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의 슬픈 이야기 전하는 수월봉

▲ 수월봉 제주섬 가장 서쪽에 해당한다

수월봉은 바다에서 높이가 77m밖에 되지 않은 낮은 오름이다. 그 정상에 고산기상대가 있어서, 꼭대기까지 찻길이 포장되어 있다. 그런데  길이 시멘트로 포장된 이 낮은 오름을 사람들은 영산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찾아 온다. 수월봉에는 다른 오름에서 볼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수월봉 정상에서 본 황홀경

수월봉은 제주도 그 어디에서보다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른 새벽 일출봉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 해는 저녁에 섬의 서쪽 바다에서 노을을 동반한 채 황홀한 낙조를 보여주고 사라진다. 이때, 제주섬의 서쪽 끝단에 있는 수월봉은 이 황홀한 낙조를 감상할 최적의 장소가 된다. 
  

▲ 수월봉 정상 수월봉 정상에 서면 '수월정'이라는 정자와 고산기상대 건물이 보인다.

새벽에 수월봉 정상에 섰다. 사방이 온통 조용한데, 파도소리는 끝없이 들려왔다. 차귀도를 비롯하여, 당산봉과 그 너머 용당마을 해안의 풍력발전기가 한 폭의 풍경화로 다가왔다. 또, 수확을 앞둔 고산의 푸른 들판과 인근 대정읍의 신도리 마을의 집들이 정감 있게 느껴졌다.
  

▲ 영산비 수월봉 정상에 마을 주민들이 세운 영산비가 있다.
 
이곳에는 마을 주민들이 세운 영산비와 함께 무덤 십여 기가 자리를 지키고 이었다. 걸어서 오름 아래로 내려가 보니 중간 지점에서 절이 한 채 보였는데, 사찰 이름이 '천안사'라고 적혀 있었다. 이곳에 영산비를 세우고 묘터로 쓰며, 절을 지은 것을 보면, 주민들은 이 작은 봉우리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서려 있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  마을들 수월봉 서쪽에 있는 마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니다.
 
수월봉에서 동쪽 바닷가를 바라보면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가 보인다. 이를 '엉알산책로'라고 한다. '엉'이란 제주말로 '바위'를, '알'이란 '아래'를 의미한다. 즉, '엉알'이란 바위 아래라는 의미다.

# 폭발적 수성 분화가 만든 해안절경

엉알 산책로를 향해 내려가는 길목에 서면, 해안에서 수월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듯 가파른 낭떠러지를 관찰할 수 있다. 그 낭떠러지는 군데군데 화산력이 섞여있는 응회암 퇴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높이가 수십 미터에 이른다. 수월봉이 탄생했던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 차귀도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차귀도의 모습니다. 큰 새가 날개를 편 형상이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폭발은 차귀도와 수월봉의 중간 지점인 바다 가운데서 일어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바다 아래 매우 뜨거운 지점(열점)에서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마그마가 서서히 분출했다. 그런데 그 마그마가 지하에서 해수를 기화시키자, 물의 부피에 갑자기 팽창했고, 그 폭발의 규모도 훨씬 커졌다. 이를 수성 분화 활동이라 한다.

수월봉뿐만 아니라 당산봉과 차귀도에도 응회암 퇴적층이 두껍게 남아 있어서, 당시 폭발의 규모가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성 분화 후 생성된 두꺼운 응회암 퇴적층이 바다의 침식작용을 겪었고, 그 일부가 봉우리로 남은 것이 수월봉이다. 
  

▲ 해안 퇴적층 응회암 퇴적층에 군데군데 화산력이 섞여있다.
 
깎아 지르는 듯 아찔한 바위 아래에서 동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엉알산책로를 따라가면, 바위틈에서 지하수가 샘솟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이 일대 응회암층이 두껍고 치밀해서 지하수를 그 아래로 침투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물이 바위틈을 뚫고 옆으로 새어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물을 '녹고물'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에는 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전설이 내려온다.

# 수월이와 녹고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옛날 이 마을에 '수월'이라는 딸과 '녹고'라는 아들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의좋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물질을 나갔다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효심이 지극한 남매는 어머니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 엉알산책로 수월봉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수월이가 어머니에게 드리게 위해 바다에 들어가 문어와 전복을 잡아왔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가 아파서 문어와 전복을 씹을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며, 아버지 제삿날도 가까우니 시장에 가서 쌀과 바꿔 오라고 했다. 하지만 수월이는 자신의 이로 전복과 문어를 씹어서 어머니 숟가락에 올려놓았다. 수월이는 어머니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지극 정성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시주승이 소문을 듣고 수월이네 집으로 찾아왔다.

"스님, 보시다시피 저희 집엔 먹을 것도 부족한 형편이라 시주할 게 없습니다."
"옛말에 없는 사람 통알 반쪽은 부자의 재물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스님, 부처님 전에 빌면 소원은 이루어지기라도 한답니까?"
"그 소원이 무엇입니까?"
"우리 어머니 병환을 고치는 일입니다."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목숨을 내놓아야할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병만 낫는다면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겁니다."

"효성이 지극하네요. 이 땅 서쪽 끝 바닷가에 '도숙은엉'이라는 절벽이 있습니다. 그 절벽 중턱에 가면 오갈피라는 하얀 꽃이 핀 약초가 있습니다. 그걸 캐다가 달여서 어머니께 드리세요."

▲ 천안사 수월봉 중턱에 '천안사'라는 절이 있다.
 
수월이는 스님이 전한 말을 녹고에게 설명했고, 둘은 절벽으로 약초를 찾아 나섰다. 절벽 꼭대기에 선 그들은 그 아래 오갈피 꽃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힘이 센 녹고가 위에서 밧줄을 잡고, 수월이가 밧줄을 타고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조심조심 줄을 타고 내려간 수월이가 드디어 약초를 손에 넣었다.

"녹고야, 약초를 캤다. 이제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누나, 정말? 어디 좀 볼 수 있을까?"

녹고가 절벽 아래로 몸을 숙인 순간, 그가 붙들고 있던 밧줄이 손에서 빠져나가고 말았다. 수월이는 비명과 함께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자신이 밧줄을 놓치는 바람에 누나가 죽게 되었다는 자책감에 빠진 녹고는 그 절벽 아래를 바라보며 며칠 동안을 울며 보냈다. 그리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도 역시 목숨을 놓고 말았다.

▲ 녹고물 수월봉 인근에 일년 내내 바위틈으로 샘물이 솟아난다. 사람들은 이 물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흘리는 녹고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녹고의 눈물이라 생각하여, '녹고물'이라 부른다. 그리고 고산 앞바다의 낙조가 아름다운 것은 수월이와 녹고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에 하늘이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당시 녹고가 품었던 서러움의 깊이를 실감나게 하려는 듯, 샘물은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 샘물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새벽 공기를 깨웠다. 근처 천안사에서 스님 한 분이 걸어나와서 죽은 수월이와 녹고를 위해 염불이라도 외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엉알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그물로 재방을 쌓듯 절벽을 둘러친 것을 볼 수 있다. 높은 절벽에서 바위나 돌이 떨어지는 일이 잦기에 방문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이다.

어느새 해가 높이 떠올라 바다를 훤히 비췄다. 고산평야의 들녘이 햇빛을 반사하여 온통 황금빛이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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