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애리(休愛里), 자연과 민속과 스토리가 어우러진 곳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1리는 520가구에 1600여 명의 주민이 대부분 감귤 농업에 종사하며 생활하는 전형적인 제주도 농촌 마을이다. 제주도의 대부분 감귤 농가가 경험했던 것처럼 신례1리 마을도 감귤산업이 풍요를 누리던 80년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오렌지 수입개방과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감귤 농가는 침체기를 맞았고, 2000년 이후에 농가들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에 동참했다. 애써 가꾼 나무를 잘라내는 간벌과 폐원정책에 동참했고, 상품이 기준 크기를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경우는 귤의 출하를 금지하는 유통명령제 도입에도 동참했다.

농가들이 구조조정에 힘을 보탠 결과 2004년 이후 도시에서 귤 가격이 다소 회복되었다. 모처럼 농민들의 얼굴에 웃음이 도는 듯했다. 하지만 다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아무도 귤 농업의 미래를 얘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정부가 추진하는 개방 정책이 현실화되어서 귤 농업이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신례1리 같은 마을의 주민들은 무슨 일에 종사하며 소득을 확보해야 할까? 제주도에 많은 관광 자원들이 있지만, 신례1리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관광지가 없는 형편이다. 중산간 마을이라 제주도 어디에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바다조차도 없다. 주민들 대부분은 아직까지 농업 이외에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 휴애리 관광농원 휴애리 입구  ⓒ 장태욱
 

그런데 올해 5월 5일에 이 마을에 ‘휴애리(休愛里)’라는 관광농원이 문을 열어서 주변의 관심을 끌었다. 휴애리 관광농원의 양지선 대표를 직접 만났다.

양지선 대표에게 이 관광농원을 개장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신례리의 자연환경과 전통 문화가 어울어진 가장 제주적인 공원을 만들어서, 제주 자연의 아름다움과 매실의 우수함을 동시에 자랑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휴애리는 매실농장 주변에 마련된 휴식공원이다.  
  

   
 
▲ 용연 동화 속의 연못을 떠올리게 한다.  ⓒ 장태욱
 

그는 이전에 조경사업에 종사했었는데, 지역의 장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관광농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이 관광농원을 개장하기 위해 준비하며 보낸 세월이 10년이라고 했다.

관광농원을 만들기 위해 98년에 한국농촌관광대학을 1기로 수료하고, 벤처농업대학을 3기로 수료했다고 했다. 그리고 삼성경제연구원에서 자문을 받아 그린투어리즘에 대한 지식을 보충하고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서 관광객의 취향을 깨우쳐나갔다고 한다.
  

   
 
▲ 나무꾼의 길 나무꾼이 나무하러 다니던 길을 소재로 만들었다. 길가에 석탑은 관광객들이 소원을 빌며 만든 것이라고 한다.  ⓒ 장태욱 
 

“고객은 까다롭고, 그들의 눈높이는 생각보다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 까다로운 고객의 취향을 맞춰나갈 포인트는 결국 가장 제주다움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를 연상하면 우선 떠오르는 한라산과 푸른 초원 그리고 제주의 전통문화를 기본 아이템으로 정했습니다.”

일 추진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2000년도에 이곳에 매실을 심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자 2001년도에 매실이 전부 고사해버렸다. 매실 전문가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해도 그 정확한 원인과 대책을 구할 수 없자, 통역관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서 전문가들을 만났다. 

일본에서도 뿌리가 물에 잠겨 고사하는 유사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평지 위에 흙을 돋우고 뿌리가 평지보다 높은 위치에 오도록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돌아왔다. 
  

   
 
▲ 토굴 속의 옹기들 매실을 발효시키는 곳이다.  ⓒ 장태욱 
 

그렇게 해서 2002년에 다시 묘목을 심고 매실을 재배하는데, 농약은 전혀 쓰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이곳에 바람이 많기 때문에 매실의 야생성이 높아져 약재로서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결과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안내를 따라 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원래 조경을 했던 솜씨를 발휘하여 공원 전체를 본인의 구상에 따라 디자인했다고 했다.

제주의 자연과 민담과 전통문화를 보여주려니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모두 자원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농원에는 시멘트를 재료로 한 콘크리트가 보이지 않는다. 바닥은 제주도의 천연 송이를 깔았고 건물은 모두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초가들이다.

'용연'이라고 써진 연못을 지나 나무꾼의 길을 들어섰다. 나무꾼은 이 길을 통해 나무하러 다니면서 아들을 점지해 달라는 소망을 담은 돌탑을 쌓았다는 이야기를 테마로 한다. 나무꾼의 길이 끝나는 곳에 와룡바위가 있다. 일찍이 용이었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바위가 된 와룡바위가 나무꾼의 정성에 감동하여 아들을 점지해주었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 전통 가옥 제주의 전통 가옥을 복원해놓은 곳이다. 실제로 나무와 흙과 풀만을 이용해서 만든 집이다. 초가의 내부에는 제주를 소재로한 사진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 장태욱 
 

나무꾼의 길을 지나 ‘제주의 삶과 터’라는 복원된 전통마을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산토끼와 다람쥐가 노니는 공원이 있고, 과거 제주의 전통 초가가 복원되어 있다. 마당에 돼지를 키우는 통시가 있었는데, 통시 안에 있던 돼지가 사람을 보자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양지선 대표는 "돼지가 사람을 자주 접하다 보니 사람에 익숙해져서 재롱을 부리는 것이"라고 했다.   
  

   
 
▲ 전통 흑돼지 전통 초가의 마당에는 돼지를 키우는 통시가 복원되어 있다. 과거 통시는 돼지우리와 화장실 겸용이었다. 사람이 똥을 싸면 돼지가 그 똥을 받아 먹었다.  ⓒ 장태욱 
 

전통마을을 지나 양지선 대표가 안내하는 토굴로 들어갔더니 토기 속에서는 매실이 전통 항아리에 담긴 채 발효되고 있었다. 무농약으로 재배한 매실로 액기스(진액)를 만드는 곳이었다.

토굴을 나오니 언덕을 이용해서 만든 오름 형상의 쉼터가 나오는데, 이름이 ‘자리오름’이다. 그 옆으로 솔숲과 빌레산책로가 걸음을 인도했다.  
  

   
 
▲ 미니 오름 제주의 오름을 축소해 놓은 미니 오름이다.  ⓒ 장태욱 
 

농원 구경을 마치고 양지선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매실차를 내왔다. 신맛이 별로 없고 구수한 냄새가 났다. 토굴에서 항아리에 담긴 채 발효시켰기 때문에 매실의 맛과 향이 순해진 결과라고 했다.

양지선 대표에게 농원을 개장하고 느끼는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는데, “무엇보다도 잘 알려진 관광지들과 떨어져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도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다녀간 분들은 꼭 좋은 평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에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다.
  

   
 
▲ 언덕 매실 농장 주변에 토종 잔디가 깔린 언덕이 있다. 한라산이 훤히 내다 보이는 곳이라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 장태욱 
 

그리고 내년 봄에는 세계인들을 초청할 만한 매화축제도 개최하겠다고 했다. 눈 덮인 한라산을 배경으로 5만 평의 농원에 매화가 만발하면 세계인들이 감탄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내 놓았다. 축제기간에 관람객들을 농장 안으로 유도하여 꽃구경을 시킬 의향으로 매실 농장 안에 산책길도 새로 정비하고 있었다.

“앞으로 농촌이 살기 위해서는 지역에 농업 외 소득이 있어야 합니다. 이 휴애리 공원이 좋은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신례1리 주민들도 식당이나 민박으로 농업 외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다녀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귤도 산지에서 제값을 받고 팔 수 있겠죠. 그때까지 희망을 품고 열심히 하려 합니다. 많이 격려해주세요.”
  

   
 
▲ 양지선 대표 휴애리 관광농원의 대표  ⓒ 장태욱
 

내가 신례1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휴애리의 실험이 성공을 거둔다면 지역발전에 적잖이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양지선 대표의 어깨를 무겁게 함과 동시에 그가 보람을 갖고 일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휴애리 관광농원 064-732-2114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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