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8일
2008년 12월 18일
  • 이진순 (-)
  • 승인 2009.04.2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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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군대에 가기전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 했던 대학교 기말고사가 홀가분하게 끝내고 군대에 가기전 신나게 놀고 싶은 생각 뿐 이였다. 하지만 저녁 5시 쯤 아버지가 일하시는 현장에서 떨어져서 병원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달래가며, 형국이와 춘식이형과 함께 택시를 타고 한라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본 아버지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바닥에는 아버지가 흘린 듯 한 피가 말라 있었다. 검사를 받으러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괜찮을 꺼라고만 생각 하고 있었다. 딱히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사무실을 정리 하던 사람이 지금은 내 눈 앞에 누워 목소리도 재대로 내지 못했다.

검사가 다 끝나고 의사가 보호자들을 불러 검사결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검사 결과를 듣고 내가 진짜 뭘 해야 될지 막막해 졌다. 신경이 손상되어 손발을 못 쓰고, 최악에 경우 수술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솔직히 화가 났다. 아버지는 우리들과 산 기억이 많이는 없다. 98년도에 제주에서 하시던 사업을 접으시고, 군산으로 이사를 해 살면서 가정형편은 계속 어려워지기만 했다. 아버지도 일이 없어서 몇 년 만에 또 제주도에 일을 하기 위해 혼자 오셨다. 기러기 아빠 아닌 기러기 아빠로 몇 년을 혼자 사시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도 명절이나 제사가 아니면 힘들었다. 그러다가 가족이 다시 제주도로 이사를 해서 가족이 다 같이 살게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였다. 같이 산지 1년 만에 어머니와 이혼을 하시고, 새 어머니라는 사람이 들어 와 살게 됐다. 솔직히 그때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을 힘들게 사시다가 2007년에 시작한 사업이 이제야 좀 잘 되가면서 이제야 우리아버지도 조금은 편해지겠지 라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사고가 나서 누워만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이제야 아버지가 하고 싶어 하시던 사업이 잘되려는 찰나에 이런 사고가 나는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사고가 난 바로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9시간 동안 목뼈에 철을 심는 수술을 하셨다. 아버지가 수술을 하시는 동안 진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는 한숨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주사바늘은 주렁주렁 매달려서 아버지 팔뚝에 꽂아져 있고 옆에서는 인공호흡기만 삑삑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목구멍에 집어넣은 호스로 폐에 있는 가래를 뽑아내는데 아버지가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 아버지는 한 달 반 동안 중환자실에 계셨다. 지금은 일반 병동에 입원해서 재활치료를 받고 계시는 중이다.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중간에 목절개수술도 했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계신다. 재활 치료도 잘 받으시고 계시고 그렇다고 경제적인 문제까지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버지가 잘 버텨주시고 내 옆에 있어주시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아버지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하루빨리 건강 해지는 것뿐이다. 아직 나는 아버지에게 해준 것이 없다. 평생 받은 기억 밖에는 없다. 그러니까는 내가 아버지에게 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 때까지 내 옆에 계셔 주셨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버지와 같이 벚 꽃을 보러 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지금을 살고 있다.

<제주시 연동 이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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