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제주기행(5)]강정마을②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는 섬 서건도

강정바다에 가보니 조그만 포구가 나왔고, 포구너머에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푸른 바다 위에는 범섬이 떠 있었는데 일찍이 윤봉택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이를 '태왁(해녀들이 물질할 때 구명부환으로 사용하는 흰색 기구) 띄운 섬'이라고 했었다.

강정포구에 와서
보아라
어느 섬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마음 닻 내리는
포구가 있나니,

고개 들어 마라도를 보면
이어도 건너는 길목이 보이고
물결 이는 이랑마다 노 저으며
허리 펴는 보재기들

물 우로 흐르는 범섬으로 닻 내리면
마파람에 옷 벗는 해안선
태왁 띄운 섬마다
이 마을 올래가 다시 열리고

아이들의 바다를 바라보는
조모님의 눈빛 포구에서
서별코지 하늬바람 맞지 않고서는
오늘밤 이 섬에서
잠들지 못하리라. - 윤봉택의 '강정포구'

 

▲ 서건도에서는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연출된다. ⓒ 장태욱
강정포구 앞에는 과거 주민들이 '썩은 섬'이라고 불렀던 서건도가 있다. '썩은 섬'이라는 이름은 이 섬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라 추축된다.

간조 때는 걸어서 서건도에 갈 수 있다. 성경에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 병사들에게 쫒기며 홍해 앞에 도달하자 홍해에 길이 열렸던 것처럼, 이 섬에서는 하루에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연출된다.

 

▲ 서건도 길목에서는 팽이고동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 장태욱

 
섬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에서 팽이고동들과 참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맑은 날씨에 가족끼리 일광욕을 즐기던 팽이고동들은 낯선 이가 찾아와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뭍은 이곳에 해군기지를 짓는다는 이야기로 시끄럽기만 한데,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고 했던 동요의 가사처럼 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다가올 운명을 모른 채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 서건도에에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 장태욱

서건도에는 다양한 풀이 자라고 있었고 자생 소나무 군락이 있어서 운치를 더했다. 내가 갔을 때는 이 작은 섬에 아무도 없어 무척 조용했다. 그래서 연인들이 밀애를 즐길만한 장소로는 최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쯤 중년 여인이 다 되었을 추억 속의 얼굴을 잠시 떠올려 보면서 웃기까지 했다.

▲ 공원시설이 잘 되어있다. ⓒ 장태욱

 
서건도에는 산책로와 벤치 등 공원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섬 남쪽에는 악어주둥이를 닮은 바위가 있었는데 그 모양을 본떠 장난감으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귀여웠다. 네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왔으면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악어 주둥이 모양의 바위 ⓒ 장태욱

 
범섬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윤봉택 시인이 왜 '서별코지 하늬바람 맞지 않고서는 오늘밤 이 섬에서 잠들지 못하리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범섬은 정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 범섬이 눈 앞에 다가왔다. 범섬은 고려말 '목호의 난'때 최후 격전지였다. ⓒ 장태욱

 
고려 말 원명교체기에 반원 자주정책을 펼쳤던 공민왕은 원으로부터 제주를 탈환하기 위해 몇 차례 군사를 파견했다. 하지만 당시 제주 목마장에서 말을 키우던 원의 목호(목마장에서 말을 키우는 자)들이 워낙 강경해서 거듭 실패로 끝났다.

그러던 중 공민왕 23년(1374년)에 명에서는 탐라에 있는 말 2천 필을 요구했고, 고려 조정이 이를 집행하려하자 목호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고려장군 최영이 고려조정으로부터 목호토벌의 명을 받고 2만 5천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제주해안에 상륙하려 하자, 목호의 기병 3천여 명이 비양도 앞바다에서 강하게 저항했다.

고려 관군과 목호군( 목호군 대부분은 제주인)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한 달간 지속되었다. '칼과 방패가 바다를 덮었고 땅과 뇌가 땅을 가렸다'던 이 싸움은 처음에는 팽팽한 대치 상태를 유지하다 결국 관군이 승기를 잡게 되었다. 싸움에서 밀린 목호들은 최후의 퇴각지로 범섬을 선택하였고, 초고독불화, 석질리필사, 관음보 등의 목호 장수들이 스스로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리고 나머지 무리들이 항복하여 목호의 난은 평정이 되었는데, 이로서 제주에 대한 원의 100년 지배는 끝이 났다.(김봉옥의 '제주통사'에서)

이영권은 당시 제주인과 고려인들 사이에 강력한 민족의식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원의 목호들과 제주인들 사이에 100년간 이어진 연결고리가 제주인들로 하여금 목호들에게 더 강한 유대의식을 갖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이 목호의 난을 두고, 중앙의 관점에서 보면 조국 땅에서 외세를 몰아낸 자주성의 상징으로 볼지 몰라도, 제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4·3이전에 외지 권력(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에 의해 저질러진 제주인에 대한 최대의 희생 사건일 수 있다고 했다.(이영권의 '제주역사기행'에서)

▲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외신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경기장이라고 극찬했던 곳 ⓒ 장태욱
 
그리고 이 고요한 섬에서는 인근에 있는 서귀포 해안과 해외 축구전문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이라고 극찬했다던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서건도에서 나오는 도중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서귀포시 앞바다가 동쪽으로는 보목동에서 서쪽으로는 강정동 앞에 이르기까지 생태보전지구로 묶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 수역내에 산호류, 분홍맨드라미류, 연산호류, 해조류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고, 수중에 바위들이 꽤나 멋있는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 이 일대가 생태보전지구임을 알리는 표지판 ⓒ 장태욱

 
이 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해양수산부의 명의로 환경보호 필요성에 딸라 지정한 '생태보전지구'를 스스로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이곳 서귀포시 강정동 일대는 그 자체가 이름다운 곳인데, 대통령은 이곳을 파괴하여 세계인들이 찾아 올만한 '아름다운 군항'을 만들겠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까지 덧붙였다.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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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찾아가는 길 : 제주시에서 12번 국도를 따라 서귀포 시내를 향해 오다가, 중문을 지나 도순교회, 대천동사무소를 끼고 우회전해서 5분 정도 더 운전하면 강정마을에 올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는 강정에 있는 엉또폭포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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