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영 칼럼] 제주도의회 스스로 위상과 권위 세울 때

지난 2005년 가을 특별자치도 추진과정에서 '영리병원 도입논란'이 우리 제주에서 촉발된 지 햇수로 5년째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벌써 5년째 주민 건강권을 지켜내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영리병원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의료민영화 추진은 더욱 집요해지고 있다.

이번에는 민의의 전당이라는 도의회가 영리병원도입의 방패막이로 나서는 모양새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4단계 제도개선안 중 영리병원(투자개방형병원) 추진 안에 대하여 최소한의 도민공론화도 없이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한 정책사례의 전형

작년 7월 도지사의 영리병원 포기선언 이후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그때 이후 도가 한 일이란 영리병원에 찬성하는 의료계인사를 초빙하여 관제설명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한 것, 도민의 혈세를 들여 찬성론 위주의 왜곡된 사실만을 담은 홍보물을 대량으로 배포한 것뿐이다. 합리적인 공론화 노력은 철저하게 외면되었다.

정말로 불가사의 한 일이 있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영리병원이 가져다 준다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실증적 연구 자료를 김태환 도정은 한 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설득력 있는 자료가 있다면 왜 영리병원 논란이 갈수록 커지겠는가.

“(외국영리병원유치는 경제 특구나 제주도 역시) 현재로서는 장사가 잘 안될 것 같으니까 물어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말이다. 현실성 없고 부작용만 가져올 정책이라는 반대를 무시하고 2004년부터 모든 규제를 풀었는데 유치 성공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전형적인 정책실패의 사례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안이한 도정당국자들의 인식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장사가 되고 투자가치가 있다면 왜 안 들어오겠는가. 5년 전 ‘동북아의 의료허브 제주도’라는 장밋빛 환상에 가까운 경제적 효과를 주장했던 김태환 도정의 핵심 인사들은 여전히 똑같은 논리로 국내 영리병원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지난 7월 10일 도의회 복지안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나온 도 당국자들의 답변을 보면 영리병원정책의 위험성에 대한 안이한 인식수준이 숨을 막히게 할 정도다.

“교육, 의료는 공공성이 높은 문제로 국가 기강을 흔들 수 있다. 때문에 전국으로의 허용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오인택 특별자치도 추진단장의 말이다. 영리병원허용이 국가기강을 흔들 사안인 것은 알고 있기는 한 것인가. 영리병원허용으로 제주도의 기강이 제주도민의 건강권이 흔들리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인가. 교육으로 치면 작년 3단계 제도개선 과제에서 삭제된 제주 국제학교의 과실송금허용 조항이 채 몇 달도 안 되어 인천 등 경제특구에서 허용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리병원 문제는 경제특구에서만이라도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바로 십여 일 전인 6월 29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의료민영화 정책의 병원지주회사 설립허용 입법안 등 세부적으로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단지 국민적 저항을 최소화시키고자 제주도에서 그 물꼬를 트고자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 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건강보험의 현실도 모르고 정책이 가져올 여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말이다. 우리의 건강보험은 너무도 취약하다. 겨우겨우 적자를 면하면서도 건강보험 보장성은 60%대에 머물러 있다. 영리병원을 허용하여 병원들의 수익성추구가 가속화될 경우 건강보험재정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멕시코의 의료제도가 그렇게 해서 망했다. 정형근 건강보험 이사장의 “영리병원은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는 발언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암환자에 대해 지나치다 싶은 보험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보험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의사협회 회장의 말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과 공격이 얼마나 높고 강한 지를 도 당국자들은 알아야 한다. 오죽하면 전재희 장관이 의사회장의 당연지정제 폐지 헌법소원에 대해 “그들이 건강보험 환자에 대해 어떻게 대할 지 뻔한 것 아닙니까.”라고 흥분 했겠는가.

제주도민의 소중한 바람을 올바로 읽어야

1971년 본격적인 의료민영화 허용 이후 미국사회가 서서히 의료재앙국으로 전락하게 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보건의료 정책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 훨씬 빨리 미국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 한다. OECD국가 중 최고로 높은, 90%에 달하는 민간의료기관에 의해 의료의 영리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료비의 증가 속도는 미국 다음으로 높다.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회적 법률적 실체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개인 소유의 병원들이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흐름이 시간을 두고 사회적 힘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미국이 거쳐 왔던 과정인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아직도 절반에 이르는 도민들이 영리병원(투자개방형병원)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또한 영리병원에 찬성하는 도민들의 절반 이상이 그 이유를 의료서비스 향상을 꼽고 있다. 이러한 도민들의 바람은 제주대학교 병원을 대학병원다운 병원으로 만드는 것, 서귀포의료원을 지역 거점병원으로 지원 육성하는 것으로 상당부분 해결된다.

도의회에 호소한다.

지난 1, 2, 3단계 제도개선과제에 영리병원허용 관련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적이 없다. 예외없이 국회에서의 심도있는 논의 과정에서 모두 다 삭제되었다.

▲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치열한 도민적 쟁점사항을 4단계 제도개선과제에 끼워 넣어 논란을 피해가려는 김태환 도정의 편법에 도의회가 장단을 맞출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도의회가 나서서 영리병원에 대한 도정의 일방적 여론몰이 행태를 시정하고 올바른 공론화의 절차를 밟을 좋은 기회로 전환시키기를 제안한다. 바로 그 길이 도의회의 위상과 권위를 스스로 세우는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에게는 시간적인 여유가 얼마든지 있다. 적어도 영리병원 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도민들에게는 그런 합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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