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긴급제안(4)]학운위원들의 양심선언을 기대한다

[제주공고 역사교사 이영권]

배회하는 유령

'하나의 유령이 제주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교육비리 척결이라는 유령이.'

춥다. 나이 탓만은 아니다. 지갑이 얇아지기 시작한 뒤로는 더욱 추위를 느낀다. 그래서 그런가 창밖에 나리는 눈도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런데 나보다 더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그건 바로 유령 때문이다. 김태혁 교육감과 관련된 각종 비리 의혹이 일 때, 그 때 배회했던 유령보다 더 센 귀기(鬼氣)의 유령이 떠돌고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교육감 돈선거 이후 그 유령이 배회가 더욱 사람들을 오싹하게 하는 모양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추위를 타는 건 아니다. 눈 위를 구르는 강아지와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추위도 모르고 잘만 논다. 마찬가지다. 아이들 마냥 법 없이 살아갈 보통 사람들은 그리 추울 것도 없다. 유령에 전율할 필요도 없다. 아니 어쩌면 유령이 반갑다.

도대체 어떤 유령이기에? 교육비리 척결, 교육다운 교육 만들기, 더 나아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기, 이게 바로 그 유령이다.

그게 어찌 유령이냐고? 유령 맞다. 인간보다 돈을 숭배하는 사회에선 이게 유령이 된다. 가치관이 물구나무를 섰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상적 의식이 유령으로 둔갑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오싹한 유령 말이다.

본디 유령은 아무 까닭 없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연이 있다. 맺힌 한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유령을 탓할 일이 아니다. 유령을 부른 인간을 단죄함이 옳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그렇게 가야한다. 인간이 제 할 일 제대로 하면 유령도 사라진다.

특별한 사람,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

작년(2003년)엔 특별했다. 3월 개학을 맞자마자 자발적으로 학운위(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을 맡겠다는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그 머리 아픈, 그리고 어쩌면 선생님들 회식이라도 한 번 시켜 줘야할 처지가 되고 마는, 그런 힘든 일을 자진해서 떠맡겠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감사해라. 참 좋은 현상이다. 자원봉사의 기풍이 넘쳐나게 된 건가.

설마? 물론 그게 아니었다. 바로 오늘의 유령을 불러낸 그 돈선거에 동원될 사람들이 줄을 섰던 것일 뿐이다. 눈을 보면서 즐거워할 천진 난만한 정서를 가진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그 어떤 지위를 원했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알고 보면 허망한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게 뭐 대단한 벼슬이라고.

물론 여기서 모든 학운위원들을 나무라는 건 아니다. 이 점 오해 없길 바란다. 인덕이 있어서 추대된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아무런 사심 없이 위원이 된 사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런 분들에겐 이 글이 누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시 말해 기를 쓰고 학운위원이 되려던 그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니 널리 이해하시고 글을 살펴주길 바란다.

그들은 애당초 목적을 가지고 들어왔다. 학년초부터 그렇게 안달했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 몰골이 이제야 드러난 것이다. 악취를 풍기며 말이다. 짐작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타락한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힌다.

그들도 학부모 아닌가? 자신 스스로가 부패 구조에 묶여 들어가면서 어떻게 학교에서 올바른 교육이 이뤄지길 바랐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들은 올바른 교육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인간을 키우기보단, 정직을 가르치기보단, 상식적인 시민을 길러내기보단, 그저 성적만 올리고 출세를 보장하는 소위 일류대학에 입학을 시키는 것만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이율배반적인 행동들을 취할 수 있었을까?

양심선언을 기대한다

지금 비판은 온통 교육감 후보로 출마했던 4명에게만 몰려있다. 맞다. 그들의 책임은 더 없이 크다. 분명 응분의 벌을 받아야만 한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오를 털어놓고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처럼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같은 학운위원들만의 선거로는 부패구조가 청산되기 어렵다. 약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주민 직선이 옳다.

어쨌든 그건 다음의 과제이고, 당장 해결해야할 것은 이번 돈선거 처리다.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뻔뻔스럽게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판이기에, 이 사건 처리부터 철저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떡국 잡수신 경찰들이 잘 하리라고 믿는다. 범죄 사실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으니 도민의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걸 믿고 또 기대하면서 다시 한 번 격려를 보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선거에 참여했던 학운위원들이다. 상당수의 학운위원들이 최소한 식사 대접에서부터 현금 수수에 이르기까지 관련되어 있다는 게 통설이다.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부패구조에 몸을 담갔다는 말이다.

이제는 이들 차례다. 수사가 확대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 누구나 실수는 있는 법이다. 분명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얼떨결에 밥 한 번 먹은 것, 어쩌다가 손에 봉투 하나 쥐게 된 것, 떳떳한 일은 아니되,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다. 진정한 용기는 이럴 때 발휘되어야 한다. 이 정도가 무슨 죄냐고, 관행 아니냐고 우기는 건 용기가 아니라 객기일 뿐이다.

이들의 양심선언은 중요하다. 윗대가리 몇몇 물갈이한다고 사회가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부터 변화가 일어야 한다. 그래가 판이 바뀐다. 시간이 넉넉지 않다. 기회가 그리 크게 널려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 아이들을 생각하고 이 사회가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사람이라면 이제라도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 희망은 언제나 어떤 처지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개인의 작은 실천이 사회 전체를 밝게 비추는 등불로 타오를 수도 있다.
참된 용기를 가진 학운위원들의 양심선언을 기대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열심히 외쳤던 구호를 꺼내 다시 한번 힘껏 소리쳐 보자.

"어둠 속에 떨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

<이영권의 직설화법>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