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간첩조작사건] (3) 고문 후유증 평생 고통, 피해자 김두홍 아내 고정일 씨

힘으로 권력을 움켜쥔 군사독재정권은 정치적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민간인을 간첩으로 몰아넣고 반공 분위기를 조성, 여론의 관심을 돌렸다. 무고한 피해자들은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했고, 제대로 된 변호조차 받지 못한 채 유죄판결을 받았다.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사건만 20건, 피해자만 53명에 달한다. [제주의소리]는 조사보고서에 나타난 제주출신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의 인터뷰 녹취록을 바탕으로 억울한 그들의 사연을 매주 한 차례 소개한다. / 편집자 글

“무서워하는 게 병이 됐어요. 걸핏하면 “(나를) 잡으러 온다!”고 해요. (나는) “누구 올 사람 없다.”고 해도 막 숨어요. 그땐 땔감으로 보릿대, 유채낭을 사용하던 시절인데, 남편은 누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면서 보릿대를 쌓아놓은 곳으로 가서 그 속에 숨기도 했습니다.”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 고정일 씨 인터뷰 중)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의 아내 고정일 씨. 남편인 김씨는 일본에 살고 있는 큰집의 제사와 벌초를 대신한 고마움으로 초청받은 일본을 여행차 다녀왔다가 간첩이 됐다. 질투심을 품은 사람이 ‘피해자가 일본에서 조총련을 만났다’며 공안당국에 밀고했고 김씨는 1982년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끝에 허위로 자백하고 재판에 회부됐다. 사진=김종민. ⓒ제주의소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의 아내 고정일 씨. 남편인 김씨는 일본에 살고 있는 큰집의 제사와 벌초를 대신한 고마움으로 초청받은 일본을 여행차 다녀왔다가 간첩이 됐다. 질투심을 품은 사람이 ‘피해자가 일본에서 조총련을 만났다’며 공안당국에 밀고했고 김씨는 1982년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끝에 허위로 자백하고 재판에 회부됐다. 사진=김종민. ⓒ제주의소리

고문 충격에 매일 악몽을 꾸고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됫병으로 사와 들이켜야만 잠들었다. 지옥 같은 날이 계속되자 조상님께 올릴 제삿밥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뒤엎었고, 뭐든 무서워하는 게 병이 됐다. 

큰집의 제사와 벌초를 모두 대신한 고마움으로 초청받은 일본에 관광차 다녀온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친척을 만났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간첩이 된 故 김두홍 씨 이야기다. 

피해자인 고인은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아이들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모진 고문을 받은 고인은 집으로 돌아와 생전 입에도 안 대던 술을 마시고 마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고인과 함께 살아온 아내 고정일(1931년생) 씨는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남편을 데리고 7남매를 보리밥 먹여가며 억척스럽게 키워냈다. 

어떻게 해결됐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고 씨는 “이제까지 살아왔는데 어떡하겠나. 그래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 누굴 탓하거나 고소해도 받아줄 사람도 없고, 요즘 같으면 붙어볼 텐데”라며 헤아릴 수 없을 한스러운 과거를 회상하곤 말끝을 흐렸다.

# 일본 여행 중 조총련 친척 만났다고 간첩?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김씨는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데다 일본에 살고 있어 제주를 찾지 못하는 큰집의 벌초와 제사, 명절 차례를 모두 대신했다. 그러자 김씨의 큰어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김씨를 일본으로 초청해 몇 개월간 여행을 시켜줬다. 

하지만 초청받아 다녀온 일본 여행은 ‘간첩’ 누명을 뒤집어쓰기 좋은 공안당국의 먹잇감이 됐다. 일본에 사는 친척 중에 조총련계가 있었기에 더 매력적이었다. 

김씨는 일본을 다녀온 2년여 뒤인 1982년 6~7월쯤 체포됐다. 공안당국은 일본 여행 때 조총련과 접촉한 뒤 제주에 돌아와 북한을 찬양하고 남한을 비하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농사를 짓는 농부일 뿐이었던 김씨가 어느새 체제 전복을 위한 간첩이 된 것. 

공안당국은 김씨를 체포해 모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냈다. 오죽하면 김씨가 집으로 돌아온 뒤 아내에게 “사람들이 몽둥이를 옆에 두고 취조했는데 히여뜩(아뜩)해서 아들 이름도 잊어버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 고문 후유증에 술만 들이켜, 병이 된 ‘무서움’

풀려난 뒤 갖은 약을 먹어도 아픔은 쉬이 가시질 않았고, 걸핏하면 누가 나를 잡으러 온다며 무서워하는 게 병이 됐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쌓아놓은 보릿대 속을 비집고 들어가 숨는 일도 잦았다.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와 도마에 내리꽂은 채 혼잣말을 하고, 하루는 제사를 앞두고 해서 뭐하느냐며 부엌에 있는 솥을 모두 엎어버렸다. 아내 고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방을 찾아 여러 차례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매일같이 술을 됫병으로 사와 들이켰다. 술 때문에 쓰린 속을 끓인 라면 반쪽으로 달래가면서 계속 술을 입에 댔다. 어느 날엔 책을 태워야 아이들이 학교를 못간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마루에 짚더미를 가져와 불을 질렀다. 

다행히 동네 주민들은 억울하게 간첩이 된 그에게 손가락질하거나 멀리하진 않았다. 억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재판 당시 법정을 찾아가 탄원하기도 했다.

김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재심 청구를 위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하는 등 진실을 찾아 나선 상태다.&nbsp;사진=김종민.&nbsp;ⓒ제주의소리<br>
김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재심 청구를 위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하는 등 진실을 찾아 나선 상태다. 사진=김종민. ⓒ제주의소리

# 일본 여행 시샘? 경찰 사돈이 밀고해

충격적인 사실은 김씨가 일본에 조총련을 만나고 왔다며 밀고한 사람의 실체였다. 조총련계 친척 A씨의 형제인 B씨, B씨의 아내인 박OO씨의 친오빠이자 경찰인 C씨가 이 사실을 알고 밀고한 것이었다. C씨는 즉 김씨 집안과 사돈 관계였다. 

제주에 있던 박씨는 피해자 김씨가 일본에서 조총련을 만나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경찰인 친오빠와 함께 밀고했다. 일본에서 만난 조총련은 박씨 남편의 동생, 즉 시동생이었다.

김씨의 아내 고씨는 인터뷰에서 박씨가 밀고한 이유를 ‘질투’로 추측했다. 자신도 일본에 가고 싶은데 시어머니(김씨의 큰어머니)가 김씨만 초대해 일본 관광을 시켜줬다는 치기 어린 행동이라는 것이다. 

박씨의 남편인 B씨는 평소 일본을 오가며 살았기에 형제인 조총련계 A씨와 김씨가 만난 사실을 알았을 수 있다. 맥락상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박씨가 C씨와 함께 밀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고씨는 박씨를 찾아가 왜 밀고했느냐고 따졌지만, 박씨는 조총련을 만난 것 아니냐며 되려 따져 물었다. 박씨 오빠인 C씨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고씨는 무서워서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가진 것 없이 아이들만 남은 상황에서 고씨는 조용히 살아야만 했다. 

고씨는 “큰집의 초대를 받아 간 일본 여행 중 그 집 아들인 친척을 안 만날 수 있겠느냐”라면서 “자기도 일본에 가고 싶은데 자신은 초청하지 않고 남편만 관광을 다녀오니 질투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억울한 사연 말을 하니 속이 조금 풀린다”

고씨는 술에 취해 “나가라”고 외치는 남편과 자신만 바라보는 7남매를 데리고 힘들게 살았다. 시어머니마저 아들 없이는 못 산다며 암탉이 울면 날이 밝느냐고 하는 마당에 의지할 구석조차 없었다. 여기저기 울어대는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렇게 살았다. 

큰 아이들은 억울한 아버지의 간첩 누명 때문에 연좌제 피해를 고스란히 겪어야만 했다. 국가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고, 나라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신념도 연좌제 앞에선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의 큰아들은 “셋째 동생이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해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봤는데 맨 마지막 순서인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며 “말은 신체검사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핑계고 사실 연좌제로 인해 떨어진 것으로 본다. 이후 동생은 일본으로 가 15년 뒤 돌아왔다”고 말했다.

고씨는 “복장 터지는 세월을 그냥 그렇게 살다 보니 아흔이 넘었다. 글을 알았으면 내가 살아온 역사를 썼을 텐데”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다 보니까 속이 조금 풀린다”고 했다.

김씨는 억울함을 풀기 위한 재심도 받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대신 아들이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재심 청구를 위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하는 등 진실을 찾아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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