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오름기행] 숲에 뿌리내린 돌오름

▲ 돌오름 가는 숲길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한다. ⓒ 김강임
  

"숲길을 1시간 2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오름 길라잡이 오식민 선생님은 일행들에게 겁을 주었다. 오름 탐사는 늘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이번 떠나는 오름은 한라산 곶자왈 지대에 숨어 있는 오름이기 때문에 숲에서 일행을 놓칠 경우는 길을 잃을 우려도 있다.   
   

▲ 낙엽길을 걸으면 프로스트의 가지않는 길이 생각난다. ⓒ 김강임

영실 부근부터 시작되는 돌오름 가는 숲길

'가는 날이 장날이다'고 11월 셋째 휴일(18일)은 가장 추운 날이었다. 1100도로 가는 길에서 만난 한라산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한라산 영실 북서쪽 3km 지점에서 하차한 일행은 오름 길라잡이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이동했다.

오름탐사 목적지는 돌오름, 돌오름 가는 길은 여러 갈림길이 있겠지만, 우리는 한라산 영실 3Km 이전 지점에서 출발하여 표고버섯 재배지를 거쳐 30분 정도를 더 걸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정말이지 숲길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생각나게 했다.

하늘에서는 내리는 진눈깨비와 숲에 흩날리는 낙엽은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고 있었다. 낙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한라산 계곡과 숲, 그 숲을 걷는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더욱이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끼리의 만남 속에 나누는 숲의 대화는 낙엽 타는 냄새처럼 고소했다.

▲ 깊은 계곡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야 돌오름 갈수 있다. ⓒ 김강임
▲ 재배지에서 만난 표고버섯 50분 정도 걸으면 표고버섯 재배지가 나타난다. ⓒ 김강임
▲ 가는길에 암석으로 이뤄진 굴을 만날 수 있다 ⓒ 김강임
 

한라산 자생식물 숲 타는 냄새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참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한라산에 자생하는 나무들은 하나씩 옷을 벗었다. 

50분 정도 걸었을까.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깊은 산속 민가에 도착했다. 모두 입이 얼어 있었다. 일행들은 표고버섯 재배지 평상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일 수 있었다. 한라산 기슭의 깊은 골짜기에서 마시는 커피 맛과 어우러진 숲 타는 냄새, 뭐랄까.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온몸을 녹이는 여운, 그 맛을 숲에서 들이마신 공기.

다시 걷기 시작한 길은 돌 계곡. 현무암을 밟고 계곡을 지나니 조릿대가 어우러진 작은 소로가 나타났다. 단풍나무 어우러진 숲길은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출발할 때 불던 바람이 깊은 숲에 들어서니 고요하다. 그 고요함을 깨고 가을을 고집하는 단풍나무가 가을 여운을 남긴다. 여름 숲과 가을 숲이 얼마나 울창했을까? 우리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보며 봄과 여름, 가을 숲을 보는 듯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존재하듯 말이다.
   

▲ 종형 돌오름 능선을 오르고 있었다. ⓒ 김강임
▲ 청미래넝쿨 돌오름 기슭에서 만난 청미래넝쿨 ⓒ 김강임

신이 숨겨 놓은 기생화산, 분화구 식별 어려워

적당히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조화를 이룬 숲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과 같았다, 그래서 더욱 걷는 재미가 쏠쏠했는지 모르겠다. 표고버섯 재배지를 지나 30분 후, 계곡에서 보이는 돌오름이 나타났다.

숲 속에 이런 오름이 있었다니. 신이 숨겨놓은 기생화산이 아니던가? 돌오름은 돔형 형상을 띠고 있었으나 도무지 몸체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 1번지 돌오름. 표고 865m, 비고 71m의 나지막한 기생화산이지만 돌오름은 많은 비밀을 안고 있다. 화구가 없지만 원추형 오름은 남성을 상징하는 오름으로 꼭 산방산처럼 생겼다. 정상에 바위가 있어서 돌오름 즉 석(石)오름이라 부른다. 또한 신이 서 있는 모습 같아서 신선오름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분화구능선을 따라 걸어보았다.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찾아 않아서인지 가시덤불과 구상나무, 삼나무, 청미래넝쿨의 빨간 열매가 인상적이었다. 분화구의 모습을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 깊은 숲 속까지 들어온 묘지가 눈에 띄었고, 암굴을 볼 수 있었다. 이 깊은 산골까지 제주 역사의 아픈 흔적이 자리 잡고 있다니. 그래서 사람들은 돌오름을 마법의 성이라 불렀을까?
   

▲ 돌오름 능선에서 본 한라산 속밭 ⓒ 김강임
▲ 돌오름 능선에서 바라본 한라산 오름군 ⓒ 김강임

숲에 뿌리 내린 돌오름, 풍경 감미롭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감미롭다. 한라산 성판악의 오름 군과 성판악의 속밭 풍경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그때야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오름정상에서 말하는 한라산, 그는 오름의 아버지였다.  
  

▲ 조릿대 숲을 지나 하산 조릿대 어우러진 숲길. ⓒ 김강임

드디어 하산. 우리는 삼나무와 구상나무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내려왔다. 배가 허기진 만큼 마음도 비웠더니 걸음도 빨라졌다. 하늘에서는 첫눈이 내렸다.

돌오름에서 내려온 우리는 다시 계곡을 등지고 숲을 따라 걸었다. 숲길 기행에서 만난 신이 숨겨놓은 기생화산 돌오름. 언젠가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라산 자락 숲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솟아 있는 돌오름, 그곳에서 나는 숲 타는 냄새를 맡았노라!"

덧붙이는 글 | 돌오름은 신선오름으로, 이곳에서 최후를 맞는 노인은 신선이 되어 영생한다는 전설이 있다한다. 그렇기에 자식들은 늙고 병들은 부모를 오름자락 굴에 모셔와 음식을 마련했다 한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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