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슬픈 역사 서려 있는 가시리
제주4.3 슬픈 역사 서려 있는 가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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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의 제주마을 이야기] 가시리마을①
지난 몇 달간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이어 한EU 자유무역협정 소식이 들려왔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이라 분은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뜻을 발표했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해군 항을 지어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만들겠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덜 서러웠을 것이다.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에 사과한다"고 했던 대통령이 지금 자신이 행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왜 저리도 무감각한지 궁금하기만 했다.

 
▲ 가시리 마을
ⓒ 장태욱
 

태풍 마니가 지나가면서 장마 기운까지 품고 갔는지, 아침이 되니 오랜 만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오랜 장마와 장마를 닮은 우울한 소식들 뒤에 찾아온 푸른 하늘을 보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푸른 희망을 찾아 표선면 가시리로 가보기로 했다.

 
▲ 가시리 마을에는 광활한 목장이 있다.
ⓒ 장태욱
 

가시리는 제주도의 동남부에 위치한 중산간(中山間) 마을로, 표선면 전체 면적의 41%에 해당하는 광활한 면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750여ha에 이르는 넓은 가시공동목장으로 인해 축산업이 활성화되어 있고, 감귤과 콩, 무, 고구마 등을 재배하는 대표적인 제주 농촌 마을이다.

 
▲ 과거 제주의 집들은 대체로 올래(길에서 마당에 이르는 진입로)가 길었다. 가시리에는 이렇게 올래가 긴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 장태욱
 

가시리는 아직도 농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후한 인심이 잘 남아 있고 토종닭과 토종 돼지로 만들어진 제주 전통 음식을 싼 값에 맛볼 수 있는 마을이다.

 
▲ 가시리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귤 농사가 보급되었다.
ⓒ 장태욱
 

가시리는 서기 1392년 고려충신 한천이 이조개국(李朝開國)에 불복해서 제주에 유배되어 정착한 후 설촌(設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 약100년 전에 인근에 변자위가 안좌리를 설촌(設村) 하였다는 한다. 1946년까지 가시리와 안좌리가 두 개의 마을로 이어 오다가, 도제(道制)실시로 두 마을이 가시리로 통합되면서 한 마을이 된 것이다.(서귀포시)

 
▲ 더덕을 재배하는 밭. 가시리 마을에서는 밭 작물이 여러 종류 재배된다.
ⓒ 장태욱
 

일제강점기에 제주민초들도 일제에 의해 강요된 강제이주의 아픔을 겪어야했다. 강제징용과 노동력 징발 등의 착취에 기인한 것들이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의해 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제주도의 대부분 중산간 마을이 그랬듯이, 가시리 마을 역시 해방 이후 큰 아픔을 겪었다.

 
▲ 안좌리 마을이 가시리와 합해져서 오늘날 가시리가 되었다.
ⓒ 장태욱
 

4·3항쟁 와중인 48~49년,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연합작전은 해안에서 4㎞ 이상 떨어진 중산간 마을을 완전히 초토화 시켰다. 1948년 12월 22일에는 가시리 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있던 주민들을 불러 세워 호적을 일일이 대조시켜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는 사람들을 골라내어 '도피자 가족(유격대의 가족)'이라고 몰아 76명을 집단 학살했다.

 
▲ 가시리 마을에서 마을 목장으로 들어서는 오솔길이다. 평온해 보이는 이 길로 주민들은 토벌대와 유격대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녀야했다.
ⓒ 장태욱
 

마을은 그렇게 초토화 됐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다른 마을을 떠돌아다니면 생활해야했다. 이날 희생된 주검들은 흙만 살짝 덮은 채 1년 정도 방치되었다가 49년에 가시리가 재건되면서 약간의 여유를 찾은 유족들이 하나 둘 찾아갔다(4·3연구소)

한미자유무역협정과 한EU자유무역협정 소식은 제주지역 농민들에게 또 한 번 고향을 잃거나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고하고 있다. 이들에게 닥쳐온 세계질서와 이 질서의 충실한 집행자인 국가가 이들에게 가해오는 폭력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 남게 될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거에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디론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 폐교된 가시국민학교 옛 터에는 '자연사랑'이라는 갤러리가 있다.
ⓒ 장태욱
 

그런데 1948년 비극의 역사를 목격했고, 최근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폐교의 아픔을 간직한 가시초등학교 옛 터에는 슬픈 과거에도 불구하고 '자연사랑'이라는 갤러리가 만들어져 있다. 모두들 낙심해서 농촌을 떠나고 있는 때 이 갤러리가 이 마을에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있을까?
 
 
가시리 마을 찾아가는 길 : 제주시에서 97번 국도(동부산업도로)를 따라 성읍민속마을에 도착한 후 서쪽으로 약 6Km정도 가면 가시리마을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제주시 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약 1시간 소요되고, 자가 운전자인 경우 약 45분 정도 소요될 것입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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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산방산 2007-07-19 22:40:25
가시리 마을공동목장. 정말 광활한 들판입니다.
그런데 그 공동목장은 가시리 소유가 아니라
모 재벌회사의 소유입니다.
22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