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GO! GO!] (1)제주 런너스 클럽

스포츠 중에서도 극한의 운동으로 알려진 마라톤이 전문 운동선수들만의 영역이라는 편견을 깬지도 10여년이 지나고 있다. 지금은 명실공히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전문 선수만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마라톤 풀코스에서 일반인들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도내에서도 마라톤 클럽들이 5년여전 부터 활발히 생겨났다. 제주도내 마라톤 대회도 15여개나 된다. 서울을 제외한 타지역에 비해 마라톤 개최 밀도가 매우 높다. 해안도로 및 천혜의 자연경관을 적극 이용한 결과다. <제주의소리>는 '아름다운 제주'에서 역동적인 인생 역주를 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연재를 시작한다. 이를 위해 도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마추어 마라톤 클럽을 찾았다. 그 첫 스타트는 '런너스 클럽'이다.

42.195km. 그리스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쉼없이 달려와 기쁜 소식을 전한 후 끝내 숨진 병사를 기리기 위해 생겼다는 마라톤. 때문에 마라톤은 죽을 것 같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실제, 무리한 참가로 인한 사망 사고가 종종 있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창설자 쿠베르탱 역시 올림픽종목으로 마라톤을 선정하는 데 주저했다는 일화도 있다. 기원전 490년 9월의 승전보를 알린 병사처럼 또 어느 누가 죽어나갈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라톤의 이런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마라톤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창단 5년차의 제주 런너스 클럽이 그들이다. 과연 그들은 즐거운 42.195km를 뛰고 있을까? 지난 16일 종합경기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 정해진 모임시간 보다 일찍 도착한 회원들이 가볍게 트랙을 뛰고 있다. 뛰면서도 담소를 나누고 웃는 모습이 힘든 운동을 하는 사람들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리 인턴기자

#1. 400m, 15바퀴를 달려 만나다

제주시 오라동 소재 종합경기장은 제주도내 마라톤 클럽들이 주로 애용하는 훈련장이다. 바깥 트랙이 46m, 맨안쪽 트랙이 400m로 정해진 구간을 몇 분만에 도착하는 지 체크 가능하기 때문에 야외 연습장과 병행한 훈련 장소로 쓰이고 있었다. 저녁 7시경,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선선해진 날씨 때문인지 마라톤 클럽 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상당수 보였다.

본격적인 인터뷰 이전에 훈련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스트레칭으로 시작된 훈련은 전국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마라톤클럽 답게 체계적이었다. 경기장은 15바퀴를 뛴다. 다섯 바퀴까지는 다같이 뛰다가 이후로는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뛴다.

   
▲ 달리기 전 스트레칭을 충분하게 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이미리 인턴기자

#2. "마라톤으로 금연과 멋진 몸매를 동시에 얻었죠"

다이어트를 한다며 동네 학교 운동장을 무작정 뛰었다가 근육통으로 고생했던 생각이 났다. 당시에는 트랙이 어서 끝나기를 기원하며 달렸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뛰고 있을까. 컨디션이 안좋아 일찍 들어온 권혁만씨(43)에게 물었다.

"별 생각 없이 뛰는데요. 누구는 뛰는 동안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어 마라톤이 좋다고 하지만, 전혀요. 뇌운동이 느려지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죠."

   
▲ 5바퀴까지는 2열로 보조를 맞춰 달리다 이후에는 각자의 페이스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미리 인턴기자

권혁만씨는 4년째 마라톤을 해오고 있다. 1999년 12월 31일 자정 즈음에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하고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담배가 마라톤의 목적이었던 것.

"실제로 담배 끊기에 성공했습니다. 마라톤 시작 이전에도 금연 시도는 여러번 있었지만 성공은 마라톤 때문이었죠. 저 말고도 마라톤으로 담배를 끊었다는 사례는 더러 있습니다. 마라톤을 하면 심장 기능이 좋아지고, 폐활량이 좋아집니다. 왕성한 폐활량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 담배를 피는 폐로는 숨이 아주 가쁘죠. 실제로 저는 10-20정도 혈압이 떨어졌습니다."

   
▲ 마라톤 입문 후, 체중이 보기 좋게 늘고, 담배까지 끊었다는 권혁만씨(43). ⓒ이미리 인턴기자
평상복을 입은 주민들 중에는 더러 살집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유독 마라톤 클럽 회원들은 몸이 아주 가뿐하게 보였다. 화요일 훈련은 바깥쪽 트랙이 460m, 안쪽 트랙이 400m인 경기장을 15바퀴를 도는 것으로 구성된다. 칼로리로 따지면 체중 60kg인 회원이 60분을 뛰어 442㎉를 소모한 셈이다.

"마라톤 후에 체중은 12kg 늘었습니다. 그런데 바지는 같은 치수를 입죠."

체중은 늘었지만 체지방은 적정 수준에서 유지했다는 얘기다. 요즘은 묻지마 체중 감량이 아닌 체지방 위주의 체계적인 다이어트가 큰 관심을 받고 있어 주목되는 대목이다.

훈련 후 '런너스 클럽'과 함께 추어탕 집으로 옮겼다. 24시간 마라톤에 한국대표 선수로 뽑힌 홍양선씨(48) 표현을 따라 '장수의 비결 막걸리'를 챙겨먹기 위해서다. 훈련이 끝나면 항상 이렇게 모여 꼭 막걸리를 마신다. 안주는 그때 그때 달라도 막걸리는 빠지지 않는다.

 

#3. "마라톤? 고통스럽지 않고 즐거운 거에요!"

임재훈씨(42)는 즐기는 마라톤의 열렬한 지지자다. 사실, 런너스 클럽의 회원들 대부분이 동감하는 부분이다.

"즐기는 마라톤에 대한 공통된 관심이 바깥에서는 질서가 잡히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오히려 더 풍부한 경험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제주 마라톤의 강점은 천혜의 자연 경관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거다. 오름과, 바다와 길가의 이름모를 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달린다. 자연과 함께하는 마라톤을 즐기는 임재훈씨는 오름 마라톤에 참가했다가 눈 앞에 펼쳐진 전경에 넋이 빼았겨 달리기를 잠시 멈춘 적도 있다.

"10km는 짧은 거리라 빨리 달려야 하니까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죠. 하프나 울트라 마라톤에서는 천천히 구경하고 좋은 친구가 있으면 얘기도 하면서 즐길 수 있어 좋습니다."

즐기다가 기록은 언제 세울까?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끝까지 완주한다는 데 의미가 있죠. 기록이 좋으려면 올림픽 마라톤 코스처럼 적당히 평지가 계속 이어져 있는 길이 좋습니다. 평탄한 코스는 기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죠. 하지만 저는 힘들더라도 동산도 적당히 있는 아기자기한 코스가 좋습니다."

기록이 중요하다면 정말 죽을 것 같이 뛰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최고의 기록이 나올테니까 말이다.하지만 좋은 풍경과 함께하는 코스 자체를 즐기는 달리기에서는 죽을 듯이 힘을 다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 마라톤이 너무나 즐거운 임재훈씨(42). ⓒ이미리 인턴기자

"보스톤 마라톤은 마라톤 자체가 축제로 유명하죠. 여대 앞에서 여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있으면 달리던 선수들이 신이 나서 멈춰서 같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분위기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르죠. 달리는 사람은 달리는 것을 즐기고, 보는 사람은 달리는 사람을 보는 것을 즐기는 거죠."

마라톤을 흔히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에 대해 감히 묻고 싶어졌다.

"살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제 발바닥에 물집이 여럿있어서 고통스러워도 저는마라톤을 즐기고 있습니다."

   
▲ "런클! 런클! 힘~!" 훈련 종료 후에는 구호를 외치며 마무리 한다. '런클'은 런너스클럽의 약칭. ⓒ이미리 인턴기자

런너스 클럽

'함께 뛰는 마라톤, 즐거운 인생'을 모토로 1999년 서울에서 다음 카페 'Runers Club'을 개설하면서 창립됐다. 제주런너스클럽은 2003년 8월에 결성됐다.

50여명이 열혈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적인 모임이어서 훈련 프로그램도 전국적인 프로그램을 따른다.

회원들이 직장인이라는 특성을 반영, 훈련 참가 기회를 넓히고자 화,수,목,토,일 요일별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 운영한다. 제주시지부는 화, 목, 주말, 서귀포시지부는 수,주말 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주말에는 다양한 코스를 선택해 LSD훈련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꾀하고 있다.

다음 카페 : http://cafe.daum.net/ru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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