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기념으로 온 가족이 이불 바느질을 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겨울 따뜻한 날을 골라 이불호청을 뜯어냈습니다. 속살과 피부를 분리하듯 솜이불에서 호청을 뜯어내는 일은 어린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던 놀이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솜이불과 호청이 꼭꼭 여며지도록 기웠던 실을 군데군데 가위로 잘라놓고 한꺼번에 쫘악 찢듯이 벗기면 묘한 쾌감도 들었습니다.  
  

   
▲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이제 바늘귀에 실꿰기는 원재의 몫이 되었습니다. 원재는 실을 꿸때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생각난답니다. ⓒ 제주의소리 강충민

그 당시에는 신정을 지냈으니 아마 겨울방학이 바로 시작된 직후였을 거라 짐작이 됩니다. 어머니는 당신 나름대로 새해맞이 행사를 하셨던 셈이지요.

어머니가 마당 수돗가 커다란 대야에 뜯어낸 이불호청을 담그고 빨래 방망이로 그것들을 두드리면 마치 힘센 대장장이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제주사투리로 빨래방망이를 '덩드렁마깨' 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시름, 방망이질로 날려버리시던 어머니

술 마신 날이면 잔소리를 늘어놓던 아버지, 늘 쪼달리던 살림살이에 대한 시름도 빨래 방망이질에 힘차게 날려버렸던 것이지요.

눈이 부시도록 하얀 호청이 마당 빨랫줄에 만국기처럼 펄럭이면 저는 그것들 사이로 헤집으며 동생과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골목에서의 신나는 축구는 잠시 뒷전으로 미룬 채 말이죠.  
   

   
▲ 바느질 교육 각시가 원재에게 바느질 하는 요령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 제주의소리 강충민

저녁이 되면 마른 이불호청에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솜이불에 그것을 입혀 실로 촘촘히 바느질을 합니다. 한땀 한땀 정성스레 이불을 꿰매다 중간 중간에 저를 부릅니다.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은 온전히 저의 몫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새로 단장한 이불을 덮으면 풀을 먹여 조금은 까칠한 요의 감촉이 너무나도 좋아 잠이 잘 들었습니다. 

"자, 이불 꿰매자."

어릴 적 추억에 깊이 빠져 있을 즈음 각시가 이불호청을 잔뜩 거실에다 놓았습니다. 두툼한 겨울이불 호청이 많이 더러워져 있어 아침에 세탁기에 놓고 돌렸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어릴 적 빨랫줄 대신 방바닥에다 그것들을 펴서 말렸습니다.  
  

   
▲ 원재가 바느질에 소질이 있습니다. 요령을 가르쳐 주니 금방 따라 합니다. ⓒ 제주의소리 강충민

안감인 솜이불에 겉감인 호청을 씌워 지퍼로 한 번 쭈욱 올리면 그만이지만 몇 년 전부터  그 위에 다시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느질을 하지 않으면 솜이불과 호청이 따로 놀아 이불을 덮을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더군요. 어릴 적 추억 그대로 다시 그렇게 하게 된 것입니다.
   

   
▲ 이불을 구간으로 나누어 각시와 저의 속도와 솜씨를 비교해 보고 원재가 점수를 매기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저의 한판승! 각시가 '아들은 늘 아빠편'이라고 투덜댔습니다. ⓒ 제주의소리 강충민

이제 만 9년이 다 되어 가는 이부자리는 각시가 결혼하면서 장만해 온 것입니다. 풍성하던 솜도 많이 내려 앉아 신혼 이불의 형체는 아예 없지만 아직도 추운 겨울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나게 하는 고마운 것입니다.

"아빠, 난 바늘에 실을 꿸 때마다 속담이 생각나."

우리 집 실 꿰기 담당 원재가 가볍게 그것을 성공시키고는 한마디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잖아. 이불에 바느질을 하지 않으면 솜이불이 가운데 뭉쳐져서 우리 가족이 덮기 힘들잖아."
"이야 우리 아들 대단한 관찰이네. 그것만으로도 멋진 동시가 되겠다."

가정, 가사 늘 100점 맞았다는 우리 각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일부러 과장되게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원재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바느질에도 도전했습니다. 바늘을  비스듬히 뉘인 상태에서 솜이불에 꽂고 밖에 나온 부분은 작게 하는 바느질을 곧잘 따라 했습니다.

바느질 행사의 총 감독은 우리 각시입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각시는 고등학교 때 가정,가사를 늘 100점 맞았다는 말을 빼뜨리지 않고 꼭 합니다.  바느질을  저보다 잘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저희 때는 남학생은 기술과 실업, 여학생은 가정과 가사를 배웠는데 요즘은 남학생, 여학생이 똑같은 과목을 배운다니 그건 참 좋은 일입니다.   
   

   
▲ 방해대장 강지운 이불 한 채 바느질을 완성하니 우리집 방해대장 강지운이 떡하고 자리를 앉습니다. "야 신난다."를 연발했습니다. 우리 딸의 미소처럼 2008년은 환한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강충민 제주의소리

이렇게 해서 이불과 요 각각 두 채씩을 바느질로 꼭꼭 여미니 참 뿌듯해집니다.

묵은 2007년의 때를 씻기듯 깨끗이 세탁된 호청에 2008년의 희망을 바느질로 꼭꼭 여미니 우리집 해맞이 행사는 나름대로 썩 괜찮았다고 자평해 봅니다.

여러분 2008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제주의소리>

<강충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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