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니치 드래곤스 라는 구단
쥬니치 드래곤스 라는 구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등번호 '20번', 쥬니치 최고의 투수 '선동렬'과 '호시노'

쥬니치 드래곤스(中日ドラゴンズ) Chunichi Dragons

본거지 :  나고야(名古屋)를 중심으로한 아이치겐(愛知縣)및 중부일본(中部日本)지방, (일본의 중부지방이라면, 東京과 오사까 사이에 있는 지방을 말함) (아이치(愛知)겐 및 일본 중부지방의 중심도시가 나고야) (나고야는 東京, 오사까 다음으로 큰 도시, 나고야는 자동차 산업이 유명)

홈구장 :  나고야 돔

오너기업 : 쥬니치(中日)신문사. 中部 日本 지방을 기반으로 한 신문사. 창단 1936년, 센트럴리그 소속, 리그 우승 7회, 일본 챔피언 2회(2008년시즌 종료까지) 오너기업인 쥬니치(中日)신문은 일본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지방신문이지만, 발행부수 350만부로서, 일본 전국에서 4번째로 많은 발행부수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나고야를 중심으로한 중부지방에서는 구독율이 매우 높고, '중부일본방송' 이라는 TV까지 가지고 있다. 신문사, 방송사를 오너기업으로 하는 프로야구 구단이다. 지역 밀착형으로 성공한 신문, 그 신문을 오너기업으로 성공한 프로야구 구단 이다.

'쥬니치'라 하면 우리 한국선수들과 인연이 많은 구단이다. 선동열(1996년∼99년)선수와 이종범(1998년∼2001년) 선수가 있었으며, 이상훈(일본에서 선수등록 이름은 '삼손·리', 1998년∼99년) 선수, 2009년 현재 이병규(2007년∼) 선수가 있다.

쥬니치는, 등번호 20번은 투수중 가장 뛰어난 선수만 부여 받는 번호이다. 지금까지 8명의 선수만 부여 받았다. 8명중 한명이 선동열 선수였으며, 또 한명은 북경올림픽 일본 감독 호시노(星野)씨 선수시절 이었다.

선동열 선수는 1997년 일본에서 최다 세이브를 올려,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투수실력을 발휘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선수는 선동열 선수 보다 이상훈 선수였다. '삼손·리' 라는 어줍지 않은 이름에 어줍지 않은 머리를 가지고 등판해서 어지간히 화제를 모았다. 잘했다 하기보다 잘 얻어맞아다는 인상이 깊다.

'쥬니찌' 라고 하면, 역시 북경올림픽 일본 감독 호시노 센이찌(星野 仙一)씨 이다. 1947년생 투수, 메이지(明治)대학 졸업후, 1968년 쥬니치에 입단했다. 선수로서는 146승 121패를 기록, 그리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쟈이안트 킬러'로서 더 유명했다.

그후 두번에 걸쳐 주니치의 감독(통산 11년간)을 역임했지만, 첫번째 감독때인 1988년에 리그 우승, 두번째 감독때인 1999년에 리그 우승을 했다. 그후 한신 감독을 2년간에 리그 우승(2003년) 을 한번 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일본 챔피언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3번이나 리그 우승을 하면서 일본 시리즈(7전 4선승이 일본 챔피언)에서 일본 챔피언이 못된 이유는 단기 결전에서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일본에서 그는 인기가 좋다. 시원한 마스크에 시원시원한 목소리, 또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말 다하는 사나이다운 성격이 그의 인기를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경올림픽때 그를 감독으로 올린 것은 실력보다는 인기가 있어서 였다. 인기있는 그가 감독이 되면, 스폰서가 붙기 쉽다는 상업성 때문이었다. 결국은 한국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노메달로 끝났다. 노메달로 끝난 이유중에 역시 단기 결전에 약한 것이다라는 하마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그는 쥬니치및, 쥬니치 본거지 나오야 지방에서는 아직도 하느님과 같은 존재이다. 또 야구인으로서 일본전국에서 꾸준한 인기가 있다. '쥬니찌' 하면, 생각나는 선수가 있다. 현재 쥬니치 감독을 하고 있는 오치아이 히로미쯔(落合 博滿)씨 이다.1953年생으로 내야수였다. 타격의 천재이다.

타격 3관왕(수위타자, 홈런왕, 타점왕)을 3번이나 했다. 타격 3관왕을 3번 한 선수는 오치아이 밖에 없다. 고등학교때 야구부에 들어갔으나 연습이 싫다고 야구부를 그만둔다. 시합이 가까워 지면, 야구부선수들이 그를 설득해서 시합에 나가게 된다. 연습없이 시합에 나가도 그는 4번을 쳤다.

대학에 입학, 야구부에 들어갔으나 이젠 선배들 잔심부름이 싫다고 야구를 그만둔다. 고향에 돌아간 후 이번엔 프로볼링선수가 되겠다고 했으나 좌절, 빌빌거리게 된다. 이를 본 고교때 은사의 소개로 실업팀에 입단, 여기서 실력을 발휘, 일본 아마츄어 대표팀에 발탁 된다.

그후 롯데에 드래프트 3순위로 입단했다. '드래프트 3순위'이니 그리 좋은 평가는 아니었다. 1979년부터 1998년까지 20년간, 롯데, 쥬니치, 쟈이안트, 닛폰햄, 4구단을 돌면서, 3관왕을 3번, 일본 최초 1억엔 선수가 되는등, 많은 화제도 만든 선수였다.

거만하고 건방진 발언및 행동으로 야구계 중진및 선배들로 부터 많은 미움을 받기도 했다. '연습은 재능이 없는 놈들이 하는 짓'이란 발언을 해서 중진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일반사람들의 평가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싫어하는 이유는 거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니찌 감독이 된 2004년 이후, 눈물도 보이고, 성적이 나쁘면 머리를 삭발하는 등, 선수시절과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치아이 감독을 데려온 2004년 이후, 계속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좋은 선수들이 있어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건지, 감독의 수완이 좋아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보고 싶다.<제주의소리>

<신재경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