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1년을 사귄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매일같이 손잡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소문에 소문을 듣고 사진을 찍기에 예쁘다는 관광단지들은 다 돌아다닐 만큼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남자친구가 저에게 자꾸만 무엇인가를 숨기는 것 같았습니다. 자꾸만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고 다른 말로 돌려버리는 남자친구가 야속하고 밉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를 통해 남자친구가 군대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서야 남자친구가 나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군대...

예전에는 낯설기만 했던 그 단어가 이제는 나에게 현실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 내 남자친구에게 말이죠. 그렇게 2달이 흘러 제 남자친구는 우리나라에 있는지도 몰랐던 이상한 지역에서 혹독하게 추운겨울과 지독하게 더운 여름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열심히 군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친구의 군대 생활은 그리 평탄치가 않았습니다. 훈련소에서 아파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도 걱정해주고 챙겨 줄 사람이 없는 그 곳에서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그렇게 힘든 훈련소 생활이 끝나고 자대를 가서도 그리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세상모두가 그대로인데 너 하나만 없는 내 세상과 세상모두가 바뀌고 너 하나 그대로인 남자친구의 세상은 누가 더 힘들고 누가 덜 힘든지 가리기는 힘들 겁니다.

디데이를 세어가며 휴가를 기다리고, 외박을 기다리고 내 정신세계가 온통 너에게만 집중되어 있는데 아직은 이등병이라 전화도 마음대로 못하고, 선임들 때문에 편지 읽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편지는 많이 써달라고.. 편지를 읽을 때면 정말 내가 옆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밖에서 편지 읽을 때와 여기 이 군대라는 곳에 갇혀 읽는 편지는 정말 천국이라고.. 또 힘든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내 작은 증명사진 하나를 보면 힘든 것도 다 잊은 채 행복하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옵니다.

남자친구가 군대라는 곳에 가면서 저는 처음으로 전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손으로 직접 써 보내는 편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전엔 미처 깨달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새벽잠을 자다가도 남자친구가 전화오지는 않을 까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붙들고 잠과의 힘든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이젠 전화기를 붙들고 잠을 자는 게 익숙해져버렸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자친구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코끝이 시큰해져 옵니다. 많이 힘드냐는 나의 물음에도 자기는 다 괜찮다고 그냥 보고 싶은 사람 못 보는 게 제일 힘든 거 같다고만 말합니다. 내가 슬퍼할까봐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남자친구를 보면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한 목소리로 아프지 말고 나중에 휴가 때 보자는 말을 남기고 아쉬움과 보고싶음에 전화를 끊습니다.

아직은 이등병인 남자친구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나중의 행복을 위하여 조금만 참기로 하였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 할 내 남자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나중에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돌아 올 남자친구를 보면 수고했다고 꼭 안아주겠습니다.

<제주시 도남동 고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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