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의 일본야구 A to Z] 히로시마 카프

히로시마 카프라는 구단
정식명칭: 히로시마 토요 카프(ひろしまとうようカ―プ, 廣島東洋カ―プ)
Hiroshima Toyo Carp
히로시마는 도시 이름, 히로시마(廣島)현의 중심도시 히로시마(廣島)시

히로시마(廣島)시는 2차대전 말기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
'토요' 는 '東洋'의 일본어 읽기. 東洋工業(현재, 자동차 메이커 '마쓰다')은 구단의 최대 주식보유, 주식만 보유하고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음.
프로야구 구단 유일의 오너기업이 없는 구단. 야구 비지니스만으로 구단 운영 및 경영.
카프(Carp)는 잉어, 히로시마는 잉어 산지로 유명.
히로시마 카프는 빨간색으로 유명. 헬멧 및 벨트 등 유니폼 이외는 모두 빨간색으로 통일. 빨간색은 '불타는 구단'를 의미
창단 1950년. 센트럴리그 소속. 리그 우승 6회, 일본 챔피언 3회(2008년 시즌종료까지)

'히로시마 카프' 는 오너기업 없이 오직 야구 비지니스만으로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구단이다. 오너기업이 없기 때문에 경영난에 봉착해 구단 해산 혹은 매각 등의 위기 때 히로시마 시민들이 모금활동을 벌, 구단을 지금까지 존속시켜 놓았다. 지역주민들로 부터 사랑이 두터운 구단이다.

히로시마의 중심기업, 마쓰다자동차 및 회장 개인이 필두 주주로 주식은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다.

'히로시마' 라고 하면 매우 얌전하고 확실한 경기를 하는 구단이라는 느낌이다. 특출한 스타선수도 없고, FA(프리 에이전트)로 유명선수를 데려 오지도 않는다. FA로선수를 데려오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명도 없다. 오히려 FA로 유명선수를 팔아서, 그 돈으로 구단 경영에 보탬을 하고 있다.

또 자기 구단에서 FA를 선언한 선수를 가지 말라고 잡지 않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FA로 선수가 오고 갈 때는 선수연봉이 올라가고, 올라간 연봉만큼 구단에 압박을 주는 것이기에 오너기업이 없는 시민구단, 또 자금력 없는 구단이 살아남는 방책이다.

꾸준히 좋은 선수를 만들어 내는 구단으로, 또 연습을 혹독하게 시키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자금에 한계가 있기에 아마추어 유명선수를 웃돈을 주면서 데려 올 수가 없다.

평범한 선수를 입단시켜 실력 있는 선수로 만들어, FA를 선언 해 다른 구단으로 간다면 미련 없이 보낸다. 데려가는 구단에서 이전 구단에 금전보상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돈이 구단운영에 큰 자금이 되는 것이다. 싸게 선수를 사들여서 좋은 선수를 만들려면 연습밖에 없다.

FA제도 이적금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구단이다. 유명 몇 구단 이외에는 몇 십억엔의 적자를 내고 있지만, 히로시마는 흑자를 내고 있는 구단이다. FA 이적금이 흑자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다.

현역 선수 중에서 최고 선수로 칭송 받고 있는 한신의 가네모토(金本) 선수는 히로시마에서 FA를 선언, 한신으로 왔다. 한신에서는 히로시마에 연봉의 120%의 금전보상을 해 주었다. 이적 후 히로시마에서 첫 시합에 임한 가네모토는 관중으로 부터 배신자라는 욕설을 각오하고 타석에 들어섰지만, 오히려 가네모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준 것이다. 금전보상으로 구단을 윤택하게 해준 공로자라는 의미의 팬들로 부터 박수인 것이다.

영구결번 번호는 두 선수가 있다.

3번 기누가사 사치오(衣笠祥雄, 1988年부터)
8번 야마모토 고우지(山本浩二, 1987年부터)

기누가사 선수는 1947年생으로 내야수 이다. 1965년부터 1987년까지 선수를 했으며, 혼혈이다. 2543안타(역대 5위)를 기록 야구전당에 들어가 있다. 그는 안타를 많이 친 선수로도 유명하지만, 2215시합 연속출장(1970년터 1987년까지) 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일본 정부로 부터 '국민영예상'을 받았다.

야마모토 선수는 1946년생으로 외야수이다. 1969년부터 1986년까지 선수를 했다. 히로시마에서 출생해서 히로시마에서 성장했다. 대학 때만 東京에 갔지만(호세이(法政)대학) 졸업후 바로 히로시마에 입단, 초지일관 히로시마 인간이다. 특히 장타로 유명, 536홈런은 역대4위의 대기록이며, 5년간 40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야구전당에 들어가 있다. 선수 은퇴 후 2번에 거쳐 10년간 감독을 했으며, 히로시마에서는 영웅이다.

북경 올림픽 호시노 감독의 아주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에서 북경 올림픽 때 호시노 감독 밑에서 코치를 했다. 올림픽 전에 호시노 감독 및 그 코치들을 '사이좋은 친구들의 모임' 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호시노 감독이 '사이가 좋아서 뭐가 나쁘냐?'라는 말로 밀어 붙였다. 북경에서 돌아와서 호시노 감독과 같이 쥐구멍찾기에 바빴다.

특출한 선수가 없기에 매스컴에 화제를 모으는 선수도 그리 없다. 확실한 경기를 해야하기에 번트를 다용하는 등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는 소리도 있다. 2000년 후반에 들어서 팀 성적이 별로 이지만, 1990년대는 매년 스타선수들의 집단으로 유명한 자이언트와 우승경쟁을 매년 벌인 구단이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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