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시장, 진화할 뿐 금지 안돼

우리나라의 ‘K’종금사가 이끄는 집단(컨소시엄)이 뉴욕에 있는 AIG 본사 건물 두채를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다. 그 중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빌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건물은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시대에 고딕풍으로 지어진 건축물로서 맨해튼 다운타운에서는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계약 가격은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정상 가격의 몇분의 일에 불과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자기의 얼굴과 다름없는 본사 건물을 헐 값에 그것도 극동의 작은 은행에 팔아야만 했던 AIG의 문제는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본다.

첫째, AIG는 크레티트 디폴트 스왑(CDS)이라는 상품을 팔아 막대한 스왑 수수료를 챙기면서 거기에 내재된 리스크를 보수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AIG의 갑작스런 자금 경색도 CDS 때문이었다. 금융파생상품 딜러들 사이에서는 계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매일의 가격변동에 따라 담보금액을 가감하여 적립하여야 하는 시스템, 일명 마진 콜 제도가 지켜지고 있는데 신용등급이 AAA인 기관만은 이 담보금 적립을 면제받는다.

AIG 몰락시킨 디폴트 스왑

그런데 작년 9월 신용평가사들이 AIG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당시 4000억달러가 넘는 전체 계약금에 대하여 현금 담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AIG는 보험회사로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상장회사들을 위한 보험을 제공하고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게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필요한 현금은 즉각적으로 지원되었다.

지금까지 AIG에 지원된 금액은 1800억달러이다. 이 중에 AIG가 크레디트 디폴트 스왑 결제, 다시 말해 보험금 지급을 위해 지출한 금액만 535억 달러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스왑 계약의 동기가 순수한 보험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투기 목적이었는지는 일체 가리지 않았다. 계약서 어디에도 순수 보험 목적만을 담보한다는 조항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둘째, 성실성의 문제도 있었다. 정부가 고심 끝에 긴급 자금지원을 한다는 보도가 있을 때마다 막상 AIG의 임직원들은 이런 저런 내용의 호화판 향연을 즐기는가 하면 한해 993억달러의 기록적인 적자경영을 하고서도 금년 봄 무려 12억달러의 보너스를 임직원들에게 뿌렸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각층의 엄청난 분노를 야기하였다. 성난 시민들에게 폭행 당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최근에는 회사 뱃지 달지 말기, 밤에는 두명 이상씩 다니기 등을 회사가 직원들에게 권하는 지경이다.

AIG의 사례를 계기로 ‘국제 스왑 및 파생상품 협회’(ISDA)는 몇 가지 중요한 시장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네이키드 스왑(naked CDS)에 대한 제재다. 위험이나 손해에 노출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순전히 어느 회사가 망하는 것을 바라면서 돈을 거는 행위를 막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험에 가입해야 할만한 ‘실수요’가 있는, 즉 어느 회사에 돈을 빌려주었던가 그 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산 고객들만 이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계약 시마다 이를 확인하는 것이 번거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사후에 부도가 발생하더라도 보험가입자가 실수요를 입증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 3월에는 그 동안 논의만 했던 중앙결제시스템 도입이 성사되었다. 장외시장에서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쌍방거래는 상대방의 계약불이행 위험에 항상 노출된다. 그래서 모든 CDS 거래에 있어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 중앙결제회사(Central Clearing House)가 끼어들어 양쪽의 거래상대방이 되어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시장, 진화할 뿐 금지 안돼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꾼조차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CDS 상품에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거래를 원하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있는 한 금지했다고 막아지지는 않는다. 모든 생명체가 진화하듯이 시장도 진화하는 법이다. 도이체방크의 아타나시오스 디플라스 전무는 “10년 걸릴 변화가 최근 수개월 동안에 CDS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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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18일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소비자 보호 및 금융감독체제 개혁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슨 내용이 담길지 궁금하다. 차제에 금융산업 임직원들의 성실성 그리고 리스크에 대한 보수주의도 함께 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맨하탄 다운타운의 랜드마크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빌딩을 차지할 우리나라 금융기관에게도 적용하고 싶은 주문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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