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폭염이 쏟아집니다.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우려나” 해보지만, 생각해보면 매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마음을 먹습니다. 올 여름은 그 자체가 휴가인 듯 마음이라도 여유롭게 지내자고. 조급하거나 성내지 말고, 찬찬히 음악도 즐겨가면서. 따지고 보면 바쁘다고 하지만, 짜투리 시간 하릴 없이 인터넷 돌아다니느니 그 시간 소중히 책 한 줄 담는 것이 그 자체로 휴식이 될테니. 지리산 풍경을 담아내거나 악다구니 세상, 그래도 평심 흐트러짐 없이 물흐르듯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들려주는 산문이나 시집이면 더욱 적격일 것입니다.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아시나요?

물 강(江), 물 정(汀), 강정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이 마을은 옛날부터 물이 풍부했습니다. 강정천과 악근천이라는 한라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마을이 이 곳이지요. 제주에서 논농사가 행해지던 몇 안되는 지역 중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서귀포시내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 대부분의 먹는 물을 이 곳이 책임지고 있지요. 다른 지역보다 일조량도 많아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꽃을 재배하며, 특히 이 곳 감귤은 그 맛이 달기로 유명합니다.
 
와 보시면 알겠지만, 아름다운 경관에 놀라실 겁니다. 강정마을은 다섯 개의 보호구역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생물권보전지역이기도 하고, 해양생태계보전지역이기도 하지요. 마을 바로 앞에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서귀포 앞 바다 세 개의 섬 중 ‘범섬’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바다 속에는, 저도 영상으로만 봤지만 화려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산호군락이 장관을 이룹니다. 세계에서도 드문 경우라 합니다.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지요. 그 뿐 입니까? 바다로 흐르는 하천에는 은빛 은어들이 춤을 추며 놀지요. 서건도라는 아주 작은 섬도 마을과 마주하고 있는데, 하루 몇 번씩 물길이 열려 자근 자근 까맣고 동그란 바닷 돌을 밟으며 이 섬에 갈 수 있어요. 마치 마을의 정원같은 소담스런 곳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또 어떻구요?
 
15년 동안 유원지 지구로 묶여 재산권행사 제대로 못해도 큰 소리 별로 안내고 조용했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죠. 그래서 낙후됐다는 말도 듣지만, 그렇다고 몇 년 전 이 곳에 골프장 짓는다고 했을때 반겨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에 나서기도 했지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 이 짙은 그림자는 가혹하기만 합니다. 요즘 마을 사람들은 차로도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이 곳 제주시에 와서 제주도청과 도의회 앞에서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1인 시위를 합니다. 1인 시위 ... 대체로 사람들 왕래 많은 시간 골라 한 두 시간 하는게 보통인데, 이 곳 사람들은 순박한 건지, 절박한 건지 그냥 하루 종일 하고 만답니다. 그것도 두 달 동안 한다고 합니다.

절박함이 맞을 겁니다. 바로 1년이 지난, 작년 5월 이 마을은 느닷 없이 첨단무기로 무장한 해군의 전략기지 건설예정지가 된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벌써 6년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후보지로 지목된 제주의 마을, 가는 곳 마다 격렬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당국은 작년에 마치 무슨 작전이라도 펼치듯 여론조사라는 수단을 동원해 기지건설을 확정했고, 이 곳 강정마을이 그 날로 예정지가 되어 버린 것이죠. 기지건설 예정지로 확정된 후 마을 사람들은 놀란 가슴만 쓸어내릴 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몇 몇 분들이 나서기 시작하고, 주민들이 밤마다 마을회관에 모이면서부터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게 되고, 강정마을이 기지건설 예정지로 결정된 것이 부당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8월에는 몇 번의 곡절과 좌절 끝에 주민투표를 통해 마을 사람들 모두의 의사를 비로소 분명하게 모아내게 되었던 거죠.

그럼에도 정부나 군은 아랑곳 하지 않더군요. 일단 결정했으니 따라오라는 것 뿐입니다. 국가안보를 위한 시설을 한다면서, 정작 해당 마을의 주민의사는 이렇게 무시되다니요. 과연 주민의 지지와 협력없는 안보가 성립가능한 것이기나 한 것인지 내내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국가의 결정이지만, 그 자체로 주민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월하기만 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 심사가 요즘 말이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강정마을이 기지건설 예정지가 된 것이 왜 정당하지 못한 것인지, 반면, 마을의 의견은 얼마나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이었는지 충분히 알리는 일에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부 당국도 일부 인정하는 듯 했고, 국회도 이를 알아주어 잘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면 그럴만도 하지요. 새 정부가 들어서더니 강정마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는 커녕, 날로 깊어가는 마을 사람들 간의 일부 찬성주민과의 갈등에도 나몰라라 하는 겁니다. 하긴 이 정부 뭐 다른데 신경 쓸 새 없지요. 제 발등 불끄기 바쁘니. 제주도 당국도 결정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만 고수하고 있지요, 해군은 해군대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밀어붙이죠, 그러니 마을 사람들 어떻겠습니까? 이 마을에 기지건설반대 대책위원장 일을 하는 양홍찬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동네 반장 한 번 해본 일 없는 조용한 분이신데, 요즘 이 분 입에서조차  격한 말도 자주 나옵니다. 이 분이 묵상하듯 눈을 아래로 내리고 생각에 들 때, 저는 옛날 시애틀 추장과 대추리 김지태 리장과 더불어 이 분이 시공을 넘어 만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강정마을의 여여함 그 자체를 꼭 빼닮은 분이죠. 마을 사람들과 얘기 나누면서 더 기막힌 건 뭔지 아십니까? 그래도 비폭력, 평화적으로 버텨오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한다는 거죠. 자기 생존이 걸린 문제가 터졌는데, 갈수록 태산인데 이런 말이 나옵니까? 그 동안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지건설을 막아내든, 설령 못막아낸다 해도,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민주적이고 오로지 비폭력적으로 상대해 나가자 이런 말들 합니다.

우리 운동단체들이 생명평화 마을이라 이름 붙이기 이전부터 강정마을은 이미 생명과 평화의 마을이었던 겁니다.

생명과 평화 마을,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올 여름 축제가 벌어집니다.

무슨 노래공연, 시낭송도 하고 알토란 같은 강정마을 속속 속살을 더듬으며 생명의 기운을 느끼는 걷기행사도 하구요, 어느 날인가는 돼지도 잡고, 한 판 난장도 벌인답니다. 때로는 진중하게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리고 지킬지 토론회도 연답니다. 이 기운들을 모아 강정마을 사람들은 한여름 땡볕도 마다않고 제주도 전역 순례길에 나설 작정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생명의 기운, 난장의 기운을 안고 집과 길의 호흡을 열어 세상과 통하기 위한 불끈 저항의 대열을 만들기도 할 계획입니다.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 지나 겨울로 가는 여정만큼이나 마을의 이 문제가 더 시련에 들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은 지금 축제준비에 한창입니다. 무엇보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합니다. 마을회관에 인터넷 선도 더 깔고, 이부자리 준비하고, 샤워시설도 만들고 있습니다. 오시는 분들 맞이하기 위한 환영의 인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술하는 분들은 이 마을에서 벽화도 그리고, 미술품도 설치하고 퍼포먼스도 한답니다. 글쓰는 분들은 시낭송회도 준비하고, 종교인들은 평화미사와 기도회 준비는 물론, 순례길 인도에도 함께한다고 합니다. 우리같은 시민단체 사람들은 모든 여름 계획을 이 곳 강정마을에서 준비합니다. 수련회도 하고 모꼬지도 하고, 때론 마을 사람들과 축구도 한 판 할려고 하니다. 생태관광하시는 분들은 마을과 인근마을 길 돌며 안내하고 이 마을의 빛을 보여주는 일을 합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모두가 강정마을에서 올 여름나기에 나선거죠.

당신은 어떻습니까? 올 여름 강정마을에 한 번 안 오실렵니까?   /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고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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