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의 일본야구 A to Z] 패자에게 박수를

▲ 택시에도 우리 동내 고교를 응원ⓒ신재경
# 야구 聖地 「고시엔」야구장은 어떤 야구장?

고시엔(甲子園) 야구장은 그저 평범한 야구장이다. 위치는 효고겐 니시노미야시(兵庫현 西宮市) 에 있으며, 오사카(大阪)의 중심 우메다(梅田)에서 전차로 20여분의 거리이다. 한신(阪神) 전차 역이 야구장 입구까지 들어가 있다. 오사카(大阪)아 고베(神戶) 중간 위치에 있다.

소유자는 오사카 철도회사 한신(阪神) 전철이며,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한신 타이거스의 홈 구장이다. 봄과 여름 1년에 두 번 열리는 고교야구의 본선이 이 구장에서 치러진다.

1924년에 세워졌고, 그 해가 갑자년이라서 甲子園 야구장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대규모 야구 전문 구장이다. 당시는 일본에 야구 전문 구장이 없어서 미국 뉴욕 자이언트 구장을 모델로 설계 했다고 한다. 관객수용능력은 일본에서 최대라서 약5만명이 들어 갈 수 있다. 당시는 미국 구장을 모델로 설계를 했으나, 동양 최고는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대경기장으로 시설은 완전무결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시엔 야구장에서 일본 고교야구(당시 중학야구)가 열린 것은 10회 대회(1924년 8월 13일) 부터였다. 고시엔 야구장을 완성, 첫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은 하늘에서 10대의 비행기가 에어쇼를 벌이고, 시구식 볼을 투하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 2008년 6월 30일)

지금 고시엔을 들어가서 보면, 그저 평범한 야구장. 서울 동대문야구장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다른 구장과 다를 바 없는 야구장을 '일본 야구의 성지' 라는 별명까지 붙여서 신성시 하며, 이곳에서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 고교 선수들이 피눈물 나는 연습과, 눈물과 웃음이 서로 엇갈리는 곳이다.

그 뿐인가? 대회에서 패배 하면 고시엔을 떠나야 된다. 운동장을 떠나면서 그 그라운드에 있는 흙을 담아서 가져간다. ‘고시엔의 흙’을 자기 학교로 가져가서 신주(神主)처럼 모신다. 이렇게 神主가 될 흙이 한 대회를 치르면 트럭 2대분 이란다. 거기에 그 흙을 담아가는 주머니는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이 다 들어가서 만들어진 너무 멋진 주머니이다. 팀 전 선수가 그 주머니를 꺼내 들고 패배의 쓰라린 눈물을 흘리면서 그 흙을 담는 모습은 고시엔의 명물이다. 울면서 흙을 담는 모습이 신문 TV에 너무도 잘 비쳐진다. 어린 학생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노력하다 산화되는 그 순간이다. 승자에게는 박수를, 패자에게는 같이 울어주고 싶은 그 순간이다.

고시엔 야구장은 프로야구 한신(阪神) 타이거스의 홈구장이어서 한신(阪神) 타이거스 전 경기의 약 반이 이곳에서 열린다. 한신 타이거스를 응원하는 한신 팬들은 일본에서 유별나기로 유명하다. 도쿄(東京)에서는 한신타이거스를 응원하는 한신팬들을 ‘오사카 쌍놈’이라고 부를 정도로 유별나게 응원한다.

5만명이 들어가는 고시엔에 한신 타이거스를 응원하는 숫자는 아마도 4만5천명은 될 것이고 나머지 5천명 정도는 상대편을 응원하는 팬들이다. 그 4만5천명이 한꺼번에 부르짖는(울부짖는) 함성은 땅이 깨지는 그런 소리이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볼을 지켜보다가 홈런이라도 되는 순간에 울려나오는 약4만명의 그 함성, 그 오케스트라는 , 땅이 깨지는 소리다.

주변은 고시엔 야구장 하나를 위한 상업지이다. 5만명을 상대로 하는 종합상가지역이다. 이곳은 모든 게 다 시중보다 비싸다. 일반 슈퍼라도 술 종류는 엄청 비싸서 다른 곳의 두 배정도다. 한신이 이기는 날에는 야구장 밖 공터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또 한번 술 파티가 벌어지고, 한신 타이거스 응원가 '록고 오로시(六甲おろし)를 밤늦도록 불러댄다.

주변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한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한신이 이긴 날은 시끄러워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단다.

▲ 저 기념 비석 속에는 고시엔에서 퍼온 흙을 넣고서 학교의 신주가 된다.ⓒ신재경
#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교 야구란?

왜 일본 사람들은 고교야구에 열광 하고 있을까? 일본 사람들에게 야구는 하나의 문화이다.

날이 더워지는 여름이 되면, 일본사람들은 올해는 내가 사는 동네, 나고 자란 동네에서 어느 고등학교가 고시엔에 나가려나, 은근히 걱정과 기대를 한다. 남자들만 아니라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2008년 여름 고시엔 대회는 기념대회로 90회 대회다.

첫번째 고교야구대회(당시는 중학야구대회)가 열린 것은 1915년 8월 18일이었다. 전국 지방예선에 73개교가 참가, 본선에는 10개교가 참가했다.

대회장은 오사카(大阪)의 도요나카(豊中) 구장. 더운 여름날에도 불구하고 구경꾼이 얼마나 모였는지 관전을 위해 준비된 천막(텐트)이 날라 갈 정도였고, 얼음과자가 팔리고 팔려 동이 났다고 전한다.

1회대회 우승은 교토 제2중(京都 二中)이 아끼다 중학(秋田中)을 연장 13회에 2:1로 승리했다. 우승한 교토 제2중학이 교토시(京都市)에 개선했을 때는 꽃자동차와 악대로 카퍼레이드가 벌어져 주위 교통이 완전 스톱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아사히신문 2008년6월30일 조간) 이 대회는 10회 대회부터 장소를 고시엔으로 옮기게 된다.

일본에 처음 야구가 소개 된 것은 1872년 현재 동경대학교 미국인 교사였고, Baseball 을 야구(野球) 라고 번역된 것은 1894년이다.

1903년에 와세다 대학과 게이오 대학이 야구 정기전을 했으며, 3년 후 1906년에는 응원 과열로 정기전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일어난다. 정기전 중단사태는 두 학교의 감정 문제도

있었겠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는 것이 상상이 된다.

1870년경에 일본에 야구가 소개되고, 불과 30년이 지난 후 경기 중단까지 일어나고, 또 15년이 경과된 후에는 고교야구가 일본을 흥분하게 만든 것이다.

대체 일본사람들에게 야구는 무엇일까? 또 야구가 일본사람들 민족성에 그렇게도 맞는 스포츠일까? 만약 야구가 없었다면 일본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야구란 스포츠가 일본에 들어와서 과연 공헌을 한 것일까? 아니면 역적을 한 것일까?

그러나 오늘도 일본은 야구 이야기가 모든 매스컴 스포츠 란의 중심이며, 어느 술집에서도 야구를 안주로 담아 술을 마시고 있다.

지금 일본 야구 열풍은 프로야구와 고교야구다. 그러나 야구가 일본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130년동안 계속 고교야구와 프로야구가 선두를 달린 것만은 아니다. 프로야구의 역사는 70년에 불과하다. 대학야구가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고, 아마추어 실업야구가 인기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의 고교야구와 프로야구의 열풍은 앞으로 몇 십년간 일본을 뜨겁게 할 것이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여론 조사를 했다. 고교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전체의 60%다. 남자가 64%, 여자가 56%다.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은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결과는 관심도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높아져, 70대는 70% 노인들이 관심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장 낮은 관심도는 30대로 50%이다.(아사히신문 2008년6월25일 조간)

도회지 사람들보다 지방사람들이 관심도가 더 높다. 일본도 지방색이 한국만큼 하다. 자기 출신지 고교가 올라가서 좋은 성적을 올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또 시골 고교가 도시의 내로라하는 고교를 이겼을 때 그 통쾌감, 속이 시원하다. 출신지 연대감을 만들어주는 좋은 기회가 1년에 두 번있는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다.

‘무엇이 좋아서 고교야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열심히 플레이를 하는 그 모습이 좋다”고 대답하고 있다. 고교야구는 성장과정의 야구이다. 에러를 해서 경기가 뒤집히는 경우도 왕왕 있고, 경기운영 미숙으로 지는 경우도 많다.

경기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면서 고시엔 흙을 담아가는 그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같이 울어주고 싶다. 이긴 팀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보다, 진 팀에게 동정을 먼저 보내고 싶다. 이런 기분이 들도록 만드는 것은 역시 TV 연출 효과다. 매스컴 효과가 인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그렇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은 100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매스컴에서 만든 연출이 국민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머릿속 무의식 수준까지 침투해,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한 매스컴이 100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고등학교 선수들을 배우 출연시켜 만든 연출의 승리인 것이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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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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