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귤

지난 금요일, 한 녀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동네 동창들이 만나는 계기가 생겼다. 문상을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그냥 헤어지기가 아쉽다며 2차로 신시가지 횟골로 갔다. 두 개의 상 앞에 주류파와 비주류파로 나누어졌다. 내가 가진 진귤에 대한 기억 둘 중에 하나는 도보여행 1탄에 이미 나왔고, 다른 하나는 이날 주류파에 끼어 나와 마주앉았던 녀석의 집에 있는 진귤나무와 관련이 있다.

   

중학생이 되면 우리 마을에선 모두가 자동으로 학우회에 가입되었다. 그러면 마을의 공동우물청소며 마을소풍이며 모두 참석할 수 있는데 그 재미가 만만치 않다. 중학교에 다닐 때 대학생이었던 녀석의 큰 형은 우리를 마을창고에 모아놓고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고 애향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독려하셨다. 다른 과목은 기억이 없지만, 그때 당시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우리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선생님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방학이 끝날 때쯤, 수학을 가르치던 그 선생님도 떠나게 되었고 심훈의 상록수를 떠올리게 하는 스터디도 끝나게 되었다. 우리는 녀석의 집에서 이별파티를 하였고 석별의 정을 부르며 눈물을 홀짝이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상고에 다니던 선배들은 우리를 모아놓고 주산도 가르쳤다.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우린 주산으로 셈할 줄 알았으며 그 시절 성적을 정리하는 선생님의 심부름도 종종 했었다.

   

해마다 추석 혹은 설날이 되면 학우회 활동으로 빼놓을 수 없는 콩쿠르대회가 있었다.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마을 사람 모두가 참석하여 노래를 부르며 입상하면 상품을 주곤 했다. 그 행사를 주관하는 우리로서는 행사가 빛을 발하도록 중간마다 무용이며 여러 가지 찬조를 넣어야만 했는데 몇몇은 무용을 하게 되었다. 양손에 조그만 태극기를 들고 하는 무용이었는데 설을 앞두고 우린 녀석의 집에 모여서 연습 했다.

   

녀석의 집은 아버지가 안 계셔도 언제나 마을에서는 어느 이장님 댁으로 불렸고 마을 사람 공동의 장소이자 공동의 집이었다. 그만큼 집도 터도 넓었거니와 식구들의 마음도 넓었다. 진귤에 대한 두 번째의 기억은 이 집에서 만들어졌다. 나무 밑은 자갈벽인 데다가 워낙 나무가 컸기에 따고 팔다 남은 녀석도 꽤 달렸었다. 무용연습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우린 남아있는 진귤을 따려고 몰려들었다. 와르르 자갈이 무너지며 중심을 잃고 쓰러진 난 그만 손목을 삐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병원에라도 갔으련만, 아버지는 이웃집 할머니한테 가서 손목을 쥐어달라고 하라며 지금의 접골원과 같은 치료를 대신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손목이었지만 막중한 책임감으로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 이따금 아프고 불편했지만, 손목은 운명이거니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데, 40의 후반이 된 지금도 잊을만하면 이놈의 손목이 아프다고 앙탈을 부린다. 그렇게 되면 난 손목을 이용하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스프레이파스를 뿌리고 압박붕대를 감고 그렇게 며칠 견디노라면 또 잠잠 잊혀간다. 왜일까? 묘하게도 이 통증이 수반될 때마다 난 병원에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보다 이 진귤나무와 그 시절 마을 창고에 모여서 공부하던 때가 떠올랐다. 손목의 통증보다 더 지독한 그 시절의 그리움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녀석과 맨 먼저 나눌 수 있는 말이 난 이 진귤나무였다. 다행스럽게 진귤나무는 지금도 건재하다며 따가라고 했다. 고스란히 35년이나 흐른 세월을 보상받는 것 같아 다소 흥분도 되었다. 따가라는 말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녀석은 똑같은 대답이다.

   

진귤을 따다가 딱히 무얼 하겠다는 목적은 없었지만, 천일야화의 한 대목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은 기분은  지난날의 추억 하나 월척으로 낚아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튿날, 퇴근하고는 마트에서 물건을 샀을 때 쥐여주는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녀석의 집에 갔다. 아무도 없는지 조용한 집, 이상하다. 어렸을 적,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안 계실 때 적적하던 그 기분이었다. 분명히 녀석의 집이 맞는 것 같은데 지붕이 아니다. 녀석에게 전화 했다.

   

"나, 너희 집 못 찾겠어."

뭔 소리냐고 황당하여 말을 잊지 못한다. 너무 무안한 나는 설명을 해야만 했다.

“나 분명히 너희 집 맞게 찾아왔거든. 근데 이상해. 마당에 금잔디도 맞고 진귤나무도 맞는 것 같은데, 진귤나무 아래 자갈도 없고 지붕도 기와가 아니야. 너희 집 분명히 기와잖아."

그러면 그렇지,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꾼 지가 언제냐고 한다. 
 

   

언젠가는 내 집인 양 스스럼없이 드나들던 집이지만 그래도 편치 못하다. 낯선 이 느낌은 무엇일까? 주인 없는 널따란 텃밭에서 혼자 진귤을 따려니 왠지 모를 스산한 기분이 다가왔다. 꼭 도둑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 낯선 느낌을 이기지 못해 비닐봉지 하나 채워지기가 무섭게 집으로 왔다. 진귤은 미끈한 녀석보다는 도톨도톨한 녀석이 정겹다. 그런 녀석을 하나 골라 껍질을 벗겼다. 톡 쏘는 향이 아주 좋다. 한 조각 입에 넣었더니 열매의 크기에 비해 제법 큰 씨가 세 개 나온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신맛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입안 가득 자극으로 고인 침이 목을 타고 내리며 꿀꺽 소리를 낸다.

   

저녁준비를 하면서 그 스산한 기분의 정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나 혼자만의 상상이 과거에 가 있을 뿐, 과거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우회도, 그때 우리가 공부하던 창고의 사무실도, 더군다나  사람도 말이다. 내 아이가 그때의 나보다 더 나이를 먹었는데 무얼 어쩌자고 난 이토록이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이젠, 손목의 통증이 재발하여도 그 통증따라 과거로 가지 않으리. 공유할 수 없는 혼자만의 그리움 탁탁 털어내고 병원으로 가련다. <제주의소리>

<고봉선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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