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의 원천 동백동산

   
▲ 동백동산 입구  ⓒ 김강임 

아무래도 봄의 초입은 경칩이 아닌가 싶다. 모든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 그것은 봄이 가까워졌음을 말한다.  이맘때 거리의 자투리땅이나 공원, 담벼락을 빨갛게 물들이는 꽃이 있다. 그 이름 동백꽃, 겨울부터 봄까지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동백꽃을 찾아 동백동산 기행에 나섰다.

제주의 허파 곶자왈 속에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12번지 동백동산. 동백동산은 제주의 허파라 할 수 있는 곶자왈 지대에 있다. 동백동산은 여느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아마 그 이유는 곶자왈을 맹지나 야산으로 인식하기 때문.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지형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제주도만의 독특한 지형이다. 특히 나무, 덩굴식물, 암석 등이 뒤섞인 숲을 일컫는 제주도 말이기도 하다. 제주에 곶자왈은 4개 지역으로 분포돼 있다. 한경-안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조천-함덕-곶자왈, 구좌-성산 곶자왈이 바로 제주의 허파라 일컫는 곶자왈 지역이다.

   
▲ 곶자왈표지판 ⓒ 김강임 

 
서검은이오름곶자왈 용암류 동백동산

동백동산은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로 서검은이오름 곶자왈 용암류에 속한다. 서검은이오름 곶자왈 용암류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서검은이오름에서 시작해 선흘곶까지 7km에 이르니 숲의 면적도 어마어마하다. 동백동산은 바로 선흘곶에 산재해 있다. 동백동산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서거문이오름 정상. 하지만 서거문이오름 정상에서 보는 선흘곶자왈 동백동산은 숲만 보일 뿐이다.

사실 서거문오름은 3번 답사 했다. 처음 답사 했을 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 전이었다. 그땐 등반로가 사람이 다니지 않아 곶자왈 지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문에 잡초로 할퀴고 곶자왈에 서식하는 식물들로 뒤엉켜 서거문오름에서 등산로를 찾지 못해 5시간 이상을 헤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후에 갔더니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탐방은 수월했으나 등반로에서 곶자왈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따라서 서검은이오름 곶자왈 용암류 탐방을 하는 사람들에게 동백동산 탐방은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동백동산, 제주특별자치도 천연기념물 10호

지난 2월 마지막 주말, 제주토박이 지인 2명과 함께 동백동산을 답사했다. 함덕교 선흘분교 옆을 지나 시골마을에 접어드니 집집마다 담장너머로 동백꽃이빨갛게 얼굴을 내밀었다. 꼬불꼬불 이어진 마을 끝을 지나자 숲으로 이어진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시골마을의 한적함에 젖어 다시 우측으로 접어드니 숲길이 이어졌다. 그 숲이 끝나는 지점이 동백동산 입구였다. 하지만 표지판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동백동산 입구 왼쪽에 놓인 표지석에는 동백동산이 제주도 천연기념물 10호라는 내용과 함께 곶자왈의 식생이 적혀 있었다. 즉 종가시나무와 후박나무, 비쭈기나무 등이 자라고 새우난초, 보춘화, 사철란 등이 서식하고 있음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 곶자왈습지  ⓒ 김강임

 
곶자왈 공원은 생태계의 보금자리

입구 오른쪽 정자는 나그네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자리 잡았다. 정문은 정낭으로 만들어져 숲의 분위기와 어우러졌다고나 할까. 쉬어 가고 싶은 숲 속 정자를 뒤로하고 몇 걸음 걸으니 수호신처럼 동백동산을 지켜왔을 동백나무 한그루가  반겼다.

동백동산 분위기는 뭐니뭐니해도 먼물깍이라는 습지다. 곶자왈 생명이나 다름이 없는 먼물깍은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숲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듯 했다. 2개의 방사탑과 어우러진 곶자왈 습지에 비친 풍경 역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 습지는 다량의 토양수분을 포함하고 있다 한다.

특히 담수, 기수, 염수를 덮고 있는 지역으로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콩팥 역활을 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물부추와 연꽃등의 침수식물과 송이 고랭이, 창포등의 정수 식물등이 자란다고 하니 생태계의 보금자리가 아닐까.

▲ 동백동산 산책로 ⓒ 김강임

   
▲ 표지판  ⓒ 김강임
 
 
2km 산책로는 낙엽길

동백동산 산책로는 2km, 여느 산책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제주 특유의 검은 흙과 자갈, 그리고 숲에서 떨어진 낙엽이 범벅이 된 산책로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해발  92~147m로 경사가 15도 정도기 때문에 비교적 밋밋한 지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동산에 오른다는 느낌보다는 산책로를 걷는다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의 특별함은 곶자왈에 서식하는 낙엽들이 수북이 떨어져 낙엽 숲을 걷는 느낌이다.

곶자왈 숲을 걷는 사람들이 행여 심심할까봐 산책로 주변에는 간간히 곶자왈에서 자라나는 식물과 동물, 습지 등이 사진과 함께 설명이 돼 있었다. 산책하다 피곤하면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마련 돼 있었다. 한마디로 동백동산은 곶자왈 공원 같았다.

▲ 동백꽃  ⓒ 김강임
▲ 동백꽃  ⓒ 김강임
 
"그런데 동백꽃은 어디에 피어 있을까?"

처음 곶자왈을 방문하는 내게 '20년 이상 된 동백나무가 10만 그루나 있으니 동백꽃이 많이 피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동백동산은 빼곡히 들어선 동백나무와 하늘 높이 자라고 있는 곶자왈 식물이 조화를 이룰 뿐이었다. 다만 간간이 피어 있는 동백꽃이 전부였다. 하지만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것은 산책로와 숲에 떨어진 동백꽃잎 서너개, 마치 숲에서 피어나는 꽃 같았다.

   
▲ 콩짜게란  ⓒ 김강임

자생, 공생, 상생이 어우러진 동산

동백동산의 특징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상록활엽수림지대'라는 것. 상록활엽수림은 대부분 큰 하천이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반해 동백동산처럼 평지에 형성된 상록활엽수림지대는 국내에서 드물다고 한다. 이는 곶자왈 용암류의 영향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곶자왈 용암은 적절한 습도와 기온을 유지시켜 줘 동백동산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적당한 습도와 기온에 등에 촉촉이 땀이 솟는다. 물론 기분도 상쾌해 졌다.  이렇듯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곳에서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빛이 숲의 조명이라고나 할까. 돌계단과 죽은 나뭇가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콩짜게란과 버섯종류가 눈에 띄었다. 아마 이 식물들은 곶자왈이 천국이리라. 곶자왈에서 자생하는 각종 난 종류와 양치식물, 크고 작은 나무들도 서로 엉켜 있었다. 서로 자생하고 공생하고 상생하는 동백동산은 바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산'이 아닌가 싶었다.

   
▲ 산책로 낙엽  ⓒ 김강임
   
▲ 쉼터  ⓒ 김강임

곶자왈 숲길에서 상생의 미학 배우다

산책로를 따라 중간쯤 걷다보니 연료가 귀했던 시절 숯을 구워 난방에 사용했던 숯 가마터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동백동산은 한때 이 마을 사람뿐 아니라, 제주사람들에게 목재를 공급했던 곳이라 한다. 그러니 동백동산이야말로 제주사람들의 보물인셈이다.

2km 정도 되는 산책로를 돌아 다시 걷는 길에서는 제법 여유가 생겼다. 지나치는 식물등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고개를 쳐들어 20년 넘은 고목나무 끝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떨어진 동백꽃잎을 바라보며 '선운사 동백꽃'을 기억하기도 했다.

동백동산은 생명의 숲이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기에 분위기가 있어 연인들 산책코스로도 아지트가 될 것 같다. 또한 습지나 곶자왈 동.식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태 학습장으로도 안성맞춤이 아닐까. 특히  산책 코스가 밋밋하다 보니 노약자들도 숲의 향기를 맡아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제주의 허파 동백동산, 내가 걸었던 곶자왈 숲길에서 상생의 미학을 배웠다.  

덧붙이는 글 | ☞ 제주공항-번영로-봉개(왼쪽)-선흘마을-함덕초등선흘분교-동백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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