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로 창흥동 철새도래지 방문기

▲ 바다갈매기 철새도래지에 도착하기 전에 해안도로에서 갈매기들을 만났다. ⓒ 장태욱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흥얼거리며 아이들과 함께 하도리 철새도래지를 향했다. 노래가 씨가 되었는지 하도리 해안도로에 접어들자 시원한 바람이 몰려왔다. 하긴 이곳에 바람이 없는 날이 있겠는가?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가사 내용처럼 고단한 일상의 끝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고개 들어 바라볼 하늘과 파도가 있다는 것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 갈매기의 비상 방문객이 나타나지 갈매기들이 일제히 비상했다. 귀빈 대접을 받은 것 처럼 기분이 좋았다. ⓒ 장태욱
새들과의 만남

 철새도래지에 이르기도 전에 해안도로에서 바다갈매기의 환영을 받았다. 길가에 차를 세우자 까만 현무암 바위 위에서 놀던 갈매기들이 일제히 비상해서 우리 근처를 맴돌았다. 마치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나라에서 환영을 받는 것처럼 감격스러웠다.

 하도리 창흥동 철새도래지에 도착했다. 햇빛이 비쳐 눈부신 습지 위에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놀고 있는 장면은 평화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신나서 뛰어가자 철새들이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면서 '새가슴'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말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 새를 관찰하는 아이들 망원경이 한 대 밖에 없어서 아이들이 순번대로 관찰했다. ⓒ 장태욱
▲ 우진이 네 살인 아들도 새를 관찰하겠다고 했다. 커서 과학자가 되려나? ⓒ 장태욱
탐조대에 망원경 한 세트가 있었다. 시내에서 생활하면서 그간 살아있는 동물들을 관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자기 순번이 돌아오길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다. 이렇게 관찰하길 여러 번 하더니 탐조대 벽에 붙어 있는 철새 설명을 본다. '가마우지', '알락오리', '백로' 등 방금 자기가 관찰한 철새의 이름들을 말한다.

 철새들은 번식지와 비번식지를 향해 주기적으로 이동하는데, 겨울에 이곳을 찾는 새들은 겨울철새들과 나그네새들이다.

 

▲ 철새도래지 철새들의 보고다. ⓒ 장태욱
겨울철새는 번식지가 시베리아나 만주벌판 등인 새들이다. 겨울이 오면 그곳에서 먹이를 구할 수 없어서 남쪽으로 내려와 살다가, 봄이 되면 자신들의 번식지로 돌아가는 새들이다. 홍머리오리, 흰뺨검둥오리, 고방오리, 알락오래, 쇠오리 , 쇠기러기, 댕기물떼새, 개꿩 등 24종이 있다.

 나그네새는 북쪽 지방에서 번식하고 새끼를 기르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지방으로 이동하는 도중 잠시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종들을 말한다. 이들의 번식지는 시베리아, 캄차카반도, 알류산열도, 알래스카 지방이며 월동지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도요새가 대표적인 나그네새인데, 하도리 철새 도래지는 나그네새의 중간 정거장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지미봉 지미봉이 바람을 막아주어 이곳이 새들에게 더 좋은 보금자리가 된다. ⓒ 장태욱
창흥동 철새도래지, 철새들의 천국

 하도리 창흥동은 제주도 최대 철새도래지다. 이곳은 염습지인데 탕탕물, 서느렁물, 구녕물 등 주변에서 용천수가 염습지안으로 흘러들어가 바닷물과 교차한다. 면적은 77만㎡이며 평균 수심은 약 40㎝이다.

 이곳이 철새들에게 보금자리로 각광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파래, 망둥어, 기수우렁이, 방개, 바지락 , 맛조개 등과 더불어 인근 양식장에서 기르는 숭어와 민물장어는 새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 근처에 있는 양식장 양식장에서 키우는 물고기들도 새들에게는 먹이가 된다. ⓒ 장태욱

게다가 인근 지미봉과 두산봉이 바람을 막아주고, 갈대를 비롯해 갯가에서 자라는 많은 풀들이 새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요새를 제공한다. 풀들 중 갈대가 가장 키기 큰데, 풀들의 키는 바다 쪽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따라서 관찰하는 사람이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풀은 갈대이며, 밀물이 되어 수심이 깊어지면 먼 곳에 있는 풀들은 물에 잠기게 되어 새떼는 갈대숲으로 날아든다. 따라서 밀물 때가 새들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두산봉이 바라보이는 방향을 향해 철새도래지 안쪽으로 걸어갔다. 가다보니 민물이 흘러나오는 샘을 여러 곳 발견할 수 있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갈대숲 사이로 좁은 길이 나왔다. 그 길을 따라 가니 양어장이 있었다. 입구와 달리 습지의 안쪽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철새들을 관찰하면서 갈대 숲 사이 좁은 오솔길을 걷다보니 운치가 느껴졌다(적당한 밀애 장소를 찾지 못하신 커플들은 참고하시라).

 

▲ 샘물 샘물에서 솟아나는 맑은 담수가 해수와 섞여 최적의 환경을 만든다. ⓒ 장태욱
2007년, 철새들을 모욕하는 일은 제발 없어야

 지난 수 십 년 동안 생태학자들이 북쪽에 번식지를 두고 있는 흰기러기의 여행습관을 파악하기 위해 기러기의 발에 식별 고리를 채워서 이들의 여행경로를 추적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 흰기러기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 지역으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서로 섞여 짝짓기를 한다. 그런데 겨울나기가 끝나서 봄이 오면 암컷은 자신의 원래 서식지로 돌아가는 반면, 책임감이 강한 수컷은 암컷의 서식지로 따라간다. 이렇게 해서 기러기는 계절에 따라 이동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한번 맺어진 인연으로 몇 년간 부부관계를 지속한다.

 

▲ 아이들 이곳이 철새들에게만 좋은 게 아니다. 아이들이 철새들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 장태욱
해외에 처와 자식들을 보내놓고 한국에 남아 그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가장들을 '기러기 아빠'라고 부르는 이유도 수컷 기러기의 헌신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부부의 연을 중요시하는 기러기의 기질을 알아차리고, 혼례식에 기러기를 소품으로 사용했던 우리 조상들도 새에 대한 식견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소신이 없거나 소신을 헌신짝처럼 버릴 불량한 정치인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단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 철새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불량배들을 감히 '철새'에 비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철새도래지 새들이 일제히 나는 장면이다.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두산봉이다. ⓒ 장태욱

덧붙이는 글 | 자료를 제공해주신 '제주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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