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지역적인 비전이 가장 현실적이다

2008년 새해가 밝았다. 2월에는 새 정부도 출범할 예정이다. 4월에는 총선도 예정되어 있다.

이런 정치적 일정과 더불어 제주지역을 둘러싼 여러 환경도 변화할 것이다.

대선 당시에 이명박 당선자가 내세웠던 공약들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총선 때에 여러 정당과 후보들이 내세울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대선이나 총선 때에 내세운 지역 관련 공약들이 모두 잘 지켜진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표를 수집하기 위해 내세운 지역공약들중 상당수는 폐기되거나 형식적인 생색내기에 그치게 된다. 그것은 공약 자체가 애초에 타당성, 현실성이 부족했거나, 기득권집단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기 때문이다.

점점 더 냉혹해지는 현실

그래서 대선이나 총선 당시에 내세운 장미빛 공약들에 막연하게 기대하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실은 어떤가? 한마디로 냉혹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대선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제주지역에 영향을 미칠 두가지 일이 일어났다. 한가지는 경제자유구역이 추가 지정된 것이다. 현재 부산.진해, 광양만, 인천의 세군데에서 추진되고 있던 경제자유구역이 확대되었다. 지난 12월 22일 서울-경기, 대전-충남, 전북이 새롭게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내륙지방과 동해안을 뺀 전국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경제자유구역을 남발하는 정책이 잘못된 방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식으로 정책이 추진되면 제주는 간접영향을 받게 된다. 제주가 추구하는 국제자유도시 비전의 경쟁자는 국외에도 있지만, 국내의 경제자유구역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역경제의 규모, 인적자원, 각종 인프라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제주는 국내의 6개 경제자유구역과 경쟁해야 하는 셈이 되었다.

두번째로 중요한 변화는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이 지난 12월에 제정되어 공포된 것이다. 이 법에 의해 전국의 해안권이 개발되게 되었다. 이 특별법이 포괄하고 있는 해안권에는 전국 73개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새만금개발특별법도  통과되었다. 이런 해안 지역의 개발계획도 제주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관광 등에 있어서 잠재적인 경쟁자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이런 식의 특별법이 남발되면 국가의 지원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특별법 공화국이 키우고 있는 환상

최근 몇년간 대한민국은 '특별법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각종 특별법들이 양산되었다. 어려운 지역경제 상황과 맞물려 특별법들은 지역주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정치인들과 정책담당자들은 '장비및 전망'으로 환상을 더욱 키우고 있다. 그러면서 특별법들은 계속 제정되고, 점차 특별법이 포괄하는 지역이 넓어져서 이제는 전국이 각종 특별법의 대상지역이 되고 있다. 제주는 그 중 하나의 지역일 뿐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국의 지역들은 유사한 지역개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모두 외부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그것을 위해 개방을 하고, 그것을 위해 특례조항을 통해 개발을 쉽게 하려고 한다. 그런 유사한 지역개발비젼들이 경쟁을 하는 구도가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구도하에서는 물적, 인적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 결국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는 수도권에 가까운 지역이 유리할 가능성도 높다. 그 외의 지역에서는 지역의 자연환경이 파괴되면서도 이익은 외부자본이나 몇몇 건설업자들이 취하는 식의 '약탈적 개발'이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비전은 그 지역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이다.  제주의 경우에는 제주가 다른 지역에 비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제주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보고, 그에 기반을 두고 지역 비전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비전도 점검되고 평가받고 수정되어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고 환경이 변화하는데도 비전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 비전은 희망이 아니라 질곡이 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

▲ 하승수 교수 / 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결국 지금의 상황에 맞게 모두가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자치도나 특별법이 지역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대선이나 총선 때에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그 공약들이 다 실행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행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공약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현실가능한 비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어야 한다. 제주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지역고유의 역사와 문화, 제주가 가진 산업구조적 특성, 그래도 현재 제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법적 지위(특별자치도, 세계평화의 섬)를 잘 살릴 수 있는 지역비전은 무엇인지가 끊임없이 토론되어야 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비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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