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영 칼럼] 지금이라도 '특위' 구성해 득실 냉정히 따져야

영리병원 허용을 포함한 4단계 제도개선 정책추진 과제 동의안이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 통과 되었다. 상임위 심의과정까지 감안하더라도 불과 10여일 만에 초고속으로 처리된 것이다. 녹색성장 산업과 영리병원, 내국인카지노 등 완전히 성격이 다른 사안을 단일안으로 처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비판도 무시되었다. 도의회 역사에 있어서 수치이자 굴욕으로 기록될 일이다.

제주도정의 일방적 여론몰이로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도의회가 나서서 이를  바로잡아 공론화에 나서주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너무도 참담했다. 상임위 논의에서부터 도의원들은 너무도 비겁했다. 정책질의 과정에서 의원들은 너무도 똑똑했다. 영리병원의 부작용과 정책대안에 대한 송곳 같은 질의는 도 당국자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그들의 문제제기대로라면 최소한 영리병원 허용안 만이라도 부결되거나 보류되어야 했다.

상임위 심의를 전후로 의원들은 불과 하루사이에 소신을 꺾어버렸다.
“ 당론이었나?”
“그렇다, ... 아니 당론은 아니다. 그렇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도의원들의 모습이 너무도 궁색하다. 어느 중진의원은 아예 회의에 참석조차하지 않았다. 나중에 비난을 피할 변명거리라도 필요했는지 모른지만 이건 더 나쁘다.

# 법안 '심의회피' 한 상임위....'무기명 투표'로 제도의 벽에 숨어버린 도의회

사실 상 해당 상임위라 할 수 있는 문광위는 아예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심의조차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굳이 나서서 매 맞을 이유가 없다는 태도다. 극소수의 의원을 제외한다면 제주도의회의원들은 7월21일의 본회의에서도 무기명 투표라는 제도의 벽 뒤로 숨어버렸다. 영리병원 허용을 대놓고 찬성하기가 그렇게 두려웠는가. 사실상 당론으로 찬성의견을 정해놓고도 당론이 아니라고 도망가는 여당의 모습은 안쓰럽기 까지 하다.  “영리학교도 찬성했는데 영리병원을 반대하기가 명분이 안 선다.”는 어느 야당의원의 변명 앞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그간 제주도정의 들러리, 일방적 정책 추진의 거수기라는 언론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민의의 전당인 의회에 대해 이런 언사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왜 당당하게 정책적 소신을 밝히지 못하는가. 왜 잘못된 심의절차에 도 당국의 편법에 한마디도 못하는가. 앞에서 비판하면서 뒤로는 행정 권력의 눈치를 보고 지역구민의 눈치나 살피면서 도민들의 뒤통수를 치는 행태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전국의 지방의회 중에서 그래도 잘한다는 특별자치도의회의 모습이 이 정도라면 너무도 초라하지 않은가.

# "영리병원은 국가기강 흔들 사안"...도당국조차 인정한 '국민건강권 흔드는' 위험한 게임  

어찌되었든 김태환지사의 독선으로 점철된 영리병원 정책 추진은 도의회 동의라는 명분으로 정부에 제출될 것이다. 그러나 금번 영리병원 허용 동의안은 작년 도민 여론에 의해 포기되었던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 도민공론화절차는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따라서 도민사회의 비판의견 역시 살아있고 유효하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 내에서의 법안 성안 과정을 예의 주시할 일이다.

국회에서의 논의과정은 또 다른 문제이다. 지난 1,2,3단계 제도개선 과정에서 영리병원 관련 조항은 모두 삭제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감히 말한다면 “국민건강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영리병원 허용은 검토할 수 있는 사안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당국자가 실토하였듯이 “영리병원 허용은 국가의 기강을 흔들 사안”이다. 미디어 관련법 파동으로 국회가 요동치고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은  아마도 그 이상의 국민적 저항을 초래할 사안일 수 있다. 도의회가 동의했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지나친 의료의 영리화로 고통 받고 있다. 집안에 한사람이라도 암이나 중병을 걸려보면 그 무서운 현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건강보험이 있으니 괜찮다는 사람은 너무도 현실을 모르고 있다.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OECD국가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다. 한 달 수 백 만원에 달하는 진료비 앞에서 좌절하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의 건강보험은 사실 반쪽짜리도 못되는 보험인 것이다.

 “의사도 국민인데, 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를 보고 싶으면 보고, 보고 싶지 않으면 안보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 우수한 병원에 한해서 30%만이라도 건강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환자를 보면 이익을 남길 수 있는데 아쉽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한다는 논리는 좌파 이데올로기라고 공격하는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최근 공식 발언을 보면 영리병원 논쟁이 어디까지 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 도의회, 의료관광 가능성-영리병원 병폐 검토할 '특위' 이제라도 구성해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현재의 제주도민의 의료현실을 체계적으로 진단해야한다. 수도권에는 수천억에서 1조원에 달하는 초호화 대형병원들이 속속 들어서 고급의료서비스를 표방하면서 전국의 환자를 싹쓸이 하는데 왜 지방의 의료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 지 알아보아야 한다. 제주도의 처지에서 의료관광이 과연 현실적 정책인지 냉정하게 평가해야한다. 영리병원이 가져올 병폐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해야한다.

▲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제주도정에 대해 그런 실증적 자료를 강력하게 요청해야한다. 제주도정은 그런 설득력 있는 자료를 한 번도 제시해본 적이 없다. 의회가 나서서 이를 책임 있게 검토하고 도민의견을 모아나갈 특위를 구성해야한다. 뒷북친다는 비판에 구애받을 필요 없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도의회의 위상을 추스르고자 한다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는가. 적어도 그래야만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도민들 앞에 설 수 있는 면목이 생기리라 믿는다. /허진영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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