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 '날아가는 제비' 우진제비오름

태양이 이글거리는 8월, 이맘때 사람들은 피서를 떠난다. 그렇다보니 무더위를 식힐만한 바다, 계곡, 산은 북새통이다. 삼나무 숲 우거진 숲길을 걸어보았는가? 제주오름 중턱에서 여름을 말해보자. 제주시에서 97번 도로인 번영로를 따라 선인분교에 이르면 세계자연유산 등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거문오름과 부대오름, 골체오름, 우진제비오름이 군락을 이룬다. 이들 오름은 모두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오름이다.

 
▲ 반달같은 우진제비오름 삼나무 숲 이뤄
ⓒ 김강임
 
태양을 이고 있는 삼나무, 바람과 그늘을 낳다

지난 8월 5일, 우진제비오름을 탐방했다. 여름에 오를만한 오름은 숲을 이룬 오름이 제격이다. 숲 중에서도 제주 삼나무 숲은 바람을 낳고 그늘을 만들어준다. 어디 그뿐인가. 삼나무 가지위에서 우렁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풀 섶에 이는 풀벌레소리는 여름하늘을 수놓는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우진제비 오름. 선인동 마을에서 우진제비오름 기슭에 다다르자 농로가 이어졌다. 농로 사이에 서 있는 오름 표지판이 오르미를 반겼다. 오름 표지석은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나그네들에게 늘 이정표가 되어준다.

 
▲ 산책로에 들어서면 매미소리가 여름하늘 수놓아
ⓒ 김강임
 
"누가 저렇게 많은 나무를 심어놓았을까?"

삼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는 우진제비오름은 삼나무 동산 같았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아주 협소한 소로, 등반로라야 겨우 한사람 정도가 올라 갈 수 있을 정도. 오름 속에서 잘 정비된 등반로를 찾은 것은 환경에 대한 모독이다.

 
▲ 보랏빛 맥문동 오름길 열어
ⓒ 김강임
 
알알이 핀 보랏빛 맥문동, 등산로 가로막아

제주오름을 오르다 보면 완만한 길이 이어질 것 같지만, 때론 급경사가 나타난다. 그것이 제주오름이 주는 매력. 우진제비오름 역시 표고가 410m에 이르다보니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그나마 간간히 소로에 줄을 쳐 놓은 것이 오르미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진제비 오름의 여름 숲은 시원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이고 있는 삼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으니 태양도 꼼짝을 못한다. 삼나무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에 스칠 때마다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을 식혀 줬다.

 
▲ 행여 발길에 짓밟힐까 봐 까치발로 걸었다.
ⓒ 김강임
 
우진제비오름 중턱에 이르렀다. 난처럼 청초한 이파리에서 피어난 보랏빛 맥문동이 알알이 피었다. 그리고 등산로를 가로막았다. 발 디딜 틈새가 없었다. 그만큼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습지에서 자라는 콩짜게. 고사리과의 양치식물, 돌 틈에 구르는 푸른 이끼들, 그 틈새 속에 뿌리를 내린 보랏빛 맥문동이 청초하다.

나무와 잡초가 어우러진 풀 속에는 식물들이 자생을 한다. 행여 발에 짓 밟힐까봐 까치발을 딛고 오르는 고통, 산에 오르면 가장 미안한 것이 잘못하여 오름 속에 서식하는 풀잎들을 밟을 때다. 제주도에서는 풀 한포기 돌 하나도 모두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생명이 존재한다.

 
▲ 북동쪽으로 이어진 말굽형분화구는 자연림 무성
ⓒ 김강임
 
정상 능선 돌며 거문오름, 한라산 조망할 수 있어

20분 정도 올랐을까? 하늘이 보이더니 제주에서 자라는 새(띠)가 무성했다. 그곳이 바로 우진제비오름의 정상. 정상은 더욱 밀림지대였다. 서로가 엉켜 있는 풀잎들은 가슴까지 올라 왔다.

 
▲ 정상을 돌며 자연림속에서 한라산의 정경이 보인다
ⓒ 김강임
 

 
▲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과 부대오름이 보인다
ⓒ 김강임
 
우진제비오름은 말굽형분화구인데도 정상에서는 분로화구처럼 식별이 어려웠다. 능선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울창한 풀을 지팡이로 젖히니 그 아래에는 길이 나 있다. 그리고 그 길 사이에서 만나는 자연생태계. 그리고 자연림 속으로 보이는 정겨운 풍경들. 알바매기 오름이 전설처럼 떠 있고, 한라산이 구름 속에 잠겨 있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이 만장굴 쪽으로 드러누워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오순도순 살아있는 마을 풍경들. 그곳엔 제주인들의 삶의 터가 존재한다.

 
▲ 능선에는 윤노리나무와 보리수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 김강임
 

 
▲ 정상의 능선, 가슴까지 잡초 우거져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 김강임
 

 
▲ 하산을 하다보면 야생화가 천국 이뤄
ⓒ 김강임
 
굼부리 자연림 무성, 윤노리나무 길 열어

마치 밀림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친 길을 탐방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능선과 분화구에는 자연림이 우거졌다. 윤노리 나무에도 보리수나무에도 푸른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능선주변을 감싸고 있는 밤나무, 그리고 그 아래 하얗게 피어나는 들국화의 어우러짐. 오름 속에서는 강자와 약자 따로 없다. 다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가슴까지 와 닿는 잡초를 헤치고 능선을 돌아보는 데는 20여분. 땀방울이 이마에 뚝뚝 떨어졌다. 지천을 이룬 맥문동을 피해 까치발을 걷다보니 발바닥이 아팠다.

하산 후, 우진제비 오름을 500m쯤 벗어났을 때였다. 나는 비로소 자동차를 세웠다.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의 분화구를 식별하게 된 것이다. 무성한 자연림으로 오름의 몸통 속에서 보지 못했던 말굽형 분화구, 그리고 2개의 봉우리를 그때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제비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우진제비 오름은 태양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우진제비 오름  
 
 
 
▲ 우진제비오름은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분화구를 가졌다.

우진제비 오름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111, 113, 114번지에 있으며, 표고 410.6m, 비고 126m의 말굽형분화구이다.

겉모습은 삼나무로 덮여 있으며 굼부리 안쪽은 자연림을 이루고 있다. 2개의 봉우리로 이어져 있으며, 우진제비의 뜻은 옛 지도와 묘비 등에 우진산, 우진악, 우진저악으로 표기돼 있으며 원래 이름은 우진제비 오름이다. -우진제비오름 표지석에서-

 
 
 
 
☞ 찾아가는 길 : 제주공항- 번영로- 봉개- 선인분교-우진제비 오름으로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오름과 정상의 능선을 돌아보는 데는 1시간 정도가 소요 된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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