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스님의 편지]② 나의 고향은 길이었다.

<제주의소리>가 무자년 새해를 맞아 오성 스님의 편지’라는 새로운 코너를 시작했습니다. 한 수행자의 눈에 비친 생명과 자연의 이야기, 그리고 성찰의 메시지가 육필로 쓰인 가슴 따뜻한 '편지'처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성 스님은 제주출신으로 1988년 김녕 백련사에서 출가했습니다. 지난 1992년 해인사 강원과 1996년 지리산 실상사 화엄학림을 졸업했습니다. 이후 제방 선원(諸方 禪院)에서 안거 수행하고 해인사 강원의 학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제주를 떠나 제방에서 운수납자의 길을 걸으며 정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 나의 고향은 길이었다.ⓒ 오성 스님

눈이 오는 겨울, 여행하고 있습니다.
참 많이도 옵니다.
걷다가 추위를 이기지 못해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향하는 목적지나
뚜렷한 이유가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나의 고향은 길이었던 것 같아
언제부턴가 나를 만나고 싶으면
길 위에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고향은 길에 있습니다.
마을이나 집이란
우리가 잠시 길을 걷다 피곤하여 걸터앉은
인생의 쉼팡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쉼은 잠시의 편안일 뿐
안주와 집착, 소유와 갈등을 키워
우리의 영혼에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떠나려할 때-나아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미련과 아쉬움이라는 애착의 끈만
더욱 단단히 온몸을 옭아맬 뿐...
진정한 쉼은 길 위에 있습니다.

▲ 길은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 오성 스님

▲ 오성 스님 ⓒ제주의소리

걸음을 옮겨 길 위에 설 때는
혼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단지 걷기만 하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식의 문이 열립니다.
그동안 분주히 떠돌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길이 벗이 될 쯤 이면
고향을 만나게 됩니다.

길은 누구를 만나기 위해 나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찰이 이루어집니다.
성찰이란 고독의 불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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