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돔으로 활기 넘치는 보목마을 바닷가

제주 섬의 모양은 서귀포 시내에서 동쪽으로 조금 벗어나 정방폭포를 지나는 지점에서부터 남쪽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보목 마을은 그 돌출한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그 때문에 제주의 해안 마을들을 경유하며 섬을 일주하는 1132번 도로도 보목 마을은 지나지 못한다. 마을이 이렇듯 감춰져 있어서인지 4·3사건 당시에도 마을은 큰 화를 당하지 않았다.  
  

숲섬 보목 마을에는 숲섬에서 용이 되길 갈망하다 죽은 뱀에 관한 전설이 전해 온다.  ⓒ 장태욱 

숲섬, '내 마음 하나 옮겨 앉은' 그리움

서귀포 바닷가에서 동쪽을 보면 뭍에 무척 가까운 위치에 솟아있는 큰 섬을 볼 수 있는데, 이 섬이 보목 마을을 상징하는 숲섬이다. 서귀포에서 보목마을을 찾아 갈 때에는 숲섬을 향해 가면 된다.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그대 두고 간 하늘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문물과 한숨으로 고개 숙인
먼 바다
새털구름 배경을 이룬
섬 하나

뭐랄까
그대 마음 하나 옮겨 앉듯
거기 떠 있네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아름다운 것은
내가 건널 수 없는 水平線
끝끝내 닿지 못할
그리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 한기팔의 <먼 바다 푸른 섬 하나>

보목마을 해안가에 이르면 숲섬이 외로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 뭍에서 45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바로 눈앞에 다가온 섬일지라도, 닿을 수 없기에 진정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시인의 노래처럼 아름다움이란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보목포구 보목마을에 있는 포구중에 가장 큰 포구다. 이 일대에서 자리돔 축제가 열린다.  ⓒ 장태욱 

서러운 뱀은 죽어서도 섬을 떠나지 못하네

보목 마을에는 숲섬에서 용이 되고 싶은 소원을 풀지 못한 채 원한을 가슴에 품고 죽은 뱀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숲섬에 귀가 크고 몸이 새빨간 뱀이 살고 있었다. 그 뱀은 용이 될 꿈을 품고 매달 음력 3일과 8일이 되면 용왕님께 용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3년을 지극정성으로 빌었더니 마침내 용왕님이 감복하여 용이 될 방법을 전해 주었다.

"숲섬과 지귀섬 사이에 숨겨둔 야광주를 찾아내면 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뱀은 야광주를 찾기 위해 숲섬과 지귀섬 사이 바다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은 깊고 바다 바닥은 바위로 덮여 있어서 야광주를 찾을 수가 없었다. 100년 동안 바다를 뒤지고 다녀도 야광주를 찾지 못한 뱀은 결국 실의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비가 오려면 숲섬의 봉우리에 안개가 끼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뱀신의 조화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숲섬에 여드레당을 짓고 죽은 뱀을 위로하였다. 여드레당이란 여드레(매월 8일)마다 가는 당을 말한다.

보목 마을에 귤이 도입되기 이전에 주민들은 바다에 의존해서 삶을 지탱했다. 토질은 산성으로 척박하여 농사에 불리했고, 경지 면적도 가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잡곡이라도 재배할 수 있는 농토가 얼마 되지 않았다.
  

설랑앞 보목포구 동쪽에 넓게 펼쳐진 연무암 대지다. ⓒ 장태욱 

그 때문에 주민들은 삶의 영역을 바다로 확장했다. 마을은 다시 네 동네로 나눴고, 네 동네마다 바다로 나가는 포구를 따로 가지고 있었다. '배개', '큰머리개','구두미개', '소래기' 등이 그것들이다. 한 마을에 포구가 네 개나 존재한 것을 보면 과거 주민들이 얼마나 바다와 밀접하게 생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거 고문서에는 정술내의 하류에 보목포가 있고, 보목포에는 병선을 붙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나타난 보목포는 보목 마을에 있는 네 포구 중에 '배개'를 말한다. '배개'란 배를 붙일 수 있는 포구를 의미하는데, 다른 포구들은 수심이 얕고 크기가 작아 큰 배를 붙일 수 없어서 주로 테우를 대는 데 사용했다.

최근 정부의 지원정책이 한 마을에 한 포구에만 지원한다는 원칙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보목 마을에는 배개만이 마을 포구로 인정받고 있다. 나머지 포구들은 동네 주민들이 소형선박이나 테우를 정박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방문객들 보목포구에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장태욱

자리돔은 용왕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감춰둔 보배인 듯

보목 마을 바닷가에는 해산물이 풍부히 잡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자리돔이다. 자리돔은 암갈색을 띠는 금붕어 크기의 돔이다.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에 서식하는데, 칼슘이 풍부하고 맛이 있다. 과거 제주에서는 구워먹거나 물회를 만들어 먹었고, 자리젓을 담아 먹기도 했다.

5월이 되어 자리돔이 잡히기 시작하면 자리돔을 찾아 보목포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자리도 제철이 있어서 5월과 6월에 먹는 자리돔은 맛이 있고, 7월이 되면 산란기에 들어서 맛이 떨어진다. 
  

방문객들 자리돔을 사러 몰려든 사람들  ⓒ 장태욱 

내가 방문한 날도 보목포구는 방문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방문객들이 자리돔을 사기위해 다투고 있고, 멀리서 소형 보트가 어선에서 잡은 자리돔을 포구로 운반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자리돔축제가 열리기도 전에 이 정도면 축제가 시작되었을 때 마을이 얼마나 활기를 띨지 두고 볼 만하겠다.

용이 되기를 열망했던 전설속의 뱀이 야광주를 찾아 헤매던 그 바다에서 보목마을 주민들은 자리돔을 잡아 올리고 있다. 어쩌면 자리돔은 용왕이 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감춰둔 축복의 보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돔 금붕어 크기의 암갈색 돔이다. 보목포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리돔이다.  ⓒ 장태욱
  

옛 사람들의 손길, 도댓불과 테우

포구에는 과거 어부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도댓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등대가 없던 시절 어부들은 도댓불에 연기를 피워 입항하는 어부들에게 방향을 알려줬다. 
  

도댓불 보목포구에는 옛 사람들이 불을 피워 방향을 알렸던 도댓불이 남아 있다.  ⓒ 장태욱 

도댓불 옆에는 테우가 전시되어 있다. 테우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구상나무를 재료로 만든 제주도식 뗏목을 말한다. 어로활동에 테우를 이용하는 기간은 음력 3월부터 10월까지였다. 겨울에는 테우를 건조시켜 중량을 줄이고 부력을 높였다.

동력선이 보급된 이후에 테우를 어로에 활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졌고 테우를 만드는 기술을 지닌 장인들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마침 보목 포구에 테우가 전시되어 있고, 자리돔축제에도 소형 테우를 만드는 행사가 있으니 어린이나 학생들이 참여해보면 색다른 체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우 제주도식 뗏목이다. 보목포구에 전시되어 있다.  ⓒ 장태욱  

포구 근처에 있는 해산물 전문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음식점에는 손님이 가득했고 좌석이 부족해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자리물회 식사도중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들도 있었다.

2인분을 주문했더니 물회가 양푼이에 가득 나왔다. 밥에 곁들여 먹으려니 배가 불러 다 먹기 곤란할 지경이다. 음식점 바로 앞에 펼쳐진 현무암 대지와 그 너머 푸른 바다가 시원스럽게 다가왔다. 문득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숲섬에서 신선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다.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일 게다. 
  

자리물회 자리물회 2인분을 주문하면 양푼이로 가득 나온다.  ⓒ 장태욱

보목마을 바닷가에 오면 '그대 마음 하나 옮겨 앉듯 떠 있는' 숲섬이 있고, 옛 사람들의 손길이 남아 있는 포구가 있다. 그리고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싱싱한 자리돔이 있다. 이 마을에서 지금 자리돔이 잡히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제9회 보목자리돔축제

기간 : 2008년 6월 13일 - 15일
장소 : 보목포구 인근

축제기간 동안 테우낚시, 자리돔 시식, 자리젓 담기 ,테우모형 만들기, 바다사랑 해양환경그리기, 해상관광유람, 제지기오름 보물찾기, 해산물 채취, 대나무 낚시, 자리돔 가요제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소라, 전복, 자리돔 등을 싸게 살수 있는 직거래 장터도 운영됩니다.

축제 문의 :064-733-3508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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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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