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경제칼럼] '냉정한 악인'이 필요한 경제 위기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은 미국 금융위기 와중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존재 중의 하나다. 지난 4분기 617억 달러의 손실, 작년 9월 이후 정부가 대준 돈이 1500억달러인데 그것도 부족하다 하여 충격을 주었다.

이 보험회사를 멍들게 한 가장 큰 범인은 크레디트 디폴트 스왑(CDS)이다. 어느 국가 또는 회사가 발행한 증권 또는 그가 은행으로부터 빌린 대출금이 제때에 상환되지 않으면 원금을 대신 갚아준다는 신 금융상품이다. 부도난 채무증서와 현금을 맞교환 하는 계약이라 하여 ‘스왑’이라 칭하지만 내용은 보험상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생금융상품으로 분류되어 당국의 감독을 덜 받는다는 것, 보험과는 달리 해당 위험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도 계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생면부지의 사람을 걸고 가입할 수 있는 생명보험인 셈이다. 기업이 망하면 계약자가 목돈을 받는 계약으로서 출발부터 투기수단으로 이용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도가 지나쳤던 머니 게임

미국의 DTCC(우리나라의 증권예탁결제원에 해당)는 작년 12월 현재 미국의 전체 CDS 잔액이 29조2000억달러가 된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상업대출의 총 합계가 대략 5조달러, 주택모기지 대출이 11조달러임을 고려하면 CDS가 위험회피보다는 투기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 해법 중 어려운 것이 당사자 간의 손실 부담에 관한 것이다. 은행의 경우 예금자는 우선적으로 보호된다. 변제순위가 제일 높다. 주주몫은 어차피 맨 나중이다. 그 중간에 있는 것이 예금 이외의 채권자들로서 이들에 대한 처우가 문제가 된다.

베어 스턴스의 채권자는 그 회사가 JP 모건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당장은 손해 본 것이 없다. 그러나 워싱턴 뮤츄얼과 리먼 브러더스는 청산되면서 주주들은 물론이고 채권자들 모두 큰 손실을 입었다.

AIG는, 망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회사에 흡수되기에도 너무 크다고들 한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어디까지 이들의 손실을 막아주어야 하는가? 투기성이 농후한 CDS 계약자를 포함하여 AIG의 모든 채권자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보호해야 하는가? 이러한 반발에 대해 오바마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오히려 300억달러의 추가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한다.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어떤가. 진행 중인 ‘스트레스 테스트’는 지원을 위한 절차일 뿐이다. 필경 많은 은행들이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씨티은행이나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정부의 지분이 50%를 넘게 되어 국유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들도 한다.

국유화냐 아니냐라는 논쟁을 떠나서 미국 정부는 더 힘든 숙제를 풀어야 한다. 지원을 하더라도 예금 채권 이외의 채권자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씨티은행을 예로 든다면 총 부채 1조9000억달러 중 1조1000억달러가 예금이 아닌 채무다. 정권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이해 당사자의 한 사람이면서 금전적으로 이들의 사활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정부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헤어 컷’(채권 금액의 감액)이나 채권-주식 스왑(채권을 주식으로 교환) 같은 해법은 검토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 부분은 시장의 큰 불안 요인으로 남는다.

폴 크루그만 교수는 기업들이 과실은 이해당사자들이 챙기고 손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을 ‘레몬 소시얼리즘(lemon socialism)’이라고 비난한다. 자유시장에서 자기 책임 하에 취한 선택에 대하여 정부가 구제에 나서는 것을 지적하여 하는 말이다.

AIG나 씨티와 같이 이름있는 금융기관을 선택하여 이들의 상품을 구매하였던 사람들에게 거래처 및 상품을 잘못 선택한 책임을 지라는 요구가 가혹한 것일까? 과연 버나드 메이도프 투자금융사(Bernard Madoff Investment Trust)나 스탠포드 인터내셔널 은행(Stanford International Bank)의 남다른 배당에 현혹되어 큰 돈을 잃은 사람들과 비교할 때 양자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일까?

다음 숙제는 채권자 처리

정해진 범위 내의 예금을 제외하고는, 개인이건 기관이건 국가건 간에 자기의 결정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그것이 미국의 정치적 또는 정서적 위상에 부담이 될지라도 시장의 질서와 국민의 세금절약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걸어야 할 길이 아닐까.

만일 경제적 파급을 걱정하여 주저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겁이 겁을 부르는 격이 되지 않을까. 혼란과 위기의 시기에는 ‘냉정한 악인’이 필요할지 모른다. 꼭 미국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제주대학교 산학초빙교수

* 이 글은 <내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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