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동식물이 조화롭게 모여사는 포구

토산포구 주민들은 이 곳을 '집탁개'라고 부른다. '안개'와 '밧개' 두 개의 포구로 되어있다.  ⓒ 장태욱 

일주도로(1132번 도로)를 따라 토산마을을 향해 차를 몰았다. 토산 마을이 가까워지면 넓게 펼쳐진 용암대지 너머로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마을의 동쪽 끝자락에 이르면 바다를 향해 남쪽으로 가는 좁은 진입로가 있다. 이 진입로가 안내하는 대로 끝까지 따라가면 토산포구가 나온다. 작아서 정겹기에 누구든지 마음속에 품어 둘 만한 포구다.

제주에 오면
바다와 만날 일이다
가끔씩 물결 드높고
사나운 바람이 머리칼을 죄 뜯어놓을지라도
(우리 삶은 조금씩 뜯겨져 껍데기를 벗는 게 좋다)

바다 깊은 곳에서 천 년 전 그리움으로
밀려와 소용돌이치는 시원의 소리에
때 묻은 삶을 하얗게 하얗게 말릴 일이다

- 김승립의 <제주에 오면> 중에서 

토산포구에는 사나운 바람은 아닐지라도 제법 강한 바람이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시인이 노래하듯 바다도 스스로 껍데기를 벗으려는 것일까? 파도는 검은 현무암 바위에 부딪칠 때마다 고통을 과장하려는 듯 평소보다 크게 포말을 만들고 있었다.
  

암대극과 돌가시나무 노란 꽃을 피운 것이 암대극이다. 돌 밭에 자라는 풀이다. 그 오른 쪽에 돌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다.  ⓒ 장태욱   
돌가시나무 돌가시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 장태욱
   
여름을 가까이 맞은 토산포구 인근에는 토종식물들이 한껏 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해송은 해풍에도 불구하고 가지를 높이 뻗어 스스로의 근엄한 기상을 드러내고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뻗어나는 회색빛 보리밥나무의 줄기들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해안선 가까이 가자 그 곳에는 연분홍 갯메꽃이 하늘을 향해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검은 바위 위에는 땅채송화와 갯잔디가 작은 구멍에 뿌리를 내린 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암대극이 노란 꽃잎을 활짝 터트린 채 절정에 오른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안개'와 '밧개' 작은 두개의 포구가 모여 기능을 유지한다.  ⓒ 장태욱  

과거 제주사람들은 포구를 '개'라고 불렀다. 이 포구를 주민들은 '집탁개'라 부른다. 집탁개는 '안개(內浦)'와 '밧개(外浦)'로 되어있다. 현무암질 용암이 만들어낸 곶이 포구가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파도를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민들은 그 곶을 '집탁개빌레'라 부른다. '빌레'는 바위 혹은 돌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집탁개의 안개는 썰물에 바닥이 드러나지만 밧개는 수심이 깊어서 썰물에도 포구의 기능을 유지한다. 반대로 밀물이 되면 파도를 막아주던 곶이 해수면 아래로 잠기게 되므로 밧개가 파도에 직접 노출된다. 이 때 포구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안개다.

제주의 포구는 대부분 이렇게 작은 두 개의 포구로 되어있다. 밀물과 썰물 때 서로 교대하면서 포구는 그 기능을 유지한다. 제주의 해안선이 단조롭고 간조 때 드러나는 조간대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생기는 불리함을 이렇게 극복했던 것이다.
  

'집탁개' 동쪽 편에 있다. 옛날 주민들은 썰물에 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이곳에 남게되는 물고기를 잡았다.  ⓒ 장태욱 

포구의 동쪽에는 집탁개빌레가 해안으로 돌출되면서 형성한 둥근 소(웅덩이)가 있다. 밀물 때는 소에 바닷물이 가득 찼다가 썰물 때는 물이 빠지는데, 물이 들어오는 입구에 돌로 테를 두르면 소에 들어왔던 물고기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에 남게 된다. 과거 제주 사람들은 이렇게 어로활동을 했는데, 이 소를 '원'이라고 하고 '원'의 테두리를 이루는 돌을 '원담'이라 했다.

집탁개에서 수중 생물들의 생활을 엿봤다. 이 곳에는 토산리 어촌계 회원들이 어린 소라와 전복의 종자를 넣어 양식하고 있기 때문에 양식 수산물을 일반인이 채취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밤고동 바위에 밤고동이 붙어 있다.  ⓒ 장태욱  
군부 조간대 바위틈이나 돌 밑에서 생활하는 연체동물이다. 자신이 사는 바위와 비슷한 색깔을 띤다. ⓒ 장태욱
배말 조간대에 바위에 붙어 사는 생물이다. 좀체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 장태욱  
 
바다에서 가장 몸이 가볍고 부지런한 동물은 갯강구다. 갯강구 무리들이 바위틈에서 들고나기를 반복하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게라는 놈은 워낙에 눈치를 많이 보는 놈이다. 납작게 서너 마리가 물속에서 물위로 조심스레 눈을 내밀고 있다.

이놈들과 달리 세상이 무너져도 좀처럼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놈들이 있는데, 군부와 배말이 그렇다. 특히 배말이란 놈은 만조에서 물이 빠지기 시작하여 바위 위에 물기가 남지 않고 햇빛이 들어도 웬만해서는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놈이다. 간조와 만조가 반복될 때마다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겪는 스트레스를 어찌 견디는지 측은하기만 하다.

문득 지난 5년간 나라를 이끌었던 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부지런하기가 갯강구만큼 하고, 어려워도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려는 뚝심이 배말만큼 강했다면 서민들의 삶이 이렇게 풍전등화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토산 포구에는 최근에 정비된 해안 산책로가 있다.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좁은 산책로의 양쪽 가에는 사철나무와 돌가시나무, 팔손이, 동백나무 등 재래종 식물들로 채워져 있다. 1㎞ 정도 되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 동안 푸른 파도소리를 반주로 새들이 방문객들에게 끊임없이 노래를 들려준다. 마치 대자연이 나를 위해 잘 짜여진 한편의 마당극을 공연하는 듯하다.
 

   
우진이 같이 따라나선 아들이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자연과 잘 어울린다. ⓒ 장태욱
산책로 산책로 주변에 사철나무, 동백나무를 비롯한 제주토종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 장태욱
   
자연의 협주곡을 들으면서 걷는 오솔길 산책로는 동쪽 '뒷개미'에 이르면 끝난다. 뒷개미는 포구의 동쪽에 있는 후미진 해변의 이름이다. 산책로 끝에서 바라본 뒷개미 뭍에는 푸른색을 자랑하는 해안 식물들 속에서 피어난 돌가시나무 꽃이 순백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토산의 동쪽 해안에는 누구든지 가슴에 품을 만한 아담한 포구가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포구들이 포클레인과 레미콘을 동원하여 바닥을 파고 메우면서 수심을 조절했어도, 이 포구는 원래 두 개의 포구를 원형대로 잘 지켰다. 그래서 맑은 바닷물과 해안 동식물들이 이곳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누구든지 제주에 가면 이 토산포구에서 바다와 만날 일이다.<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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