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못본지 한달 반, 관람객 웃음소리에 눈물이 나요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조련사 박은주씨(25세)는 바다사자에게 줄 생선을 손질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바다사자는 입맛이 까다롭기 때문에 가장 싱싱한 고등어를 골라 내장과 껍질을 없애고, 잘게 썰어두어야 한다. 공연하는 틈틈이 먹이를 던져주어야 놈들도 흥이 나서 ‘예술혼’을 발휘한다.

“공대에 들어갔는데 적성이 안 맞아서 힘들었어요. 신문에서 조련사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거다 싶어 지원했죠.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거든요”

퍼시픽랜드는 돌고래와 바다사자, 원숭이 쇼를 공연하는 곳으로 제주에서 빠지지 않는 관광 코스이다. 여름 휴가철에는 한 회 공연에 2천 명까지 몰리기도 한다.

   
은주씨는 수습 시절부터 지금까지 바다사자 조련을 맡고 있다. “돌고래가 제일 귀여운 줄 아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다”는 은주씨는 정작 바다사자가 모두 몇 마리냐는 질문에 얼른 대답하지 못한다.
손가락을 꼽으며 “보배, 잠보, 왕눈이, 다정이....” 헤아리고 나서야 “8마리네요” 대답한다. 눈을 반짝이며 “왕눈이는 도도하고, 보배는 어리광이 많고, 잠보는 눈치가 9단이고...”하는 식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소개하는 은주씨에게, 바다사자는 단순한 공연용 동물이 아니다.

퍼시픽랜드는 성수기에는 하루 다섯 차례, 평소에는 하루 네 차례 공연을 선보인다. 은주씨를 포함해 여성 조련사들은 쇼 아나운서까지 겸하는데, 공연 내용을 소개하고 관객의 반응을 유도하는 역할이다. 뜨거운 조명 밑에 서서 한 시간 내내 큰소리를 내야하기 때문에 공연을 마치고 나면 탈진 상태가 된다. 어떤 때는 원숭이가 관객석으로 뛰어 나가거나, 바다사자가 시큰둥하게 딴청을 부려 진땀을 빼기도 한다.

요즘은 추석 성수기라 하루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퍼시픽랜드를 찾는다. 평소 같았으면 “우리 친구들이 여러분을 위해 멋진 재롱을 준비했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라며 무대를 열었을 은주씨는, 그 대신 정문에서 커다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제가 여성 조련사 중에서 제일 고참인데, 지금 기본급이 61만원이에요. 시간외 수당까지 포함해도 이것, 저것 다 떼고 나면 실제로 가져가는 돈은 70만원 정도구요. 최저 임금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죠”

은주씨의 파업 투쟁은 벌써 50일 가까이 되어간다. 아니, 엄격히 말하면 파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노동조합에서 월차 휴가와 생리 휴가를 쓰면서 준법 투쟁을 벌인 지 9일 만에 회사에서 직장폐쇄를 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일하겠다고 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뒤로 지금까지 은주씨는 바다사자를 만나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요구는 정액 10만원 인상과 사내 자판기 운영권의 양도이다. 회사는 인상률이 10%가 넘는다며 펄펄 뛰지만, 절대임금 자체가 낮기 때문에 지나친 요구라고 일축할 수 없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은주씨는 지금 파업도 파업이지만, 바다사자 걱정이 태산이다. 은주씨가 보기에 회사는 동물들을 살아있는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작년 8월에는 할머니 바다사자인 하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극구 말렸는데도, 회사는 “무대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공연은 해야 된다”며 강행했다. 결국 하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열흘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고, 두 눈까지 실명한 상태로 좁은 수족관에 갇혀 있다.

“원래 전담 수의사가 있긴 했는데 일년에 한 두 차례 형식적으로 체크하는 정도였어요. 그나마도 작년에 계약해지를 했구요. 이유요? ... 잘 모르겠어요”

조합원들이 일을 하지 못한 지난 50여일 동안, 회사는 비조합원을 동원해 공연을 하고 있다. 수습 기간이던 직원과 영업팀 직원을 일주일 정도 교육해 공연에 투입했기 때문에 동물과의 호흡이나 진행에 엇박자가 생기기 일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관람객은 처음 쇼를 보는 거라 원래 이런 거려니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 점이 은주씨는 너무 속상하다.

“조합원들이 공연장 바로 옆 로비를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하는 소리가 다 들려요. 우리가 듣기에는 너무 어색해서 민망할 정도인데, 관람객들은 잘 모르시죠. 웃음소리가 들리면 너무 속상해서 눈물까지 나요”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가족들이 공연을 보고 돌아가지만, 은주씨는 모슬포에 있는 고향집에 가지 못한다. 점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니까 벌써 열흘이 넘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돈 벌면 어련히 알아서 챙겨주지 않겠냐”던 아버지가 지금은 은주씨를 이해해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도 중문관광단지에는 퍼시픽랜드의 홍보노래가 울려 퍼진다. ‘우리들의 멋진 천국 퍼시픽 랜~드~’

“도대체 누구의 천국이라는 거죠?”
은주씨의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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