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못, 절경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하는 곳

푸르던 들판도 누런색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언제 태풍 나리가 들녘에 물난리를 안겨줬는지조차 잊은 듯이 농부들은 새로 파종한 가을채소에 물을 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리의 나무들도 푸른색을 털어내고 새로운 치장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려는 자연의 분주함이 수해를 복구하기 위해 땀 흘리는 주민들과 장병들의 손길 못지않다. 언제나 절기에 맞춰 새로운 계절이 도래하는 것은 자연의 평범한 이치다.  

   
 
▲ 연화못 하가 일경을 자랑하는 연화못이다.  ⓒ 장태욱 
 

결막염으로 외출이 금지된 아내를 집에 남겨둔 채 딸 진주와 아들 우진이를 데리고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는 있는 하가 연화(蓮花)못을 찾았다. 이곳은 3천700여 평의 넓이를 자랑하는 제주 제일의 봉천수 연못이다.

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고려왕조 25대 충렬왕(1275∼1309) 때에 마을 연하지에는 야적(野賊)들의 집터로서 연못 한가운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살면서 이 마을을 지나는 행인들을 농락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 육각정 우리 아이들이 연화못 육각정에서 즐겁게 놀았다.  ⓒ 장태욱
 

그러던 중 신임판관이 초도순시 때 이곳을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한 야적들은 판관 일행을 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뚝할망이 살고 있었는데 '뚝할망'은 야적들의 음모를 눈치 채고 그들의 흉계를 관가에 알려 관군으로 하여금 야적들을 소탕하게 했다. 

하지만 관군이 출동하여 야적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뚝할망'도 야적들의 칼에 맞아 죽었다. 관가에서는 할머니의 충정심을 높이 기려 벼슬을 내리고 제주향교의 제신으로 받들게 했다고 한다.

하가 일경으로 꼽히는 연화못을 바라보며 문득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렸다. 과거 제주에는 여신이 많았다. 그 중에서 자청비는 옥황의 아들인 문왕성 도령과의 사랑과 시련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며 드라마 같은 일생을 살았던 전설 속의 여인이다.

한여름 깊은 밤
연화(蓮花)못 돌담 기어오르던 연꽃이
신산만산(神山滿山) 별빛 담아내느라
가던 길 멈추고

도시가 내뿜는 불야성은
온 바다 가득 뜬 고기잡이 배 집어등(集魚燈)과 더불어
꾸역꾸역 자청비 사랑을 되새김질합니다.

플라톤이 그리던 이상향,
제주인이 꿈꾸던 환상의 섬 ‘이어도’가 바로
이곳인 듯,

니체가 죽었다고 고뇌하던 신
가시나무 등걸에 걸린 문도령 주검이
환생한 듯

하늘과 땅 아우른 제주 바다 불야성이
신화 속에 자지러지던 부엉이 울음소리 포근히 재우고
서천 꽃밭, 천국의 문을 살짝 엽니다.

탑동 바당(海) 연인들의 눈길마다
활활 타오르는 ‘칼 선 다리’건설
자청비의 사랑이 소낙비로 내리고
대홍대단(大紅大緞) 붉은 치마엔 눈물 한 방울

- 김태일의 ‘서천 꽃밭은 불야성’  

▲ 딸 진주 문도령이 바라본 자청비의 모습이 아닐까? 연화못 둘레에는 버드나무가 심겨져 있다. ⓒ 장태욱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은 문도령이 글공부를 하려고 하계에 내려오다가 빨래터에서 서로 첫눈에 반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청비는 문도령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남장을 하고 문도령의 옆에서 글공부를 하는데, 문도령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문도령이 부친으로부터 ‘색싯감을 얻어 놨으니 올라와 혼사를 준비하라’는 전갈을 받게 되자 자청비는 심한 상실감에 빠진다. 그러다가 자청비는 문도령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방법을 생각해내게 된다. 

문도령에게 ‘삼 년간 같이 공부를 했으니 목욕이나 같이 하자’고 권한 자청비는 물가에서 버들잎에 ‘남자 여자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써서 물 위에 띄우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자청비에 대한 사랑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낀 문도령은 자청비의 집을 찾아가 그녀와 사랑의 시간을 보냈다.

   
 
▲ 조롱박 연화못 인근에 있는 더럭분교 울타리에는 이 마을 아이들이 키우는 박이 자란다. 문도령이 자청비에게 정표로 남겼다는 박이 이랬을까?  ⓒ 장태욱
 

자청비를 남겨두고 하늘로 올라가는 문도령은 ‘이 박이 익어서 타게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죽은 줄 알라며’ 자청비에게 박 씨 하나를 정표로 주고 갔다. 그러나 그 박 씨가 땅에 심겨져 박이 열리고 익어도 문도령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청비는 문도령이 장가갈 때 혼숫감으로 사용할 비단을 짜고 있는 노파를 만난다. 자청비는 그 비단을 자신이 짜겠다고 자청하였고, 완성된 비단은 문도령에게 전달되었다.

첫눈에 이것이 자청비의 솜씨로 만들어진 비단임을 알아차린 문도령은 하계로 내려와 차청비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서 부모에게 자신과 자청비가 이미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고백한다. 

문도령의 아버지는 며느리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자청비로 하여금 숯불에 이글거리는 50자 길이의 작두 위를 걷게 하여 자청비를 시험했다. 모진 시험을 견뎌낸 자청비는 문도령의 아내가 되었고, 천자의 총애를 받아 오곡의 씨앗을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농신(農神)이 되었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농신이 되어 지상에 내려온 자청비를 맞이하기 위해, 7월 보름에 백종제(百種祭)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있다.

자청비와 문도령의 사랑 이야기를 남긴 배경이 구체적으로 제주의 어느 지역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이들이 처음 만나서 첫눈에 반했다는 빨래터가 연하못인 아닌가 생각한다. 연하못의 절경이 이곳을 방문한 자들이 정신을 잃어 서로 첫눈에 반하도록 만드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갈 길 잃어 방황하는 연인들은 연하못으로 한 번 가보시라!!)

   
 
▲ 연꽃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연화못에는 연꽃이 가득 자란다.  ⓒ 장태욱 
 

연화못의 제일 자랑거리는 역시 연꽃이다. 언제 심어졌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이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하다. 

마을 유래에 의하면 19세기 중엽 제주목사 한응호가 지방 순시 중 이곳에 들러 연꽃잎으로 술을 빚어 마시고 시를 읊었으며 양 어머니로 하여금 연꽃을 지켜 가꾸도록 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연화못의 연꽃은 그 전래시기가 19세기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 갈대와 풀이 어우러져 자라는 모습 연화못은 수중 생물의 보고이다.  ⓒ 장태욱 
 

게다가 자청비와 문도령이 목욕하러 갔다가 자청비가 버드나무 잎에 글씨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연화못 주위에는 버드나무가 많이 심겨져 연못의 둘레를 감싸고 있다.  

   
 
▲ 개구리밥 연화못에서 자라는 개구리밥  ⓒ 장태욱
 

연하못에는 수련이 자라고 있다. 한때는 수련도 빨간색 꽃잎이 피는 적수련과 백색꽃이 피는 백수련, 노란꽃이 피는 황수련이 있었으나 현재는 적수련만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개구리밥 부레옥잠 용버들 등의 다양한 수중식물들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다.

관찰로를 걷다 보면 소금쟁이들이 물 위를 걸어다니고, 개구리도 연의 줄기에 숨었다 가끔 모습을 드러내며, 잠자리는 연못의 상공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다정한 오리 한 쌍이 잔잔한 연못 위에서 서로 간의 정을 과시하는 장면도 보였다.   

   
 
▲ 오리 한쌍의 오리가 연못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 장태욱 
 

오래전부터 연하못 가운데는 육각정(六角亭)이 있었다. 과거에는 육각정이 섬처럼 연못의 가운데에 있어 아이들이 수영해서 육각정에 올라가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2006년)에 육각정이 새로 지어지고 이 육각정에 쉽게 갈 수 있도록 관찰로가 만들어졌다. 이곳을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생태학교로 손색이 없고, 연인들이 밀애를 나누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김(金) 시인이 노래하듯 나도 연애시절에는 연화못 가까운 고내리 밤바다에서 고기잡이배가 내뿜는 불빛의 장관에 취한 적이 있었다. 제주의 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에 취한 연인들에게 플라톤의 이상향처럼 보이는 사랑도 종국에는 자청비가 건넜던 ‘칼선 다리’의 시련과 ‘대홍대단’에 떨어진 눈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시인의 충고가 가슴에 와 닿는다. 삶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편에는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에 대한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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