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의 일본야구 A to Z] 8년동안 234승의 명투수

1937년 구슈(九州) 뱃부(別府)에서 출생. 2007년 사망(만70세). 1956년부터 1969년까지 니시테츠(西鐵라이온스) 투수, 총 276승 137패 1961년은 1년에 42승14패. 니시테츠(西鐵)라이온스, 태평양, 롯데 감독 역임.

"가미 사마, 호도께 사마, '이나오' 사마"(神さま。仏さま。稲尾様。하느님, 부처님, '이나오'님)

일본에서 이 말을 모르면 간첩이다. 일본사람은 누구도 알고 있다. '이나오' 란 '이나오 가즈히사' (稻尾 和久 いなお かずひさ)씨의 성이다.

1937년 출생해서 2007년 7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기록과 기억은 일본야구의 역사에 남는 투수이며, 장년의 그의 얼굴은 맥주보다 막걸리가 더 어울리는 타입이다. ('이나오 가주히사' 의 공식 사이트 http://tetsuwan-inao.com/top-inao.html)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의 기록과 기억은 누구도 인정하는 일본 야구사의 최고 명투수다. 아마도 그를 능가 할 투수는 현재도 나오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또 미래에 걸쳐서 최고의 명투수는 '이나오 가즈히사'이다,

'이나오(稲尾)' 는 온천으로 유명한 규슈(九州) 뱃부(別府)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노를 저어야만 했다. 어릴 때부터 배에서 노젓기는 천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한 허리,또 밸런스 감각을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기보다는 어부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나오' 자신은 고생만 하는 어부가 싫어서, 야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야구선수가 되어야만, 배에서 도망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라는 말이 있다. 자연의 섭리를 아는 어부. 가난, 노력하는 자세 등을 보면서 성장하게 된다. 투수로서의 성공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성공에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많은 영향을 그에게 주게 된다.

'이나오'는 뱃부(別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프로야구 니시테츠(西鐵)라이온즈(현재는 西武라이온스)에 1956년에 입단했다. 입단초년도에 21승6패, 다음해에 35승6패...던지면 이기는 투수가 된다. 프로에 입단 8년만에 234승을 올린다. 입단 6년째는 일본기록인 42승을 올리게 된다. 78시합을 던져 42승 14패 승률75%, 78시합이란 거의 전 시합의 약 반수 이상의 시합을 던졌다는 것이다. 년간 42승을 올리는 그 해는 404이닝을 던졌다. 년간 전시합의 전이닝 1296이닝(144시합×9이닝=1296이닝) 의 1/3 이닝을 던졌다는 결과다. 년간 42승, 전 시합의 반은 그가 마운드에 올라갔으며, 전 이닝의 1/3 이닝을 던졌다. 지금 선수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등판 숫자이며, 강철 어깨이다.

8년간에 234승. 현역 투수 중 최고투수라는 '마츠자카' (일본에서는 세이부(西武)소속, 현재 미국 Boston Red Sox)는 8년간에 108승을 올렸다. 지금 선수와 비교가 된다.

고깃배 어선 항구 주변, 나가야(長屋, 한 지붕이 길게 이어져 그 처마에 여러 세대들이 나누어지는 집, 일본의 전형적인 빈촌의 상징) 에서 7형제중 막내로 태어난다. 생활이 어려워,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고깃배의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 집안에서 프로야구선수가 나왔으니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아버지는 프로에 들어가서 3년간 해보고 시원히 않으면, 돌아와 어부를 하는 조건으로 찬성했다.

입단해서 1년을 해보니 10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로 3년째를 들어가는 해에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어머니 소원이 해가 볼 수 있는 집에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고 싶으시단다. 이나오는 이제 약관 20살짜리 청년. 프로 2년을 마치고 나니 연봉이 하늘위로 껑충 뛰어 300만엔. 당시는 공무원 초임이 6천엔 정도로 하였으니, 당시 돈 300만엔은 지금 돈으로는 아마도 1억엔 정도일 것이다.

구단 사장에게 300만엔을 빌려 달라고 사정을 한다. 구단 사장은 펄쩍 뛴다. 무엇 때문에 300만엔이 필요하냐고? 고등학교를 2년 전에 졸업한 어리디 어린놈이 지금 돈 1억엔을 빌려 달라고 때를 쓰고 있으니,사장도 참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그래서 캐물었다. 무엇 때문이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소원이 햇빛 분수 있는 집에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는 것입니다.
집을 장만 하려니, 300만엔이 필요 합니다'

구단 사장이 "야 이놈아! 그런 말이면 빨리 해야지" 그 말을 해 놓고서는 사장도 같이 울었다고 한다.

그 돈으로 1개월만에 뱃부 바다가 보이는 아주 좋은 곳 150평 땅에 멋진 2층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젠 아버지가 버틴다.

"아버지 새집으로 이사를 갑시다"
"갈려면 너희들만 가. 나는 정든 이집이 좋아"

며칠간 가족 전원이 설들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아버지도 넘어갔다. 아버지의 최후는 새집에서 임종을 보게 되었다.

1958년 일본 시리즈는 巨人과 이나오가 소속된 西鐵의 경기에서 어느쪽이 먼저 4승을 올리면 일본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제1전, 이나오 선발 등판, 팀 패배.
제2전, 이나오는 등판하지 않았지만 팀 패배.
제3전, 이나오 선발로 등판, 완투는 했으나 팀은 0:1로 패배.

이제 1패만 해 버리면 그 해의 일본 챔피언은 巨人으로 결정되고 만다.

제4전, 이나오 선발로 등판, 완투. 팀은 6:4로 승리. 겨우 처음으로 1승을 올렸다.
제5전, 이나오는 선발은 아니지만 3번째 투수로 등해 지고 있는 경기를 9회때 동점, 연장전에서 이나오의 사요나라 홈런으로 팀 승리.
제6전, 이나오 선발, 완투 완봉, 2:0 팀 승리.
제7전, 이나오 선발, 완투, 6:1로 팀 승리.

이 일본 시리즈에서 이나오는 6시합을 등판하고, 한 시합은 자신의 사요나라 홀런으로 시리즈를 결정짓고 만다. 이래서 나온 말이 '하느님, 부처님 '이나오'님' 이다.

그러나 철판 어깨인 이나오도 1964년은 1승도 못 울리는 등 부진에 빠지고 만다. 어깨 혹사로 인한 피로가 온 것이다. 그의 투수 인생을 8년의 영광, 6년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8년의 영광기간 중에 234승을 올렸고, 6년의 좌절 기간중에 42승밖에 못 올린다.

그는 일본 최다승 투수도 아니다.(최다승 투수는 가네다(金田) 400승) 그러나 일본에서 누구보다도 존경받고 사랑받고 있는 명투수 이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선수로서는 훌륭한 기록과 감동을 남겼지만 감독으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왜 그가 존경을 받고 있을까?

인간 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효도, 또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대 스타로 성공을 했었어도 절대로 거만하지 않는 그의 성품, 성품에서 나오는 막걸리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그의 얼굴, 역시 이런 사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되는 것 같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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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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