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여론조사의 실체적 문제와 대안

여론조사는 중앙정부 보여주기 위한 것

영리병원 도입여부를 사실상 판가름할 도 당국의 여론조사가 임박했다

많은 사람들은 도의 중요한 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 당국은 영리병원 도입정책은 이미 결정되었다고 한다. 어제 도지사가 “이번 여론조사는 도의 방침을 정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은 이를 드러낸 것이다.

도가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정부가 ‘도민이 원하면’이란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영리병원을 추진하고 싶지만, 문제는 국민적 영향이 큰 국가적 사안이고, 그 만큼 국가도 부담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영리병원 정책은 선점효과나 경제효과 보다는 국가정책의 테스트베드차원에서 실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1~2년의 선점효과는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이 논란을 감수하려고 하나? 만일, 1~2년 아니, 넉넉히 3~4년 안에 도가 선점효과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이 정책을 추진한 도 관계자는 이름을 걸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때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작년말 참여정부 청와대 실세로 통했던 김병준 전 비서실장이 참석한 어느 비공개 워크샵에서 특별자치도 추진에 깊숙이 관여했던 모 교수는 “영리병원은 정부의 테스트베드 정책이었다”고 실토한 바 있다.

어쨌든 이번 여론조사는 영리병원 도입이 제주의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느냐를 도민에게 묻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한마디로 도민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앙정부에 보여주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반대여론도 충실히 반영하겠다는 도의 언사는 립서비스가 될 수 밖에 없다.

김태환 지사가 지난 16일 여론조사결 결과 찬성률이 50% 미만이면 포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바로 어제 도민이 반대하더라도 “의견이 성숙해지면 다시 추진하겠다”고 불과 엿새 만에 말을 바꾼 것도 이번 여론조사가 중앙정부에 보여주기 위한 용도라는 것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도민은 중앙정부 설득을 위한 동원대상?

문제는 단지 중앙정부 설득용으로 이뤄지는 여론조사에 너무 많은 사회적 출혈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 도민의 찬성여론을 얻어내기 위해 도가 쏟는 예산, 행정력과 이에 따른 갈등 등이 그것이다. 차차 밝혀지겠지만, 도가 이 여론조사과정에 동원한 방법이 갖는 문제점 등은 또다른 후폭풍의 고리가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더욱 문제는 도 당국의 마인드이다.

도가 이미 영리병원 도입정책을 스스로 결정했다면 중앙정부를 알아서 설득할 일이지, 이를 도민사회의 몫으로 돌리는 태도는 도민을 정부설득용으로 동원시키는 매우 저급한 처사이자 스스로 능력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 정부가 ‘도민이 원한다면’이란 단서를 달았다는 것은 정부도 이 정책에 부담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결국 그 정부부담을 도가 자임해서 떠맡고 이를 도민들에게 돌리는 꼴이 된 것이다.

시간이 없다?

도지사는 기회때 마다 시간이 없음을 호소하고 있다. 입법절차상 빨리 도민이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입법안에 반영할 수 있고, 3단계 제도개선과제 전체를 입법상정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입법절차를 연장하거나, 영리병원 건은 일단 재껴놓고 입법안을 상정하면 된다. 우선 입법절차를 연장하는 방법과 관련해서는, 입법안 상정을 9월 정기국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기국회가 100일 동안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며 다소 시간을 갖고 충분하고도 꼼꼼한 공론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한 것처럼, 지금은 돌아가는 것이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임을 도 당국에게 일러주고 싶다. 둘째, 지난 6월 3일 제도개선입법안을 확정한 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에서도 영리병원건은 민감한 사안으로 ‘철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회 입법과정에서 반영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유보’되었었다. 때문에 영리병원문제가 해결안되면, 3단계 입법 전체가 흔들린다는 식의 도의 논리는 지나친 과장이다. 미리 예방할 길이 있었음에도, 이 과장법 하나로 결국 이렇게 큰 사회적 홍역을 또 다시 치러야 하는 꼴이 되고 말았지 않았나? 따라서 3단계 입법안 상정은 하더라도 영리병원 문제나 영리학교 도입 문제등은 지금이라도 보다 균형되고 충분한 공론의 시간을 확보하고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도 ‘철저한 공론’을 주문한 마당에, 국가도 부담을 갖는 사안이라면 정부에 그 정도의 ‘옵션’은 걸수 있는 것 아닌가?  도민합의(여론조사)했다고 해놓고, 나중에 국회에서 도민 찬반여론이 다시 격돌하는 지난 날의 창피함을 재연하려하지 말고 말이다.

여론조사결과는 결과의 순수성 배제한 의도의 산물이 될 것

결국, 이번 여론조사는 그 결과의 순수성을 일찌감치 상실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실제 여론조사를 위해 도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여론몰이 수준을 넘은 여론조작의 과정이다. 어제 까지 공무원들이 만난 도민이 1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지난 22일 대책위가 공개한 도 내부문건에서도 7월 13일 하루에 만난 도민 숫자가 4천여명에 이른다. 평소 경제살리기 하겠다던 도가 민생현장에 이렇게 나섰다면 또다른 경제효과 명목으로 영리병원 같은 민감한 정책까지 손대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앞선다.

▲ 고유기 ⓒ제주의소리
어제 필자가 속한 단체 사무실에는 어느 통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 항목조차도 공정하지 못할뿐 아니라, 연일 이어지는 동원령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런 식의 제보는 필자가 속한 단체의 사무실에만 수십 건에 이른다.

정책은 의도의 순수함과 더불어 결과의 순수함이 보장되어야 그 정당성이 선다. 그런데 지금 영리병원도입정책을 펴는 도의 행보는 의도의 순수함은 간데 없고, 그 만큼 결과의 순수성마저 심각하게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다른 말로 정책당국 스스로가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면, 비록 당국이 결정한 정책에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오히려 검증을 통한 완성된 정책마련의 기회로 을줄 알아야 하는데, 이런 모습은 기대도 안했지만, 여전히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식의 여론조사로 정부에 민의를 전달하겠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여론조사결과의 부당성을 동반하고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만일, 여론조사 결과 영리병원 찬성률이 높게 나오더라도 이를 ‘민의’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또한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고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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