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⑦] 화훼농가들, 해군기지의 가장 큰 피해자들

▲ 강정마을 중덕 해안가에는 꽃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모여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할 주민들은 이 화훼농가들이다. ⓒ 장태욱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이다. 도청 앞 1인 시위 순번을 맞은 김종환씨, 고성림씨가 새벽 7시 30분경 마을에서 도청을 향해 출발했다. 이들이 도청 정문 앞에 도착한 시간은 공무원들이 출근도 하기 전인 오전 8시 30분경이다.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필자의 인사에 김종환씨가 웃음으로 화답하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내일은 제주도 일주 차량시위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아마 차량시위가 끝나면 도청으로 집결할 걸요."

 

▲ 공무원들이 출근도 하기 전부터 도청 앞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1인 시위를 시작한다. ⓒ 장태욱
 

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두 분과 인사를 나눈 후 다시 강정마을로 들어갔다. 아침에 화훼농가들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강정마을의 화훼농원은 대부분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해군부지로 수용될 중덕 해안가에 밀집해 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생계에 피해를 입게 될 주민들이 화훼농가들이라고 한다.

▲ 중덕해안이 올레코스에 포함되면서 이곳에 올레꾼들이 모여들었다. ⓒ 장태욱

화훼농가, 해군기지로 가장 먼저 피해보는 사람들

중덕 해안가로 내려다가보니 여기저기서 올레꾼들이 보였다. 서귀포 시청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마침 중덕해안길이 올렛길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첫날이라고 했다. 지난 번 강동균 마을회장과 서명숙 이사장의 회동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 : 피디수첩-'제주올레' 덕분에 모처럼 환하게 웃었네)

마을회의 소개로 윤여문(57)씨를 찾았다. 윤여문씨는 중덕 해안에서 3000평 농지를 임대받아 백합을 재배하는 화훼 전업농이다. 윤씨에게 일단 화훼농사, 그 중에서도 백합농사의 수익성에 대해 들었다.

▲ 중덕해안으로 가는 올레길 주변에 화훼농원들이 밀집되어 있다. ⓒ 장태욱
 

백합 농사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것이 구근(뿌리) 구입비라고 한다. 구근 1개의 수입 가격이 500~550원에 이르고, 이 뿌리에서 백합 한 줄기를 키워 수출시장에 내놓으면 농가가 받을 수 있는 돈이 1000원에 이른다고 한다. 기름값, 비료값, 인건비 등을 공제하면 한 해 수확에서 얻는 수익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래도 농가에 수익 발생이 가능한 것은 한 번 구입한 구근으로 두 해까지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해가 넘으면 뿌리가 박테리아에 노출되어 퇴화되고 만다.

윤씨가 3000평 규모의 화훼농업에 올해 투자한 돈은 구근 구입비가 약 1억 원 정도이고, 나머지 영농비가 기름 값, 비료 값, 인건비 등을 합해 3500만원에 이른다고 했다.

구근을 수입하면 첫해는 질 좋은 백합이 다량 수확되므로, 수출을 통해 구근 구입할 때 지불한 돈을 만회할 수 있다고 한다. 본격적인 수입은 다음해 수확 때 얻어지지만 첫해 수확을 하고 난 뿌리에서는 백합이 꽃을 잘 피우지 못하기 때문에 수확량은 전년도의 6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백합 농가의 수익이란 실제로 이 두 번째 수확한 백합의 생산량과 가격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윤여문씨 중덕 해안에서 백합을 재배하고 있다. 3000평 정도를 임대받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 중 1200평 정도가 해군기지에 수용될 예정이다. ⓒ 장태욱
 

국내 최적 화훼단지에 해군기지를 짓는다니

윤씨는 그간 부인과 함께 꽃을 재배하면서 세 딸을 키우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 일대가 해군기지 예정지로 결정되면서 윤씨가 경작하는 땅 중 1200평이 군사기지로 수용되게 생겼다. 그 1200평 땅 주인은 재일교포인데, 평소에는 주인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임대료만 지불하면 마음 편하게 농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지주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곳을 떠나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땅은 지주의 것이지만 이곳에 하우스 시설은 제가 돈 들여서 한 겁니다. 정부에서는 보상규정대로 시설 취득가와 시설 이주비 중 낮은 가격을 보상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 농가는 쫓겨나다시피 짐을 싸야 할 판입니다."

정부에서 시설 이주비를 주면 그 돈으로 다른 곳에 가서 화훼시설하고, 농사를 지으면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윤씨는 절대 불가능한 얘기라고 일축한다.

"이 중덕 해안의 입지와 백합의 생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강정해안과 월평해안은 일 년 내내 서리가 내리지 않는 곳입니다. 겨울에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보다도 온도가 보통 2도에서 5도 정도 높은 곳이에요. 만약 그 온도를 난방으로 높이려고 하면 기름 값이 얼마나 드는지 압니까? 제주도에 이렇게 따뜻한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윤씨가 중덕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가 기온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일대는 과거 논이었던 땅입니다. 제주의 다른 지역은 화산회토인 반면 이곳은 거의 진흙에 가까운 땅이에요. 과거에도 마늘의 생육조건과 꼭 맞아 마늘농사가 잘 되던 땅입니다. 그런데 마늘과 백합이 같은 과에 속해요. 백합이 자라기에 제주도에 이만한 땅이 없습니다. 정부에서 우리에게 대체 농지를 확보해 줄 리도 없지만,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주하라는 것은 화훼농사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윤여문씨와 가까운 곳에서 백합농사를 짓는 윤용필(55)씨도 만났다. 윤용필씨는 제주 시내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화훼가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직장에 사표를 쓰고 귀향해서 10년 가까이 농사를 지어왔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슬하에 1남 2녀가 있다.

직장 사표 쓰고 후회 없이 꽃 재배에 전념했는데

윤용필씨는 현재 2000평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 중 600평이 해군기지에 수용될 처지다. 그런데 그 수용되는 땅의 방향이 비닐하우스 방향과 나란하지 않고, 하우스 시설을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지를 예정이다. 남은 하우스 시설마저도 못쓰게 되었다. 윤용필씨는 이대로라면 자신도 농사를 포기해야 할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 윤용필씨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귀향해서 백합을 2000평 정도 재배하고 있다. 그런데 해군기지로 화훼농사를 포기해야 할 입장이다. ⓒ 장태욱
 

"화훼가 제 적성에 잘 맞습니다. 아직까지 직장을 그만 둔 것을 후회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화훼는 다른 농사와 달라 자본회수도 빨라서 2000평 화훼농사 수입도 직장생활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은 1000평 남짓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입장인데, 그 정도 규모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윤용필씨는 아직도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정부나 도 당국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정부나 도 당국이 부득이 군사기지를 지어야 할 상황이라면 와서 당당하게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주민들의 입장을 들어야 할 거 아닙니까?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도 듣고, 반대하지 않게 설득할 방안도 찾고, 우리 주민들 생활에 피해를 최소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놓고 사업을 추진해야죠. 그럴 방안이 없으면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해군기지가 들어오기도 전에 일터에서 내몰린 농가도 있었다. 현미자(50)씨네 가족이다.

현씨는 남편과 더불어 여러 필지에 나눠 총 2500평 규모로 백합을 재배해왔다. 그런데 그중 세 필지 1500평 규모가 해군기지 예정지로 결정 난 것이다. 그런데 그 중 300평 규모의 한 필지는 임대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땅 주인이 재계약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미 해군기지 피해를 받은 농가도

현씨는 지주가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는 이유가 해군기지가 들어섰을 때 지상권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해군기지로 인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농가들에게 영농손실보상금이 지급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사를 짓지 않던 지주들이 그 보상금이 탐이 나서 임대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 현미자씨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토지주가 임대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 장태욱
 

현씨는 계약이 종료되어 재임대를 받지 못한 300평 외에도 900평 규모의 땅이 또 임대기간이 만료되었다. 이마저도 농사를 못짓게 될까봐 속이 타고 있다고 했다.

강정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부가 필자에게 전한 말이다.

"당신들에게 평생 일한 일터에서 나가라고 하면, 흔쾌히 나갈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우리 농부들은 농사 말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디로 가서 뭘 하겠습니까?  이제라도 농민들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제주도와 정부당국자들이 이제라도 이 농민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고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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