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버지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단죄할 수 없는 4.3

대통령 선거 당 후보를 뽑는 정당 경선이 한창인 즈음 민주당내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제주4.3’이 경선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당 경선 일정이 변경된 것을 놓고 당 일각에서 ‘제주4.3=조병옥=조순형’을 등치시키고, 결국 제주4.3 때문에 경선 일정이 변경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주4.3’이 민주당 경선의 예상치 못한 변수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제주에서 제기하지도 않은 4.3 문제가 민주당 경선의 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화해와 상생’으로 60년 전의 아픔을 치유해야 할 제주도민의 입장에선 작금의 논쟁에 심각한 우려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 5.5 최고수뇌회의 참석차 제주에 온 수뇌부들. 좌측에서 두번째 군정장관 딘 소장, 오른쪽에서 두번째(빨간색 원형 안)가 조병옥 경무부장, 맨 오른쪽이 김익렬 연대장이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민주당 제주경선 일정 변경 이유는 조병옥 경무부장 때문?

발단은 이랬다.

민주당 첫 경선지는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제주였다. 이달 20일 제주에서 5명의 후보가 첫 유세를 하고 2~3일 후 투표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이 일정이 3일 오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첫 경선지로 제주가 아닌 인천으로 바뀌면서 당 안팎에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최고위원회가 경선일정을 변경하면서 조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 4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 변경이며, 이는 조 후보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는 반발이다. . 그리고 조 후보가 첫 경선지로 제주를 ‘회피(?)’한 것은 바로 제주4.3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즉 조 후보의 부친이 바로 제주4.3당시 미군정 경무부장을 맡았던 조병옥 박사였다는 것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조병옥 경무부장은 1948년 4.3발발 직후 군과 무장대가 어렵게 합의한 ‘4.28 평화협상’이 경찰의 후원아래 서북청년단과 대동청년단이 자행한 ‘오라리 사건’으로 깨지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제주에서 열린 ‘화평이냐 유혈이냐’의 갈림길이 된 ‘5.5 최고수뇌회의’에서 강경진압을 주도해 결국 피의 4.3의 불러일으킨 ‘핵심인물(주범)’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조 경무부장은 5.5 최고회의에서 “4.3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인 만큼 철저하게 토벌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4.28평화협상을 주도한 당시 김익렬 9연대장은 그의 회고록에서 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4.3에서 조병옥 경무부장이 차지하는 역할은 아주 중대했으며, 그 만큼 그를 바라보는 역사적 평가는 싸늘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제주민심은 현재 여의도 정가 일각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처럼 ‘제주4.3=조병옥=조순형’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순형 후보, 제주4.3에 대해선 ‘침묵’....특별법 제정과정 ‘표결 불참’

조순형 후보가 어느 당 후보이든지, 또 그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그가 조병옥 경무부장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역사적 심판, 또는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이 곳의 민심이다.

조순형 후보는 지금껏 제주4.3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유보해 왔다. 어떤 이유인지 아직 까지 알 바 없다. 제주4.3당시 많은 양민이 학살됐고, 그 중심에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일 터이지만, 조 후보는 과거 민주당 대표를 맡고 일각에서 이에 대한 정치적 문제제기를 할 당시에도 ‘침묵’을 지켜왔다.

제주4.3단체는 조순형을 기억하고 있다. 알다시피 제주4.3의 원한을 푸는 단초가 된 제주4.3특별법은 조 후보가 속했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제정됐다. 핵심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추미애 전 의원이 있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행자위를 통과하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법사위에서 심의하던 1999년 12월 14일, 조순형 위원은 국민회의 소속의 법사위원이었다.

왜 침묵하고, 표결을 불참했는지 알 방법 없지만 ‘화해와 상생’으로 해석 

자신의 아버지를 공공연하게 4.3 양민학살의 또 다른 주범으로 모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당시 분위기에서 제주4.3특별법(안) 표결처리가 진행되자 그는 조용히 법사위 회의장을 떠났다.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민회의가 당론으로 표결에 부친 4.3 특별법안 표결처리에 왜 그가 자리를 떠났는지 알 방법이 없다.

다만 당시 법사위 표결현장을 지켜보던 제주4.3 유족들과 관련단체 회원들은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당시는 물론 지금에서도 조 후보의 ‘표결불참’을 원망하거나 비판하는 소리를 제주에서는 들을 수 없다. 제주에서는 조 후보의 ‘표결불참’을 ‘화해와 상생’의 또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4.3특별법 개정당시에도 마찬가지 였다.

조 후보가 지금까지 제주4.3에 대해 침묵 한 것도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상생’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고 있다. 어느 정치인처럼 자신의 아버지가 행한 역사적 행위에 대해 ‘구국의 결단’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한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 하고자 하고 있다.

제주4.3의 아픔은 1948년 참혹했던 학살뿐만 아니라 그 이후, 적어도 80년대 중반까지 이어 내려져 온 4.3 연좌제였다. 제주도민들은 지금으로부터 60년전 좌와 우의 정치적 대립 속에서, 그리고 미군정 체제하 군경에 의해 무고한 수많은 인명이 학살됐고, 그 자손들은 4.3 연루자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40년 가까지 연좌제에 묶여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 왔다. 제주도민들에게 ‘4.3연좌제’는 너무나 지긋지긋한 고통이었다. 제주도민들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했고, 더 이상 4.3연좌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점을  수 십년간 말해왔다. 이는 가해자건, 피해자건 마찬가지 였다. 그렇지 않고는 제주4.3의 아픔을 해결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만을 낳을 뿐 문제해결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제주도민은 제주4.3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진상규명에 바탕을 둔 ‘화해와 상생’뿐이라고 믿고 있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만을 낳을 뿐, 결코 문제해결의 수단이 될 수가 없다.

민주당 경선일정 변경이 제주4.3으로 미치는 논란을 보면서 제주4.3관련 두 전문가의 당부를 전한다.

“제주4.3문제를 해결하면서 제주도민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은 ‘연좌제 반대’였다. 아버지가 그랬다고 해서 아들에게 문제를 삼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앞으로 기대한다면 대통령을 하겠다고 한다면 제주4.3에 관한 입장을 밝혀주는 것은 제주도민에 대한 대통령 후보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제주도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제주4.3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진상규명과 이를 토대로 화해와 상생을 하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갈구하고 있다. 지금의 논란은 도민의 의사와 반하는 것이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구화하려는 것이다. 어느 정당과 후보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이는 제주4.3 해결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상임대표)

“역사적 평가를 하는데 개인의 부자계승 문제를 연루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또 다른 연좌제다. 우리가 4,3 연좌제를 비판하면서 다른 쪽이라고해서 그 비판의 잣대를 들여대서는 안된다. 4.3은 화해와 상생이 유일한 해법이다. 제주도민들은 그런 편협한 판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르다. 정당의 문제를 갖고 제주4.3을 관련시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제주4.3을 욕보이는 것일 수 있다.”(박찬식 박사, 제주4.3 유해발굴 책임연구원)

우리는 그가 조순형이던지, 또 다른 누구이든지 제주4.3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역사적이나 정치적으로 단죄 또는 비판할 수는 없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제주도민들은 지금 원하는 것은 ‘화해와 상생’이다.

민주당이 왜 제주경선 일정을 변경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또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제주4.3’이 변수로 작용했는지 알 바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문제다. 자신들의 정략에 제주4.3을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제주도민들은 더 이상 그가 4.3의 가해자건, 피해자건 미워하거나 원망하기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개인적 정치인을 넘어서 한 국가를 책임지려는 대권 후보로 나선다면 그는 이제 아버지에 대한 아픔이 깃든 '긴 침묵'을 깨고 제주4.3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게 자연스런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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