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기행 ②] 비양봉을 둘러싼 독특한 자연 환경

비양봉은 한림항 서쪽 4.5km 지점에서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오름인데, 그 오름이 인근 육지와 떨어져 바다 위에 있으니 사람들은 비양도라 부른다. 그리고 그 비양봉에 의지해서 오름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 비양리다.

▲ 비양포구에서 바라본 비양봉 비양도는 바다 가운데 솟은 오름이다. 포구는 바람을 피해 섬의 남쪽에 자리 잡았다. ⓒ 장태욱
비양도에 들어갈 때는 이 섬의 정 남쪽에 자리잡은 포구를 거쳐야 한다. 주민들이 섬 남쪽에 포구를 만든 것은 비양봉에 의지해 겨울철 북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포구 왼쪽의 서남쪽에는 곶이 길게 펼쳐지는데, 주민들은 이 곶을 '오저부리'라 부른다. 바닷물 위로 길게 뻗은 '오저부리'가 포구에 정박한 배들을 파도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준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중국 송나라 호종단이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비양도 인근에서 배가 침몰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이다.

"민간에 전하기를, '한라산신의 아우가 태어나면서부터 성덕이 있었고, 죽어서는 신이 되었다. 고려 때에 송나라 호종단이 와서 이 땅(제주 섬)을 제어하고 바다에 떠서 돌아가는 데, 신(神)이 송골매로 변하여 돛대 머리에 날아올랐다. 조금 있다가 북풍이 크게 불어서 호종단의 배를 쳐부수니 서쪽 지경 비양도 바위 사이에 침몰되었다. 조정에서 그 영험함을 포상하여 식읍을 내리고 광양왕으로 봉하여 해마다 향과 폐백을 내려 제사하도록 했다. 조선시대에는 본 읍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 오저부리 섬의 남서쪽으로 뻗어있는 오저부리 코지가 포구 안에 정박한 배들을 파도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준다. ⓒ 장태욱
호종단은 중국 황제의 명을 받아 제주의 지맥을 끊기 위해 제주에 들어왔다고 전해지는 지관이다. 그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다 북풍을 맞고 이 섬의 서쪽 바위에 부딪쳐 배가 침몰했다는 민담에는 북풍에 대해 품고있던 주민들의 두려움과 이 일대 자연환경을 지배하는 토착신이 외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뒤섞여 있다.

비양도에는 해안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게 콘크리트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그 둘레가 약 3.5km에 달한다. 섬에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이 해안도로를 돌기 위해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둘러볼 경우 성인의 걸음으로 1시간이면 족하다.

▲ 산책로 섬 주변에 3.5km 둘레의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다. ⓒ 장태욱
포구에서 오른쪽으로 해안 길을 따라가면 초등학교가 나온다. 정식 교명은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다. 그 학교를 지나면 1만 7500㎡ 넓이의 염습지인 '펄랑못'이 펼쳐진다. 이 연못은 섬의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 연못 안에는 황근, 갯잔디, 갯질경이, 해녀콩 등의 식물과 갯고동, 기수갈고동, 댕가리, 소금쟁이, 방개 등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연못의 주변 오름 능선에는 해송, 대나무, 억새, 띠, 돌가시나무, 구기자나무, 순비기나무, 갯하늘지기 등이 왕성하게 자생하고 있다.

▲ 펄랑못 산책로 펄랑못은 섬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염습지다. 이 연못 인근에 다양한 생물이 자생하있다. ⓒ 장태욱
게다가 이 일대에 인적이 드물고 주변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식하며 연못 내에 새들의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에 백로와 왜가리 등 수많은 종의 철새들이 보금자리 삼아 찾아온다.

펄랑못은 갯뻘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이 마을 주민들은 이 연못의 뻘을 퍼다가 마당을 다지거나 벽을 쌓을 때 시멘트 대신에 사용했다고 한다.

이 연못과 바닷물이 직접 소통할 때는 이곳에 장어, 새우, 망둥이 등 물고기들도 많이 서식했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은 어릴 때 이 연못에서 수영을 배우고 나서야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 벌랑못 주변의 백로 철랑못에 철새들의 먹잇감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주변이 수풀을 이루고 있게 때문에 철새들이 보금자리를 찾아 이곳에 날아온다. ⓒ 장태욱
그런데 1959년 태풍 사라호가 섬을 강타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자 주민들은 펄랑못이 바다와 만나는 동쪽 경계에 재방을 쌓았다. 그로 인해 펄랑못은 바닷물과 직접 교차하지는 못한다. 대신 지하를 통해 해수가 연못과 바다사이를 교류하면서 연못의 수위가 해수면과 연동하며 조절된다.

펄랑못 주변으로는 갈색 나무를 재료로 한 산책로 964m가 정비되어 있다. 휴식을 취하면서 연못 주변의 식생을 관찰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설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섬은 목종 10년(1007년)에 '산이 바다에서 솟아나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화산활동은 1914년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이 섬에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은 특이한 화산분출물들이 발견된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섬의 북쪽 해변에 이르면 현무암 대지 위에 형성된 독특한 화산암괴들을 볼 수 있다. 주민들은 이곳을 돌공원이라 한다.

▲ 애기업은돌 지표의 좁은 틈을 뜷고 분출한 용암이 냉각되어 형성된 바위다. 바위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점성이 높은 용암이 오랜 시간을 두고 분출과 냉각을 반복하면서 바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 장태욱
돌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애기업은돌'이다. 현무암 자갈밭 위에 검붉은 색을 띠는 높이 4m 정도의 길쭉한 바위가 서 있는데 그 외형이 마치 양초를 오래 사용해서 양초의 겉면이 촛농으로 범벅을 이룬 것처럼 울퉁불퉁하다.

이 주변에는 '애기업은돌' 외에도 이와 외형이 이렇게 단조롭지 못한 돌들이 많은데, 이는 이 바위가 생성될 당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점성이 높은 용암이 분출되는 과정에서 겉면에서는 용암이 계속 흘러내리며 냉각되고, 가운데서는 내부압력에 의해 계속 위로 분출되면서 길쭉하고 표면 구조가 독특한 바위가 형성된 것이다.

좁은 틈으로 용암을 분출시키는 것은 마치 산모가 난산의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 출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의 과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돌공원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작은 섬이 보인다. 그 모양이 마치 코끼리와 비슷해서 사람들은 '코끼리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는 조간대 하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만조 시에는 작은 섬이지만 간조가 되면 걸어서 닿을 수 있게 된다.

▲ 코끼리바위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다. 만조에는 섬으로 보이는데, 간조가 되면 육지와 연결된다. ⓒ 장태욱
'코끼리바위'를 지나다 보면 현무암이 넓게 펴진 용암대지 위에 낚시꾼들이 많이 몰려있다. 이 용암대지에는 톳, 청각, 미역 등의 해조류와 팽이고동, 각시고동, 소라, 전복 등이 바위틈에 자리를 잡고 서식하고 있다. 이 일대 바다가 아직까지는 맑고 깨끗하며, 바다생물에 대한 무분별한 남획이 자제되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양도 해안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을회관 앞에 이른다. 마을회관 뒤로 좁은 돌담길이 있는데, 비양봉에 오르는 산책로가 시작되는 길이다. 해안 산책로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서 운치가 반감되는 반면, 비양봉 산책로는 흙을 드러내고 주변 띠풀이 그대로 자라고 있어서 자연의 멋이 한결 더 피부에 와 닿는다.

▲ 비양봉 등반로 비양봉 높이가 114m에 불과하므로 등반로의 길이는 매우 짧다. 하지만 길이 가파르고 주변에 대나무와 띠풀이 무성하게 자라므로 오르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 장태욱
비양봉은 높이가 114m에 불과해 빠른 걸음으로 30분이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상에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책로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산책로 양쪽에 띠와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이 토종 식물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비양봉 중턱에 오를 무렵 바다 건너 협재해수욕장과 금릉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조금 더 오르면 비양봉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 분화구 비양도 분화구 내에는 해송, 대나무 등의 식물들과 소살모사, 누룩뱀 등 동물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 장태욱
비양봉 분화구에는 해송, 대나무, 비양나무 등의 식물들과 줄장지뱀, 쇠살모사, 누룩뱀 등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여름이라, 이곳에 자생하는 식물들이 전하는 녹음에 잠시 취해보았다.

비양봉 정상에는 오래된 등대가 있어서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오래 전 제주 사람들을 수탈했던 외세가 끊임없이 이곳을 들락거렸지만 그래도 등대는 말없이 지나는 배를 향해 비양도의 존재를 드러낸다.

한편 비양도에는 2차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파놓은 수많은 진지동굴이 있었다. 하지만 비양봉의 지층이 형성된 지 오래되지 않아 계속해서 압축과 고결 등의 안정화과정을 진행하면서 대부분 진지동굴이 저절로 메워져 그 자취가 없어졌다.

▲ 석양 비양도 정상에서 석양을 기다렸는데, 날씨가 흐려서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 장태욱
비양도 주민들은 이 오름에 기대어 바람을 피하고 이 오름 사면을 터전으로 조그맣게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는다. 이 섬 주민들에게 오름이란 비록 풍족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다.

덧붙이는 글 | 다음 편에는 비양도 주민들의 생활을 소개하겠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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