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평화재단 발기인총회에 올리는 고언
재단 이사장 '정권 코드론'은 4.3역사에 대한 배신이다

▲ 이재홍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재단 이사회 구성과 이사장 선출을 위한 세 번째 발기인 총회가 오늘(6일) 오후3시 열린다. 한번으로 끝날 발기인 총회가 세 차례나 열리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이게 제주4.3이 처한 ‘현실’이다.

지난 두 차례 총회 때에는 고성과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재단 이사장을 누구로 모실 것인지를 놓고 발기인들 사이에서 의견차가 논쟁과 말싸움으로 번졌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 사람들이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할 정도로 어이없고 속 보이는 이야기가 나왔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보였다.

소설 <순이삼촌>의 저자이자 문화예술진흥원장을 맡았던 현기영 선생과 4.3유족회 고문인 고태호 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추천되면서 발기인들 사이에서 갑론을박하고 있다.

#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정권이 바뀌었다고 4.3역사도 바뀌나?

세 번째 열리는 발기인 총회를 앞둬 누가 돼야하고, 누가 돼서는 안된다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발기인 총회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들이 지나온 4.3 역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했던 60년의 역사를 과연 기억하고 있는지,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지난 역사를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를 묻고 싶을 따름이다.

지난 두 차례 발기인 총회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가장 놀랍고 위험스런 발언은 “이젠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였다.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라는 4.3 정신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만들어내고, 제주4.3을 국내외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평화재단 이사장을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갖고 여기에 합당한 인물을 추대할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아니라, 이른바 ‘바뀐 정권론’이 알게 모르게 회의장 분위기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것도 ‘레드 컴플렉스’의 피해를 가장 많이 겪었던 분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에다 “새 정부가 기피하지 않을 인물이어야 재단 예산 확보가 쉽다”는 ‘이명박 코드론’까지 나오는 지경에 가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에 맞는 사람 앉힌다?...4.3이 정권의 핫바지냐?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뼈아픈 역사가 4.3이라는 것을 여기서 말한다면 오히려 진부하다. 정치가 소용돌이 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리치이고 저리치여온 한(恨)의 역사도 몸서리치게 겪어왔다. 4.3유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인척 중에 4.3에 연루됐다는 이유만으로 공무원이나 교사 시험은 아예 볼 엄두도 못 냈고, 좋은 직장에 합격하고도 이른바 ‘신원조회’ 에 걸려 눈물을 삼켜야 했던 것도 되돌아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의 우리 형제들 이야기다.

4.3을 직접 겪든 겪지 않았든 이 아픈 역사를 너무나 잘 아는 발기인들의 입에서 “이젠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바뀐 정권 코드에 맞을 사람을 이사장에 앉히자는 이야기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안 좋게 볼 수 있는 ‘전(前) 정권’사람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인간보고 ‘망각(忘却)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잊어버려야 할 일이 있고, 결코 잊어버리지 말아야 일이 있다. 역사는 ‘기억(記憶)’이다.

4.19혁명이 터지고 난 직후 4.3은 잠깐 빛을 봤다. 제주대학생을 중심으로 ‘4.3진상규명’ 운동이 일어났고, 국회에서도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5.16군사쿠데타로 진상규명 운동에 앞장선 대학생들은 오히려 탄압대상이 됐다. 이후 4.3은 긴 동면에 들어갔다.

대정읍 섯알오름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6.25 직후 이른바 예비검속에 걸려 죽음을 당한 이들의 ‘백조일손지묘’의 묘비가 무참히 깨지고 이를 다시 세우는데만 또 다시 3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야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면전환용으로 악용됐던 4.3의 전사를 뻔히 아는 이들의 입에서 ‘바뀐 정권론’이 나온다는 것은, 과거의 아픔이 너무 무서워 스스로 ‘굴종’해 버리자는 건지, 아니면 ‘협상’하자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느 정권(정당)이 집권했을 때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졌고, 탄압을 받았는지를 안다면 ‘바뀐 정권론’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4.3역사에 대한 ‘배신’이자, 권력에 대한 ‘백기투항’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권에 따라 재단 이사장이 바뀌어야 한다면, 앞으로 5년에 한 번씩 연례행사처럼 이사장을 바꿔야 한단 말인가. 재단 이사장이 어느새 정권과 ‘협상 자리’가 됐단 말인가. 설령 어느 정권이 요구하더라도 4.3관련단체들만은, 특히 지금 발기인들만은 역사에 이름을 걸고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 ‘바뀐 정권론'은 의도하든 안하든 ‘4.3 색깔론’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제주4.3에서 ‘바뀐 정권론’은 그 배경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자칫 잘못하면 4.3의 역사를 십 수년 후퇴시키는 커다란 ‘역사적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되돌려 놓아야 할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 정권과 전 정권의 정치적 논쟁은 논외로 치더라도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진 것은 지난 10년의 역사였다. 화해와 상생의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인정하듯 과거사정리의 ‘전범(典範)’이 됐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옹호하거나, 이명박 정부를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4.3은, 역사는, 어느 정권이 했기 때문에 존중돼야 하고, 어느 정권 하에서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부정당해야 하는 그런 ‘정치적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옳게 쓰여져야 하고, 바르게 기록돼야 하는 게 역사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4.3의 ‘진실찾기-명예회복’ 역사가 계속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4.3중앙위를 폐지하려 하고 있고, 현 정부의 정치적 동맹군이라 할 수 있는 보수-우파세력들은 4.3을 또 다시 ‘좌파들의 반란-폭동’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들은 4.3평화공원을 ‘폭도공원’이라고 공공연히 부른다. 그들의 시각이라면 4.3평화재단은 4.3폭도재단인 셈이다. 이쯤 되면 무엇이 나올까. 색깔론이다. 그들은 4.3에 빨간 색깔을 씌우려 하고 있다.

재단 발기인 일부에서 공공연히 ‘좌파’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누구보다도 색깔론에 피해를 입었던 4.3관련자들 입에서 색깔론이 거론된다는 것은 4.3역사에 대한 ‘도전’이자, 보수-우익세력에 이용만 당하는 꼴이 된다.

“그것 봐라! 4.3단체들 입에서도 4.3진상규명에 앞장 섰던 누구누구는 좌파라고 하지 않느냐!”란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하다. 그리곤 4.3은 좌파들이 되살려 놓은 ‘좌파의 역사’로 매도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광주 5.18기념재단에서, 부산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이사장을 바꾸자는 이야기나 나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제주에서만 이 난리가 벌어지나. 딴 꿍꿍이속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 현기영 선생에 대한 흠집내기는 결국 4.3 흠집으로 이어진다

현기영 선생은 4.3의 ‘상징’이다. 4.3평화재단 이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현기영 선생을 거론한다는 자체가 충분히 ‘꼼수’로 읽힐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회피해선 안될 인물이 현기영 선생이다.

어떤 시대나, 역사에서 ‘양심’이 있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일깨워 주는, 우리가 나가야 할 좌표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그 나침반은 결코 흔들려선 안되고, 또 흔들어서도 안된다. 설령 일부에서 흔든다고 흔들리지 않는 게 ‘상징’이자 ‘양심’이다. 양심과 정의, 상징은 좌와 우를 초월한다.

우리사회에 장준하 선생이 그렇고, 함석헌 선생이 ‘양심’이었다. 제주4.3에서 양심이자 상징은 ‘현기영’이다.

4.3의 ‘4’자로 꺼내지 못하던 1978년 군사정권 치하에서 소설 <순이(順伊)삼촌>으로 금단의 벽을 무너뜨린 이가 현기영이다. 누구 말 맞다나 ‘난다 긴다’하는 사람들조차 아무 소리 못할 때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결코 4.3 진실찾기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였다. 쓸 소재를 못찾아 땅 속 깊이 숨어든 4.3을 꺼낸 것도, 또 무슨 영광을 누리려고 쓴 것도 아니었다. 그의 욕심이 있었다면 4.3유족들의 ‘말 못할 한(恨)’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서울에 있으면서도 제주4.3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소장에 이은 이사장으로 제주4.3특별법 제정의 결정적 공헌을 한 양심세력이다.

그의 영향력이라면, 흔히 제주에서 벌어지는 각종 선거에 이런저런 연고로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할 볼 법도 하지만 그는 정치와는 초연했다. 아니 아예 거리를 뒀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의 배경을 얻고자 했으나 소설가이자, 4.3운동의 선각자인 그는 4.3이 정치에 관여-개입하는 그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했다.

4.3에 대한 40년 끈을 이어오면서 그의 고민은 이른바 4.3의 '물량화'였다. 4.3이라고만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설령 잘못을 하더라도 아무런 말도 못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커 버린 4.3을 부담스러워 했던 그였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된다면 그 것으로 충분하다" 는 게 그의 뜻이었다. 돈(예산)을 놓고 간혹 싸움이 벌어지는 광주를 보면서 4.3의 '물욕화'와 '권력화'를 가장 경계했던 인사가 바로 그였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고 했던가? 그래서 지금 4.3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비토'당하는 것인가.

제주에는 어른 또는 원로가 없다고 한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행정가이자 정치인은 제주의 이런 모습을 보고 '좁쌀근성'이라고 꼬집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본다고 했다. 현기영 그는 '제주의 대표 브랜드'다. 몇 안되는 국회의원, 도지사 보다 국내외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제주의 상징적 인물이 바로 '현기영'이다.

상징은 흔드는게 아니다. 흠집을 내서도 안된다. 현기영의 흠집은 곧 4.3의 흠집이다. 4.3 흔들기를 원하는 그들이 최근 벌이는 모습을 보라. 추천도서로 선정된 그의 역작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불온서적이란 딱지를 붙였다. 그들의 원하는 것은 제주의 정신, 4.3의 상징인 현기영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밀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은 뭘까? 현기영 선생이 밀린 다음 벌어질 일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재단이사장을 누가 맡느냐, 특정인을 밀겠다, 내가 맡겠다는 '사욕' 때문에 제주4.3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거목 옆에 수령 몇 년 되지도 않은 나무를 심어 놓고, 빛이 들게 하겠다고 되레 거목을 자르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결코 자초하지 말았으면 한다.

잠시 후 세번째 발기인 총회가 열린다. 13명의 발기인들에게 진중한 결정을 내리기를 부탁드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혹 이글이 '그렇다면 현기영 선생을 이사장으로 추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기영이 중심이 아니라, 누가 지금 시기의 4.3평화재단을 이끌어 가야 하느냐는 문제가 논의의 핵심이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또 다시 싸움하지 말라는 고언이다. 회의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모를줄 알지만 온 도민이 보고, 나중에는 온 국민이 알게 된다. 결코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내려주기를 거듭 당부드린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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