 한반도 남쪽에 있는 아름다운 평화의 섬 제주에 살고 있노라’고, ‘마음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신나게 에스페란토를 익히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외국어 회화를 하고 싶은데 망설이고 계신 분,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으신 분, 언어를 넘어 세계평화를 꿈꾸고 계신 분들에게 에스페란토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 고동완 한국에스페란토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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