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여전히 지식인의 책무다

갑신년, 새해 덕담?

왜일까, 새해 시작부터 덕담의 넉넉함이 아니라 신경 곤두선 팽팽함을 느껴야 하는 건.
왜일까, 희망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애써 다독거리던 손길이 맥없이 늘어지는 건.
다름 아니다. 전쟁다운 전쟁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넙죽 엎드려 나라 전체를 일본에 상납했던 한말의 수구 기득권 층의 모습을 오늘 다시 보기 때문이다. 주변 외세가 승냥이처럼 달려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그들만의 이권 챙기기에 급급하던 모습, 이건 분명 100여 년 전의 상황만은 아니다.

새해 벽두부터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갔다. 일본의 우경화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새해 첫날부터 법석을 떠는 건 뭔가 심상치 않다.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 안으로 편입시키는 중국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오만 방자한 횡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제네바 합의는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한반도를 핵전쟁의 위기로 몰아가는 오늘날 미국의 작태가 일제 강점기를 코앞에 둔 시점보다 오히려 더 우리를 불안케 한다.

그런데 우린 뭐 하는 건가. '차떼기'라는 엽기적 상황이 벌어져도 응징은커녕 다음은 '배떼기', '비행기 떼기'인가 하며 자조할 뿐이다. 제주지역이라고 다른가? 각종 추한 혐의를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제주행정의 최고 책임자, 부하 직원의 자살 상황까지 이르러도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부패 교육계의 수장......, 그래봐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이걸 뼈아프게 지적하는 지식인도 드물다. 그저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할 뿐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

그 때도 그랬다. 그러다가 망했다. 기득권 관료들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고, 이를 지적해야할 지식인은 방관하고 아니 같이 해쳐먹고, 민중들은 황소 눈만 꿈벅거리다가 그렇게, 그렇게들 하다가 전쟁 한 번 없이 송두리째 넘겨줬다.

그런데도 덕담으로 시작해야 하나? 상황이 이런데도? 뭐 하나 말끔하게 정리해내지도 못하고 누덕누덕 맞은 새해일지라도 예의 그 덕담이 필요한 건가?


1884년 갑신년

그래, 해 보자. 이왕 할라치면 통절하게 해 보자. 형식적 덕담이 아니라면 치열하게 해 보자. 멀리 이야기를 번질 것도 없다. 올해는 갑신년. 역사 교사인 내가 갑신정변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단지 육십갑자의 '갑신'이 같아서 만은 아니다. 국내외 상황이 너무도 유사해서 그렇다. 불과 120년 전의 일이다.

물론 여기서 갑신정변에 대한 교과서적 지식이나 교훈을 늘어놓자는 건 아니다. 지식인의 책무를 말하고자 함이다. 잘 알다시피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은 당대의 개화 지식인이다. 그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몫을 다했다. 그랬음에도 결국 나라는 망했다. 자기 한 몸 던지며 몸부림쳤는데도 말이다.

헌데, 우리시대 지식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망조가 든 나라에 살면서도 그저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어디 가서 이름이나 돈만 얻으면 그만이다. 제주지역의 경우는 더욱 한심하다. 아예 시대적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있다 해도 그저 학맥, 인맥 속에 '인화단결'만을 실천한다. 이미 기득권 층이기에 아쉬운 게 없어서 그런가?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돋보이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들은 당대의 개화한 지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기득권 층이기도 했다. 동학혁명의 주역처럼 몰락 양반이나 민중들이 아니었다. 권력 밖 지식인이던 실학자들과도 달랐다. 그런데도 몸을 살랐다.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는데도 말이다.

김옥균은 당시 승정원우부승지, 이조참의, 호조참판 등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최상류 기득권 층에 속하는 자였다. 박영효는 또 어떤가? 그는 철종의 사위였다. 정1품 상보국숭록대부에 봉해졌던 건 그 때문이다.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의 직을 거친 경력도 그의 상당한 위치를 말해준다. 홍영식은? 그는 갑신정변 당시 병조참판과 우정국총판을 겸임하고 있었다. 영의정 홍순목이 홍영식의 아버지였던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악기 팔아먹고 교육 기자재 팔아먹고 나중엔 석유까지 팔아먹는 우리시대의 용감한 부자(父子)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래서 묻는다. 오늘 우리 주변에 이런 지성이 있는가? 핵심 기득권 층이면서도 자신의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제 할 일을 다하는 자, 과연 있는가? 지식인의 책무는 참으로 크다.


1944년 갑신년

갑신정변이 있었던 1884년 갑신년 뒤에 그리고 오늘 2004년 갑신년 앞에 놓인 또 다른 갑신년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4년 갑신년이다. 태평양전쟁이 그 종착점을 향해 가던 시점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발악은 심해져만 갔다. 이건 거꾸로 그들의 패망이 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당시 조금이라도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건 쉬 짐작할 수 있는 정세였다.

1944년 갑신년, 일제는 지난해(1943년) 실시했던 학도지원병제에 만족하지 않고, 이 때부턴 본격적으로 징병제를 시행했다. '지원병'이라는 미명을 거두고 아예 노골적인 강제 징집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의료.건설부대의 껍데기 벗고 본격적으로 전투부대를 보내겠다는 참여정부의 그 결단을 보면서 60년 전의 상황을 떠올리는 건 역사교사의 직업병 때문인가? 어찌 이리도 닮았는가? 일본이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우리의 젊은이들을 외세의 총알받이로, 개죽음으로 내모는 건 꼭 같지 않은가? 심심풀이로 육십갑자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어떤 비슷한 운명을 예감하며 반복되는 건 아닐까? 신년 덕담이 거칠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어쨌거나 여기서도 내가 문제삼는 건 지식인의 태도다. "광명 있는 국민의 의무를 다할 때가 왔다. 제군의 주저하는 마음은 잘 알고 있지만 주저할 필요는 없다. 제군들의 부형은 제군의 지원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당대 최고 지성 춘원 이광수가 지원병 출정을 선동하던 내용이다. 어디 이광수뿐이었겠는가. 한 때 국어 교과서를 장식했던 다수의 문인들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게 그 시절에만 국한된 이야기이겠는가? 이라크 파병이 국익에 도움된다며 헛소리를 해대는 우리시대의 지성(?) 또한 오죽이나 많은가.

영미구축(英美驅逐) 즉 영국과 미국을 쫓아내자고 외치던 일제 강점기 친일지식인들이 해방 후 가장 먼저 친미파로 변신하던 그 뻔뻔스러움이 오늘이라고 해서 사라졌겠는가? 아니다. 제주도의 최근 상황도 유사하다. 가장 극성스럽게 반공반북을 외치던 자들이 가장 먼저 평양 땅에 가서 증명사진(?)들을 찍느라고 난리다. 감귤지원? 물론 좋다. 아니 아주 아주 훌륭한 일이다. 허나 최소한 자신의 과거 발언과 정치적 태도에 대한 변화된 입장 표명은 있었어야 할 게 아닌가?

안기부 장학생 역할이나 하던 대학 교수가 가장 먼저 민족 평화를 떠들어대는 코미디를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 그 어렵던 시절, 4.3문제는 잘도 피해서만 다니더니 세월 좋아진 오늘에 와서야 평화니 인권이니 주접거리는 교수들의 몰골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 하나 없는 제주도

하긴 교수들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교수 못지 않게 법조계 인사들도 최고의 엘리트임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다른가? 아니다. 제주지역의 교수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책무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그저 일신의 영달과 안일이 충족되면 그만이다.

갑신년 새해가 막 시작하기 조금 전, 제주지역 2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교육비리척결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주지방검찰청을 방문했다. 제주교육 역사에서 최대의 수치인 도교육청 비리 수사와 관련된 방문이었다. 방문은 검찰이 발표한 중산수사결과가 교육계와 도민들의 의문을 제대로 해소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하지만 웬걸, 한마디로 문전박대였다. 담당 검사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내몰린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으며 참담했다. 도지사에 대한 재판에서도 솜방망이만을 휘두르더니 이번엔 또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을 수사하는 게 제주의 법조 엘리트인가 하는 비난에 쉬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제주지역엔 송광수나 안대희 같은 사람이 없을까.

참담했던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20개 시민단체의 결집된 힘마저도 그리도 만만했구나 하는 자괴감이 사실은 더 컸다. 그들이 시민단체를 그리도 얕잡아 보게 된 건 왜일까? 도민의 지지가 없어서? 천만에. 그들의 그 잘난 특권 엘리트 의식 때문일 것이다.

좋다. 판사나 검사는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제주지역의 변호사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중앙의 시민단체에선 대부분 변호사나 교수들이 맹활약을 한다. 그런데 이게 왜 제주에선 안 되는가. 왜 제주에는 박원순 변호사 같은 사람이 존재하면 안 되는가. 도대체 제주도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정말 이래도 되는가? 이래 놓고도 지역사회의 최고 엘리트를 자부해도 되는가?

물론 민변은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보다 정의감에 투철한 변호사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정의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론 사회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시민운동으로 모아져야 힘을 낸다. 기회에 제주지역의 여러 변호사님들께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제발 사회정의의 외연들 넓혀 주시길, 그리하여 타지역 못지 않게 시민운동 활성화에 조금이라고 기여해 주시길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부탁을 드린다.


지식인이 참된 지성일 수 있는 건

지식인이 참된 지성일 수 있는 건, 자신의 그 전문지식을 개인의 출세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의 정의를 위해 활용하기 때문이다. 진보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힘과 용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아픔을 자기 문제인 양 떠 안아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오늘 갑신년을 맞으며 120년 전 갑신년의 김옥균과 박영효와 홍영식을 떠올린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지식인으로서의 시대적 고뇌를 실천으로 연결 지었던 사람들....... 그리고 또 60년 전 갑신년의 징병제와 친일 지식인들을 떠올린다. 반미친일에서 친미사대주의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던 사람들....... 그리고 오늘 다시 제주지역의 교수들과 변호사들을 떠올린다. 이들은 과연 어떤 유형의 지식인들인가?

하여 다시 묻는다. 제주사회의 지성은 도대체 무엇들하고 있단 말인가?

<이영권의 직설화법 designtimesp=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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