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누드 공개한 1급지체장애인 이선희씨 "장애여성은 제3의성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만이 보여지길 바란다. 그것이 외모이든 마음이든.

여기 남에게 공개하기 힘든 자신의 상처를 당당히 세상에 드러내고 사람들의 인식전환을 요구하고 나선 용감한 한 여성이 있다.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상담간사로 일하고 있는 이선희씨(30).

1급 지체장애인인 그녀가 자신의 누드사진을 공개한 것은 지난 2일 장애인의 대변지로 알려진 인터넷매체 에이블뉴스(http://www.ablenews.co.kr)를 통해서이다.

이씨가 비장애인도 힘든 누드사진 촬영과 그를 공개한 것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적 차별요소를 갖고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장애인이 무성의 존재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던 21살. 그 해 봄은 그녀에게 참으로 혹독하게 다가 왔다.

▲ ⓒ제주의소리
친구들과 함께 놀러갔던 용두암 계단에서 그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목뼈 5, 6, 7번을 다치는 바람에 하반신 마비와 함께 손마저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중증장애를 입게 됐다.

그 꽃 같은 나이에 그런 일을 당한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죽음을 생각하리라. 이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고 직후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원망과 함께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던 이씨. 그러나 가족이 있었기에 힘겨운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사고 후 2년여의 방황을 끝내고 어차피 살아가야 한다면 당당히 삶을 즐기리라 마음먹은 이씨.

사고 후유증을 털어 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이씨에게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았다.

어렵게 취업한 곳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해고당하기를 반복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그녀는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뜻을 모아 장애인자립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지금의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개설하게 됐다.

현재 이선희씨는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상담간사로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을 모집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의 사무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눠봤다.

▲ ⓒ제주의소리
- 누드사진 공개로 인한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
"용기가 대단하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뻤다. 돈 벌려고 한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마음은 아프지만 그런 의도가 전혀 없기에 그들 앞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다"

- 누드는 언제부터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누드는 예전부터 한번 찍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고 후 장애여성으로 생활해 오면서 제3의 성으로 간주되는 장애여성의 현실에 부딪혔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꼭 한번 찍고 싶었다"

- 누드를 촬영하는 것과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비장애인에게도 힘들었을 텐데.
"가족과 동료들이 없었으면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누드촬영 의사를 밝혔을 때 첫 누드사진을 찍어주실 정도로 어머니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로 항상 자리를 지켜주셨다. 자립생활센터 동료들도 나의 결심에 동조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 누드촬영이 처음이 아닌가요.
"(웃음) 정식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집에서 연습삼아 찍어 봤다. 그 때는 어머니가 직접 촬영해 주셨다"

-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일이 잘 되려니 기회가 좋았던 것 같다. 서울에서 여성장애인단체를 준비중인 선배가 '장애여성아카데미'를 개설하는데 장애여성의 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평소 내 생각을 알고 있던 선배가 장애여성아카데미와 연계해 누드촬영을 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왔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그 후 장애인의 대변지라 할 수 있는 에이블뉴스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친구가 나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다기에 이도 수락하게 됐다"

- 누드 공개의 의도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 전환을 꾀하고 싶었다. 장애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3의 성이나 또는 무성의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슬프다. 장애여성을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인식도 많은데 이것을 깨고 싶다. 장애여성도 비장애여성과 마찬가지인 여성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다"

- 이번 누드 촬영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내 몸에 대해 자신 없어 하던 때가 있었다. 사고 후 몸의 여기저기에 수술자국과 흉터들이 많아 누가 보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예쁘지 않은 내 모습을 싫어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하지만 자립생활센터 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세상의 보편적 미에는 부합하지 못하겠지만 장애와 상처를 갖고 있는 여성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자국과 흉터들이 그대로 촬영되기를 기대했는데 작가는 나름대로 아름다운 작품을 원했는지 그런 부분이 잘 나타나지 않아 가장 아쉽다"고.

덧붙여 이씨는 "돈 때문에 누드를 촬영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꼭 밝히고 싶다. 상업적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선희씨.ⓒ제주의소리
누드를 통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씨는 "장애는 혼자만의 장애가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장애를 부여하고 고통을 준다"며 "교통사고 등으로 후천적 장애가 많이 발생하는 요즘 사람들이 '나나 내 가족도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장애인이나 그 가족을 대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고가 난 후 2년 정도 지나자 점차 안정을 찾았다는 이선희씨.

스스로를 봤을 때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나갔지만 사람들의 시선과 부족한 장애인 편의시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일반휠체어도 아니고 전동휠체어다 보니 사람들이 한번 더 쳐다본다" 고 말하는 그녀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것. 쳐다보는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좀더 예쁜 척을 해준단다.

그리고 부족한 편의시설로 인한 불편을 그녀는 참지 않는다. 당당히 요구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이씨는 장애인화장실이 없는 극장에 장애인화장실 설치를 요구했고 이를 실현시켰다.

이선희씨는 "진정한 장애인복지는 불편을 해소하는 복지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씩씩하고 당당한 그녀도 힘들 때가 있다. 아무리 친구 같고 든든한 후원자인 어머니가 계셔도,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도 말 못하는 고민들이 생긴다. 그 때는 완전히 혼자가 돼 하나님께 자신을 맡긴다. 혼자 울기도 많이 했다.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그녀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더욱 컸으리라.

이선희씨는 말한다. 장애인들이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하지는 못한다고. 결국 혼자가 되거나 시설에 보내지는데 정해진 시간에 밥 주면 밥 먹고 통제되며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고.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이 필요하다고.

▲ ⓒ제주의소리
이씨는 "장애인들도 분명히 사회에 참여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너무 장애 분야로만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중증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에 참여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귀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멋있는 놈이 없어서 아직…"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당당함이 세상의 벽에 부딪혀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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