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의 일본야구 A to Z] ID야구 창시자

▲ 노무라 가쓰야 감독
노무라 가쓰야(野村 克也) 1935년생, 포수
1954년∼1977년, 난가이(南海, 현 소프트뱅크, 23년, 마지막 8년은 선수 겸 감독)
1978년, 롯데(선수, 1년)
1979년∼1980년, 세비브(西武, 선수 2년)
(선수생활 27년간, 45살까지 선수)
홈런 타자로서는 역대 2위, 통산 657홈런 (1위는 王貞治, 통산 868홈런)
난가이, 야쿠르트, 한신(阪神), 라크텐(樂天) 감독(감독으로서 리그우승 5회, 일본 챔피언 3회)

노무라 감독(현 라크텐 이글스 감독)은 일본 야구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35년 교토후(京都府)의 바다, 우리 동해에 가까운 시골 미네야마(峰山)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3살때 부친은 일본군으로 만주에서 전사하고, 어머니와 형님이 있다. 노무라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진학하지 않고 일을 하기로, 또 중학교만 졸업하면 진학하지 말고 일을 하기로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한다.

고등학교때 야구부에 들어갔으나 야구용품을 살 돈이 없어서 야구부를 그만 둬야 했지만, 야구부 감독 도움으로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학교, 미네야마고교 야구부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시골 깡의 약체 팀으로 프로는 쳐다보지도 못할 팀이었다. 야구부 감독이 난가이(南海)팀 감독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 줘서 그 편지에 감동을 받은 감독이 연습용 볼보이 정도로 써 준 게 개화의 계기가 됐다.

프로에 입단은 했지만, 처음에는 그저 별 볼일 없는 연습용 선수. 레귤러 선수가 되기까지 모진 연습과 연구를 거듭했다. 입단초기, 해고통고를 받았으나 매니저에게 “앞으로 살 길이 없습니다. 해고가 되면 난가이(南海, 구단의 모체 기업, 철도회사)전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겠으니, 그저 목이나 붙여 주십시오” 라는 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깨가 약해서 포수로서는 도저히 쓸 수가 없는 것을 안 그는 트레이닝으로서 어깨 근육을 만들고, 커브에 약한 자기 자신을 이기기 위해 모든 투수들의 투구폼을 연구해 폼만으로 구질과 코스를 알아내는 등 철저한 연구가이기도 하다.

그것을 알아차린 이나오 투수는 거꾸로 다른 폼으로 던지는 등 역습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선수로서의 활약도 대단했다. 홈런왕 9번, 타점왕 7번, 수위타자 삼관왕을 1번씩 하는 등 대선수 였다. 홈런은 역대2위의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巨人의 홈런왕 王貞治, 나가시마(長嶋)에 가려 그의 기록은 주목도 못 받고 인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巨人의 王貞治, 나가시마(長嶋)가 '해바라기' 라면, 나는'달맞이꽃'” 이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실력은 있었지만 巨人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못 본 야구 일생, 그래서 그는 Anti Giant ( 巨人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최선봉에 서서, 巨人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여름에 열리는 일본의 올스타전은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로 나뉘어 열린다. 센트럴리그 팀 선발 선수가 모여 상대 리그인 퍼시픽리그 선발과 경기를 벌인다. 어제까지 적대하는 팀 선수들이 모여서 한 팀을 구성한다. 퍼시픽리그 포수는 항상 노무라 였다. 퍼시픽리그 투수들의 적은 상대팀 센트럴리그의 타자가 아니라 자기편 포수 노무라 였다고 한다. 올스타전이 끝나면, 바로 자기 리그로 돌아가 이젠 적으로 싸워야 한다. 그 투수 정보를 포수로서 수집하는 것이다. 어지간한 연구가다. 그래서 그의 야구를 '데이터 야구' 'ID 야구' 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스파이야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데이터 야구' 만 한 게 아니다. 포수로서 타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타자를 놀리는 말을 중얼중얼 댄다. “이번 볼은 너 머리통으로 날라와” “맞으면 너 죽어” 등등 말을 중얼중얼 거려 타자가 집중 못하게 한다.

거기에 프로야구선수들이 잘 가는 술집을 누벼, 호스티스에게 상대팀 타자의 사생활, 술 마시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런 말까지 경기를 하면서 중얼중얼 해대는 것 이다. 상대팀 타자들은 타자들대로 그와는 반대로 여러가지 연구를 한다. 한국의 백인천 선수가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귀막이를 귀에 넣고 나갔다가 오히려 그 귀막이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어떤 선수는 헛스윙을 하는 것처럼 해서 야구방망이로 그를 타격해 버리는 수법도 썼다고 한다. 어지간히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한 것이다.

1970년부터 77년까지(그의 나이 35살부터 42살까지) 선수 겸 감독을 했다. 타자로서는 4번 타자, 수비로는 포수, 그리고 감독까지 했다. 그러면서 타점왕이 되는 등 대선수로서 명감독으로서 활약했다.

이 사람처럼 부인 때문에 고전한 사람도 없다. 지금 부인(전 부인과는 이혼 후 지금 부인과 재혼, 노무라 사치요(野村 沙知代) 1932년생으로 지금 77세, 별명은 삿치(サッチ)) 은 탤런트도 가수도 아니면서, 또 평론가도 아니면서 어느 장르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TV에 가끔씩 나온다. 일본 전국에서 이 부인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TV에 나와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데로 해 덴다.

선수 겸 감독의 마지막 해(1977년)는 부인 때문에 시즌 중에 그만두게 됐다. 남편이 유명 선수 겸 감독이라는 것을 이용해 공(公)과 사(私)를 못 가려 코치 선수에게 까지 감독 부인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조감독(助監督)이라고 하기도 하고, 여감독(女監督)이라고 했다. 남편을 이용해 팀에 깊숙이 관여를 한 것이다. 이를 구단이 이것을 보다 못해 시즌 중에 명선수 겸 명감독을 해고 하고 만다. 또 아주 후에 한신(阪神) 타이거스감독을 맡을 때도 부인의 탈세혐의로 구속되면서 해고됐다. 두번씩이나 부인 때문에 해고 되는 진기록도 만들었다.

그는 감독으로서도 명지휘관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90년부터 98년까지 9년간 야쿠르트 감독을 맡았다. 그가 감독을 하기 전 야쿠르트는 그야말로 하위에서 맴도는 팀이었다. 그가 가서 3년만에 리그우승을 시키고, 다음해(1993년)에는 리그우승과 일본 챔피언이 되면서 야쿠르트는 항상 우승을 넘보는 강팀이 됐다. 9년동안 4번 리그우승, 3번의 일본 챔피언에 올라섰다. 그때 나온 유행어가 ID야구 였다.

ID야구란, Import Data의 약자로서 데이터를 중시하는 야구를 말하며, 노무라 야구의 대명사가 됐다. 야구 이론은 물론 상대팀의 각 선수들을 분석하고, 또 자기팀 선수들을 분석하며, 어떤 명선수라도 꼭 약점이 있고 습관이 있기에 그 약점과 습관을 이용하는 하는 플레이가 ID 야구라는 것이다. 그 ID 야구로 야쿠르트를 명문 팀을 만들어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 이론으로 발전 시켰다.

그는 “실력 없는 선수들이 모인 팀이 실력 있는 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ID야구 밖에 없다”고 장담한다. 실력있는 팀이란 그가 얕잡아 보고 있는 '요미우리 쟈이안트'를 말한다. '노무라 재생공장' 이란 말이 있다. 다른 팀에서 버린 선수들을 주 어 모아 명선수로 만들어 올리는 것이다. 실제 많은 선수들이 '노무라 재생공장' 문하생 출신이 나왔다.

'노무라의 보야기(ぼやき, 투덜투덜, 악담)' 가 유명하다. 주로 자기 팀 선수들이 못하는 점을 TV 카메라 앞에서 투덜투덜 한마디로 불평을 말하곤 한다. 예를 들면, 누구는 '야구에 의욕이 없는 선수' 라고 한마디 한다. 그는 말로 해서 성장 못할 선수에게는 아무 말도 않고 아예 무시하지만, 말해서 성장할 선수에게는 보야기(투덜투덜, 악담)를 한다고 한다. TV에서는 아주 재미있다고 흥미위주로 그 '보야기' 만을 찍으려고 서로 안달이다. 가만히 듣고 보면 재미도 있다. 그러나 선수본인은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상대팀에게 대해서도 가끔씩 보야기를 말하곤 한다. 특히 '요미우리 자이안트 거인'에 대해선 그 보야기가 도를 넘을 때도 있지만 거인을 싫어하는 '안티 거인'에게는 꽤나 재미있게 들린다. 그래서 ‘구렁이’같다는 말을 듣곤 한다.

노무라 감독은 명감독이다. 그의 저서는 20여권이 있다. 필자인 나도 몇 권을 읽었다.

본인이 직접 펜을 들고서 쓴 것인지, 아니면 고스트 라이터를 이용해서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머리에서 나온 내용이라는 것에는 틀림없다. 대단한 연구가이다. 그러나 야쿠르트 다음 팀인 한신(阪神)과 라크텐(樂天)에서는 우승이 없다. 라크텐은 창단된 지 얼만 안된 신생 팀이다. 그러나 꾸준히 실력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명선수에 명감독, 꾸준한 연구가, 야구이론의 대가, 다른 감독은 흉내도 못내는 방법으로 선수들을 자극 시키는 명지휘관, '안티 기인'의 선두 주자, 등등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닌 대가 다. 아마도 이런 대가는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약점이 있다. 부인이 항상 대가의 길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일본에서 그의 부인 '노무라 사치요'씨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부인이 만들어낸 문제 때문에 두 번이나 감독에서 목이 날아갔다. 필자인 도 노무라 감독은 좋아하지만, 그 부인은 싫다. 나뿐만이 아니라 일본사람 대다수가 나와 같은 생각이다. 험상궂은 독설가 할멈이다. TV에 나와서 재미있지도 않은 독설만을 말하곤 한다. 또 싸움닭이다. 여러 싸움을 만들어 싸움 스캔들을 만들고, 그 스캔들이 재미있다고 시청률 올리려는 TV는 안달이다. 그러나 감독은 부인과 사이는 좋은 것 같다.

다른 결점이 있다면, 아들 문제이다. 지금 부인과의 아들이다. 그의 아들은 야구선수였다. 아버지가 아니면 그저 별 볼일 없는 선수로 해고를 당해도 몇 번 당할 선수였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잘 챙긴다. 감독으로 이적할 때는 꼭 아들도 데리고 간다. 그래서 감독 앞에는 꼭 아들이 앉아 있다. 그는 지금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라크텐(樂天)의 코치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지금 코치 자리는 있었을까?

노무라 가쓰야(野村 克也) 감독 (라크텐 이글스의 홈페이지)http://www.rakuteneagles.jp/team/player/detail/19.html
부인, 노무라 사치요(野村 沙知代) http://www.nomura-sachiyo.jp/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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