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이 쓰는 제주이야기 1] 신구간

▲ 신구간 주소이전 안내문 신구간에 이사가 집중되나 보니 우체국앞에도 이렇게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한동안 반송되는 우편물이 꽤 많겠지요. ⓒ 강충민

“아, 정말 집구하기 힘들더라고요. '신구간'이란 게 있다는 건 제주 와서 처음 알았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지난 달 새로 이사 온 아저씨가 한 말입니다. 전에 한 번 못 보던 얼굴이라 서로 인사를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육지사람(제주사람들은 제주이외의 모든 지역을 육지라고 합니다)이 제주에 와서 처음 겪은 제주풍습일 테지요. 서로 인사를 하며 내리는데 완벽한 서울말 그 자체입니다.

이제 그 분도 서서히 제주에 살면서 제주를 알고 제주사람이 되어 가겠지요. 간혹 제주사투리도 섞어 쓰면서….

그러고 보니 지금이 바로 '신구간'입니다. 대한(大寒) 5일 후부터 입춘(立春) 3일 전이 바로 신구간입니다. 올해는 1월 26일부터 2월 1일까지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주의 신구간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 신구간 이사 원룸 이사도 신구간에 행해집니다. 제주에서는 신구간동안만 하는 이사아르바이트도 있습니다. ⓒ 강충민

신구간(新舊間)은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풍습입니다.

새 신과 오랠 구의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 새로움과 오래된 것의 사이라는 뜻입니다. 이 한자에서의 신구(新舊)의 주체는 누구냐 하면 바로 신(神)입니다. 그러니 신구간은 1년 동안 제주를 담당했던 신과 새로 담당할 신의 정기인사이동 시기인 셈이죠. 그러니 신구간 동안은 제주에는 신이 없습니다.

이 신이 없는 시기를 틈타 제주에서는 이사를 하고, 집을 고치거나 합니다. 이 시기에 하면 신의 해꼬지라고 하는 동티를 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새로 오는 신은 그 전의 형태를 당연히 알지 못하니까요.

제주사람들은 신이 1만2천 혹은 그 이상이라고  믿습니다. 그 만큼 제주사람들의 모든 생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신은 위치해 있고 함께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안 구석구석에도 모든 신이 제 몫을 다해 같이 생활한다고 믿는 거지요.

그래서 신들이 제주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집안의 위치, 돌담의 모양, 화장실 가는 길,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도 자연적으로 변형된 것을 제외하고는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사는 그보다 더 큰 일이니 신구간이 아닌 기간에는 거의 엄두를 내지 않았겠지요.

어느 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위치를 바꾸거나 고치면 그 자리에 있던 신들은 많이 혼란스럽겠지요. 내가 있던 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겠고요. 이미 신과 사람의 의식은 같이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신들의 임기가 1년이 아니고 2년 혹은 그 이상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신들도 인간의 습성을 닮아 가끔은 그 임무를 소홀히 할 것이고, 맘에 드는 누구의 집에 집중적으로 특혜를 베풀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제주사람의 일상생활, 길흉화복에 신들의 부정부패가 생길 소지를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신구간에 바로 이사가 집중됩니다.  그러다 보니 육지에서 제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은 집을 구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새로 한 달 전에 이사 온 같은 라인 아저씨도 그랬을 겁니다.  
  

▲ 이사 풍경 어디로 이사를 하는 것일까요? 이사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걸 허락하신 분께 감사드리며 새로 이사가는 집에서는 좋은 일들만 있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 강충민

새로 분양되는 대부분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도 “○○년 신구간 입주”라고 씌여집니다. 그리고 모든 전세나 사글세의 경우에도 이 신구간을 기점으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연중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글세도 열달이 아니고 1년 계약입니다. 제주에는 월세가 거의 없습니다.

신구간 특수라고 하여 이 기간에는 가전제품이나 가구매장에서도 판촉에 열을 올립니다.

새로 이사를 하며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장만하려고 할 테니까요. 또 한 가지 중국음식점에는 자장면 주문량이 평소보다 많아집니다. 이사를 하며 가장 쉽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자장면이니까요.

이제 입춘이 지나면 바로 제주에 다른 신이 옵니다. 새로운 신을 맞이하기 전에, 새로운 신이 저의 속 좁음과 나태함을 깨닫기 전, 이 신구간에 겸허하게 돌아보며 모든 것에 머리 숙일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이야기를 저의 경험을 위주로 하나씩 쓸 예정입니다. 제 자신도 모르는 인용이나 표절에 대비하여 어떤 책이나 논문도 의지하지 않았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래서 어떤 질문이라도 성심껏 저의 의견을 말씀드릴 수는 있으나 그것이 제 지식의 부족함에 대한 공격성 글이라면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다음기사에는 제주의 제삿상 풍경을 쓰겠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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