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꽃과 함께]제비꽃

어느 날부터인가 앞마당 귀퉁이에 자리 잡더니 해마다 꽃을 피웠다. 그런 녀석을 나는 애지중지 키우는 데 반해 어머니께서는 뽑히지 않는 뿌리를 뜯어서라도 녀석을 처단하고자 애쓰셨다. 요즘은 그야말로 제비꽃의 계절이다.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됐는 보라제비꽃 외에도 여러 가지의 제비꽃들이 적잖다. 지난 토요일 남편과 산에 갔다가 만난 이는 잔털제비꽃이다. 잔털제비꽃은 잎과 줄기 부분에 잔털이 보송보송 나 있으며 잎도 약간은 동글동글하니 심장모양이다. 도대체 잔털과 둥근털, 그리고 그냥 털이라는 것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이들 털 가문의 제비꽃을 제외하더라도 제비꽃의 종류는 하도 많아서 알려고 한다는 게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비꽃

예로부터 중앙절이 되면 강남으로 갔다가 삼월 삼짇날에 돌아온다는 제비는 흥부전에서 권선징악의 형태를 보여주는 길조이다. 이 제비가 돌아오는 시기에 피는 꽃이라고 해서, 혹은 제비와 비슷하여서, 꽃이 물찬 제비처럼 예뻐서 등등 제비꽃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많다. 그런가 하면 식량이 떨어진 북쪽의 오랑캐들이 이 꽃이 필 무렵이면 쳐들어온다 하여, 꽃 뒤에 달린 꿀주머니가 오랑캐의 뒷머리를 닮아서, 북쪽을 향해 꽃이 피기 때문에 오랑캐꽃, 두 개의 꽃을 합치면 씨름하는 모양이 되는데다가 꽃과 꽃을 엇갈리게 걸어서 끊는 놀이를 했다 하여 씨름꽃, 반지처럼 만들어 손가락에 끼우고 다녔기 때문에 반지꽃, 병아리같이 귀엽다고 해서 병아리꽃,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 때문에 나물꽃이라고도 하였으며 장수꽃, 앉은뱅이꽃이라고도 하였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몰싸움고장(말싸움꽃)이라고 하시는데, 유래를 알고 보면 씨름꽃이나 오랑캐꽃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제비꽃

주로 온대지방에서 자라며 품종이 다양한 만큼 꽃의 빛깔도 다양하며 삼색제비꽃은 가장 널리 알려진 변종으로 흔히 팬지라고 한다. 유래나 종류에 못지않게 설화 또한 많은데 그중에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팬지

우선 첫 번째로 삼색 제비꽃의 전설을 보자면, 아주 먼 옛날 가난한 집에 아주 아름답고 일 잘하는 착실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 처녀를 탐내는 부잣집이 많았지만, 부잣집의 오만함이 싫었던 처녀는 언제나 그런 혼담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네에서 명색이 제일 부자라는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아, 운명은 거절할 수 없었을까요? 그 집 아들은 공부는커녕 계집질에 노름을 즐기기로 유명했지요. 단연코 처녀는 거절하였지만 제일 부잣집이라는 사실에 눈이 먼 부모님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부자란 게 뭔지…. 시집간 다음 날부터 신랑은 신부를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였고 또 아무 일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보호가 아닌 감금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밖으로 나돌아다니며 옛날처럼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뿐인가요, 어쩌다 집에 들어오면 말도 안 되는 일로 트집을 잡고 신부를 매질하였습니다. 감금만으로는 모자라 폭행까지 하였던 것이지요.

   
왜제비꽃

이 집에는 착한 고양이가 한 마리가 있었답니다. 이 고양이는 주인이 주는 밥보다는 자기 힘으로 쥐를 잡아먹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 고양이를 보며 신부는 자유로웠던 처녀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 시절이 못 견디게 그리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요. 무료함과 매질을 더 견디지 못했던 신부는 차츰 야위어가더니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털제비꽃

그녀가 묻힌 무덤에는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초봄부터 보라색, 노란색, 흰색이 섞인 조그마한 꽃이 피어났습니다. 꽃의 모양이 꼭 고양이 머리를 떠올리게 하는 형상이었지요. 이 꽃은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초겨울까지, 백 가지 꽃이 모두 자취를 감추는 그때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피었습니다. 시집가서 갇혀 있는 동안 얼마나 햇볕이 그리웠을까요? 햇볕마저 쬘 수 없었던 그 영혼이 맘껏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서 오래도록 피어 있는 것이라고 전한답니다.

   
잔털제비꽃

다음은 그리스 신화로 넘어갑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아름다운 소녀 이오를 사랑했습니다. 아내 헤라가 그 사실을 눈치 채어 발각될 상황에 부닥치자 제우스는 이오를 그만 흰 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소가 되어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이 측은했겠지요? 제우스는 가여운 이오에게 기왕이면 아름다운 것을 먹이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하여 목장엔 이오의 눈과 똑 닮은 꽃이 피게 했는데 그 꽃이 제비꽃이랍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리스 어로 제비꽃을 이온(ion)이라고 하며 그리스의 나라꽃이기도 하답니다.

   
잔털제비꽃

제비꽃의 이야기는 신화 하나로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옛날 그리스의 전설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가장 귀여워하는 아티스라는 양치는 소년과 이아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답니다. 이들 둘은 서로 사랑하였지요. 눈에 콩깍지가 씐 듯 점점 뜨거워지는 그들의 사랑이 아프로디테는 참 못마땅했나 봅니다. 결국, 그녀의 아들 에로스를 시켜 사랑에 불붙게 하는 황금 화살은 이아의 가슴에, 사랑을 잊게 하는 납 화살은 소년 아티스의 가슴을 향해 쏘게 했습니다. 이들 사이를 갈라놓고자 함인데 미의 여신답지 않게 참 못됐지요?

   
잔털제비꽃

사랑에 더더욱 불이 붙은 이아는 아티스를 찾아갔습니다. 어쩌지요? 뜨거운 이아와 달리 납 화살을 맞은 아티스는 이미 사랑을 잊었는걸요. 이아의 사랑이 아무리 뜨겁게 타올라도 냉담할 뿐 전혀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도 열렬히 사랑했던 그들이었는데 말이지요. 이아는 비통하여 울며 견디다 못해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잔털제비꽃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그저 지켜볼 뿐 어쩌지 못하였습니다. 고작 이아의 주검을 거두어 작고 가련한 꽃으로 만들어 주었을 뿐이지요. ‘진실한 사랑’이라는 꽃말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잔털제비꽃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어느 날 아들 에로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이 제비꽃하고 나하고 어느 쪽이 더 향기롭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못된 여신이라 여겨집니다. 꼭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오는 계모 같습니다. 장난기 많은 에로스는 어머니를 놀려 주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물론 제비꽃이지요.”

   
잔털제비꽃

아들의 대답을 들은 아프로디테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분을 이기지 못해 제비꽃을 마구 두들겨 팼습니다. 엄청 많이 맞은 탓에 제비꽃은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원래의 색이었던 하얀 빛은 오간 데 없고 보랏빛으로 변하였지요. 보라색을 바이올렛(violet)이라 하는 것은 이 독특한 빛깔에서 연유한 것이랍니다.

   
잔털제비꽃

<제비꽃>

- 고봉선 -

바람이 노닐다 한 점 떨군 눈물
찰흙에 고이 개어 빚어 놓았나
연둣빛 한 자락 
휘어감은 앳된 얼굴에
청아하고 앙증스런 그 자태
앞마당 귀퉁이에 곱기도 해라
햇살 한줌 받아들고 퍼붓는 애무

귀틀 담 모퉁이
소꿉놀이 신이 난 아지랑이
송이송이 훈풍에 수를 꿰놓았나
그윽한 청순미로
함초롬히 피어난
보랏빛 미소의 자지러질 유혹

보슬비 한 모금
혀끝을 유린하면
타는 갈증 후줄근히 적시고
옥죄인 가슴
훌훌 풀어헤쳤나
해맑은 아이의 발걸음 끌어당겨
노을마저 시샘하는 입맞춤도 싱그럽다.

※제비꽃의 이름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고봉선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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