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신화에서 살아있는 역사로

태권도 발상지 징표 파괴 사건

역사적 사실은 기록과 함께 유물이나 유적이 있을 때 힘을 받는다. 꼭 힘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남겨진 그 무엇이 있어야 반갑다. 태권도 발상지인 남제주군 모슬포엔 그런 게 없을까?

있다. 바로 최홍희가 창설한 '29사단 창설기념탑'이 그것이다. 꼭대기엔 주먹 문양이, 그리고 3면에는 활달한 그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剛健한 體力', '澈底한 訓練', 그리고 나머지 한 면에는 글자가 깨져 잘 보이지 않는다. '○○한 鬪志'라고 써 있는 것 같은데 판독이 어렵다(최홍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를 통해 보면 깨진 글씨는 '滿滿'이다). 그런데 탑 기단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탑 조성 경위가 보이질 않는다. 깨진 글자와 조성 경위가 쓰여지지 않은 기단, 무슨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궁금증을 풀어준 건 제주도의회 예결위원회 위원장 강호남 의원이었다. 그는 바로 이곳 모슬포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탑과 아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탑이 남아 있는 건, 그리하여 제주도가 태권도의 발상지임을 증명하게 해 주는 건 전적으로 그의 숨은 공로 덕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두 번 다시 이 탑을 보지 못할 뻔했다.

강호남 의원에 따르면 멀쩡하던 탑이 사라진 건 1985년 11월의 일이었다고 한다. 전경환이 모슬포 군비행장을 방문하기로 예정된 때였다. 전두환이 아니라 전경환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힘은 전두환 못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방문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만 이 탑을 뽀개고 묻어버렸다는 것이다. 소위 '친북인사' 최홍희와 관련이 있는 탑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일이지만 그 땐 그랬다.

이 탑이 사라진 걸 알아 챈 사람은 강호남 의원이었다. 그는 당시 읍장이었던 부오현 씨를 찾아가 그 경위를 따져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추궁에 결국 읍장은 비밀을 지켜달라며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1985년이라면 그럴 만도 한 때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강호남 의원은 이를 그냥 묻어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1999년 12월 의회 도정질문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과를 거두어 드디어 2000년 11월 2일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다. 탑은 이미 네 동강이 난 상태였다고 한다. 그걸 다시 맞추어 복원한 게 지금의 탑이다. 그래서 글자가 깨지고 조성 경위도 찾아 볼 수 없는 꼴이 된 것이다. 탑이 서 있는 위치도 조금 변했다.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로 옮긴 결과다. 알뜨르 비행장으로 내려서기 조금 전 어느 3거리에 있다. 제주 현대사 기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려야만 할 답사지이다. 한국전쟁과 태권도 창시 그리고 전두환 폭압정치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강호남 의원의 이야기와는 달리 최홍희의 회고록 {태권도와 나}3권은 이 탑의 파괴 시점을 1977년으로 소개하고 있다. 최홍희가 해외민주운동대표자회의 때 박정희 정권을 때려부수자는 구국선언을 하자 박정희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 탑을 세 동강내어 땅에 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강호남 의원의 주장을 택했다. 캐나다의 최홍희가 제주도 현지 사정에 밝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차후에 다시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태권도 공원 유치를 둘러싼 코미디

이 탑 앞에 서면 왠지 쓸쓸하다. 국기 태권도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상징치고는 너무도 초라하다. 평양에 있는 태권도 전당 그리고 나진 선봉 지구에 있는 태권도 성지만큼은 못 해도 그래도 뭔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역사의 주역은 뒤로 밀리고 그 자리에 어설픈 복제품들만이 판을 치는 게 세상의 보편사가 되어버린 현실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최소한의 안내판도 없다. 물론 역사기행은 이런 곳에서가 더 깊은 맛을 주긴 한다. 박제된 화려함보단 차라리 휑한 공간이 더 많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노력이 끝나지는 않았다. 태권도공원 유치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태권도공원은 본래 1999년 문화관광부가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공식화되었다. 문화관광부는 100만 평 규모에 총 사업비 3천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이겠다고 하였다.

워낙 덩치가 큰 사업이라서 그랬는지 이 계획이 발표되자 곧바로 다음해(2000년)에 전국적으로 27개의 시.군이 유치를 신청했다. 남제주군도 당연히 준비를 서둘렀다. 태권도 발상지가 바로 남제주군에 있기에 남제주군의 유치신청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문광부의 선정 기준에는 "태권도와 관련된 문화.역사적 배경을 갖춘 지역", "지역 관광과 연계하여 관광명소로 개발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건 남제주군이 딱이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남제주군으로 왔어야 한다. 들뜬 애향심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광부의 선정 기준에 가장 잘 들어맞는 건 남제주군뿐이다.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한 동안 떠들썩하던 태권도공원 이야기가 이내 잠잠해지더니 결국 서울 근교 어디쯤으로 낙착될 전망이라고 한다. 결국 이것도 정치논리로 끝나는 모양이다. 물론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

그런데 소위 27개 시.군이 각각 내세우는 논리는 무엇일까. 재미있는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먼저 강화도, 여긴 빵빵한 홈페이지까지 갖추고 유치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인천광역시의 지원도 대단하다. 그런데 그 논리가 가관이다. 단군성지가 있기에 태권도 '정신'의 발상지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강화도는 '한반도의 단전'이라 '기(氣)가 왕성'하다고 한다. 실제 '기 측정치가 전국최고'라는 선전 문구까지 들어있다. 기 수련 단체에서 태권도를 보급했나?

다음은 충북 진천, 여기는 김유신의 탄생지다. 근데 그것하고 태권도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화랑이 익힌 무술이 태권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화랑의 대표인물은 김유신이니 당연히 진천에 태권도 공원이 들어와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화랑의 본고장 경주가 가만히 있겠는가? 맞다. 경주도 난리다. 하지만 화랑과 태권도, 이건 신화다. 발명된 전통일 뿐이다. 그랬더니 이번엔 석굴암 금강역사의 포즈가 그 증거란다. 금강역사? 그렇다면 태권도가 불무도(佛武道)에서 나왔다는 말인가?

충북 보은도 재미있다. 법주사 들어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현수막, "소림권법은 소림사에서, 태권도는 보은 법주사에서-태권도공원 유치 보은군 추진위원회". 이쯤 되면 더 이상은 할 말이 없게 된다.

죽은 신화에서 살아있는 역사로

아무리 보아도 제주도보다 명분이 큰 지역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태권도공원은 서울 근교로 낙착되는 모양이다. 표를 잃지 않으려는 정치적 술수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더라도, 그래서 만약에 제주도 유치가 실패하더라도 긴장을 놓아버리지는 말자. 규모가 작더라도 역사 기념시설과 안내판을 설치하자. 그리고 꾸준히 교육을 해 나가자.

하긴 처음부터 제주도 유치가 쉬울 것으로 생각지는 않았다. 단지 약한 도세(道勢)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는 '태권도 신화'가 벗겨지는 걸 원치 않는 중앙 지식인의 옹졸함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민족의 상징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비틀어선 안 된다. 비록 로봇 태권V가 마징가Z를 베낀 것이라고 하더라도, 태권도가 일본의 공수(가라데)를 기반으로 창조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태권도나 태권V 모두 이미 한국 땅에서 토착화되고 체질화되면서 다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이미 최홍희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되었다. 가라데와는 분명 달라진 것이다.

대중화되었다면 이미 그것은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다. 그런 식으로 원조를 따진다면 동양의 무도는 모두 중국이 원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라데와의 연관성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혹은 가라데의 아류로 폄하하는 건 둘 다 어리석은 짓이다. 현재의 조건에서 자신 없는 사람들이 고대의 신화를 창조하곤 억지를 부리게 된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어느 만큼 사랑하고 활용하는가에 있다. 그것이 '죽은 신화'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가 되는 길이다.

문화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교류하고 흡수하고 재창조해야만 한다. 가라데를 바탕에 두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일 수 없다. 활발한 문화 교류는 장려되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을 바탕에 두고 더 훌륭한 세계적 무도 태권도를 만들어낸 건 우리가 아닌가. 이건 재창조다. 재창조의 힘,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 이것이 문화의 생명이다. 배타는 어리석음이다. 순수를 고집하는 사람들일수록 극우가 되기 쉽다. 타자에 대한 포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왜곡을 저지르고 편협한 국수주의로 전락하게 된다.

진실을 진실대로 보지 못하는 것, 억지를 부리며 신화를 만드는 행위가 오히려 민족의 자존심을 망치게 한다. 민족 콤플렉스를 이젠 극복할 때도 되었다. 자신 있게 말하자. 태권도는 현대에 와서 제주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연재를 끝냅니다.

※이 글은 제주참여환경연대 기관지인 「참세상 만드는 사람들」2003년 창립12주년 특집호(통권 제36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영권의 직설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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