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임의 제주 오름기행] 올레꾼 22km 도보기행(3) 하늘길 여는 통오름

▲ 능선,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 김강임
# 검은 흙에 뿌리내린 반달 숲 통오름

신(神)은 척박한 그 땅에 천상의 꽃밭을 주셨습니다. 그 꽃밭은 사람의 힘으로 가꾼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라산 화산폭발로 생겨났습니다. 그 꽃밭은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1976번지 통오름입니다. 통오름은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중산간 마을 전망대이기도 하지요.

▲ ▲ 통오름 가는길 ⓒ 김강임
▲ ▲ 풀섶향기 그윽한 등산로 ⓒ 김강임
올레꾼들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마을에서 1.5km정도 걸었을까요. 16번 도로를 가로지르니 흙길입니다. 거무죽죽한 흙길 올레 끄트머리는 아름다운 동산, 통오름이 펼쳐지더군요.

9월 27일 오전 11시 40분, 돌담 끝에는 반달 같은 해송 숲이 나타났습니다. 해송 숲은 검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더군요. 드디어 올레꾼들은 통오름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 ▲ 천상의 꽃길 ⓒ 김강임
# 까치발로 걸어야 할 판, 천상의 가을 꽃밭이기에... 

말굽형 분화구를 가진 통오름은 가을 잔치가 열렸더군요. 올레꾼들 넋을 잃었습니다.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지요. 까치발로 걸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고운 풀섶 즈려 밟고 능선을 오르니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꽃향유, 미역취, 이질풀, 쑥부쟁이, 패랭이꽃, 잔대가 천상의 가을 꽃밭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야생화 전시관에 들어온 느낌이었으니까요. 바람도 숨을 쉬지 않는 통오름 올레 길은 하늘 길 같았습니다.

▲ ▲ 분화구 말 ⓒ 김강임
▲ ▲ 말 분비물 ⓒ 김강임
# 통오름에 그려진 지도 고달팠던 삶 

제주에서 기생화산은 마소의 아지트이기도 합니다. 서쪽으로 흘러내린 통오름 말굽형 분화구 역시 마(馬)들의 아지트더군요. 천고마비라는 말은 통오름을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푸른 풀섶 위에는 마(馬)의 분비물이 지도를 그려놓았습니다.

"이거 알아요? 말의 분비물은 동글동글 하고, 소의 분비물은 넓적하지요. 그런데 옛날에 제주사람들은 자원이 부족 했을 때, 말의 분비물을 햇빛에 말려 땔감으로 이용하기도 했죠. 특히 우도 등 섬 지방에서는 유일한 땔감이었습니다"

올레 동행에 나선 한 선생님은 내 든든한 가이드 같았습니다. 한때 제주도는 힘든 시절이 있었지요. 그 시절엔 어디 부족한 것이 땔감 뿐이었겠습니까? 물 부족으로 물지게를 짊어지고 물을 날랐던 이야기 있지요. 천상의 가을 올레 길에서  척박한 섬사람들의 고달팠던 삶과 지혜를 엿 볼 수 있더군요.

▲ ▲ 봉우리 쉼터 ⓒ 김강임
# 찢어진 새털구름, 솜털 같은 뭉게구름의 하모니

5개의 봉우리는 하늘과 맛 닿은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봉우리에는 많은 올레꾼들의 다리를 쉬게 하더군요. 온평리 포구에서부터 2시간을 걸었으니   다리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때문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통오름 능선 휴식의 공간이기도 했지요.

파란하늘이 그렇게 높아 보인 적이 있었던가요? 찢어진 새털구름이 그렇게 조화로운 적이 있었던가요? 하얀 뭉게구름이 솜털처럼 포근해 보인 적이 있었던가요? 올레꾼들 풀섶 위에 앉아 있으니 천상의 가을 꽃밭에 초대된 기분이 들더군요.

▲ ▲ 분화구 ⓒ 김강임
# 천상의 가을 꽃밭 누가 초대됐을까?

원형 분화구 안에는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꽃도 아닌 것이 꽃처럼 피어나는 억새, 잡초 같으면서 초가를 엮어내는 띠풀, 그리고 말굽형분화구 한 켠에 밭을 일궈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주오름이 사유재산이 많다 보니 분화구까지 개인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 ▲ 나비 ⓒ 김강임
천상의 꽃밭에 초대된 것은 올레꾼 만이 아닙니다. 두 번째 봉우리를 오를 무렵이었습니다. 꽃을 찾아 날아온 나비가 능선을 유희하더니 살포시 풀섶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이날 통오름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은 것은 나비였지요.

▲ ▲ 정상에서 본 난산리 ⓒ 김강임
# 올레길 통오름 하늘 길 같더라

사실 제주올레코스라 해서 마을 골목길만 생각했습니다. 올레란 ‘길에서 집 대문까지로, 출입하기 위한 골목’으로만 알았었지요. 또한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에 구불구불 이어진 좁디좁은 돌담길을 기억했지요. 바람 많은 제주에서 올레라는 공간은 거센 바람을 막아주거나, 또는 외부의 시선을 차단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올레꾼들의 희망인 제주올레란 ‘ 제주에 오지 않겠니?’ 또는 ‘제주에 오세요!’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5개의 봉우리를 돌아보니 30분이 소요되더군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다’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하산의 발걸음은 빨라질 수밖에요.

▲ ▲ 꿩메밀국수 ⓒ 김강임
이날 점심은 온평리 부녀회에서 만들어 주신 꿩칼국수였습니다. 뭐 식당이라야 변변치 않은 시골 창고였지요. 하지만 꿩고기 몇 점을 얹은 메밀 칼국수는 제주 토속의 국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표고 143m, 비고 43m 통오름, 해마다 가을이 되면 아마 통오름을 오를 것 같습니다. 올레길에서 만난 통오름 가을 꽃밭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늘 길 같았으니까요.
 
※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7일 다녀온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 입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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