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의 일본야구 A to Z] 드래프트(2)

일본을 뒤흔든 드래프트 사건은 에가와(江川) 선수다.

에가와는 1955년생으로 투수다. 고등학생 때 노히트 노런 9번, 완전시합 2번, 봄 고시엔 대회에서 탈삼진 신기록. 또 온 힘을 다 넣어서 볼을 던지면 포수는 그 볼을 잡을 수 없고, 타자는 방망이에 맞히는 것이 고작일 정도의 위력 있는 볼을 던지는 '괴물투수' 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 1973년 드래프트 1순위로 한큐(阪急)에서 지명됐다.

그러나 에가와는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계약을 거부해 대학(法政대학)에 진학해 버렸다. 그가 가고 싶은 대학은 게이오대학이었다. 하지만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에가와 게이오 낙방'은 뉴스속보로 TV에 나갔다고 하니, 얼마나 시선이 집중된 선수였는지 알 만하다. 그래서 법정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던 1977년에 크라운라이터에 1순위로 지명됐지만 에가와는 또 거부했다.

표면적 이유는 동경에 있는 구단이 아니라는 것(실제는 요미우리자이언트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1년 뒤(1978년) 에가와는 드래프트 회의 전날 요미우리자이언트와 전격적으로 계약을 해버렸다. 일본 야구계는 물론, 일본사회가 난리가 났다. 드래프트 제도를 무시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요미우리자이안트는 이 난리에 불복해 드래프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에가와는 한신(阪神)에 1순위로 지명 됐다. 그러자 이번엔 요미우리자이언트가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드래프트 회의는 무효라고 주장했고, 본인 에가와도 한신과의 계약을 거부했다. 난리가 난리를 부른 것이다.

커미셔너가 중재에 나섰다. 에가와는 한신과 일단 계약을 하고, 요미우리자이언트 에이스 투수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트레이드가 성립돼 에가와는 요미우리로 가게 됐다.

에가와는 요미우리자이언트를 그리도 열망 했지만 고졸 때는 한규, 대졸 때는 크라운라이터, 1년 재수생 후에는 한신에 드래프트가 걸린 것이다. 결국 드래프트로는 요미우리와 한 번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이언트에서 선수생활을 한 후 은퇴해서 지금은 해설자를 맡고 있다. 에가와 사건은 지금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역사에 기록 된 유명한 사건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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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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