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미마을 계절 음식점에서 해안절경 감상하세요

식탁 삶은 한치 한접시를 주문하면 제공되는 음식들이다. ⓒ 장태욱

경제위기와 함께 이어지는 끝 모를 경기침체에 단 하루도 어깨가 무겁지 않은 날이 없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암담한 소식들과 끝없이 반복되는 건조한 일상은 늘 평화로운 생활로의 회귀를 꿈꾸게 한다. 고단한 삶 가운데서 삶을 유지시켜주는 위안이 있다면 그것은 고향의 들녘, 바다, 옛 친구들이다.

고향 위미마을에 가면 500여 년 전 마을이 만들어질 당시부터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앞개 포구가 있다. 현대식 방파제가 지어져 큰 항구로 거듭난 이후에도 앞개 포구는 방파제 안에서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앞개 포구 초저녁 어둠이 내릴 무렵 위미마을 앞개 포구의 모습이다.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며 며칠 째 초저녁 무렵에 이 포구를 찾고 있다. ⓒ 장태욱

 
한라산 저녁 한라산의 정경이다. 위미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바다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정경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 장태욱
 

앞개의 동남쪽 해안에는 조배머들코지가 있다. 조배머들코지는 구실잣밤나무(조배), 돌무더기(머들), 곶(코지) 등을 지칭하는 제주방언들이 모여 만들어진 토종 지명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곳에는 돌무더기 동산 위에 천연 구실잣밤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숲 동산 인근에 바닷물 들고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배머들코지가 바다로 돌출된 곳에는 과거에 큰 바위가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과거, 주민들은 마을의 정기가 그 바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강토의 지맥을 끊기 위해 혈안이었던 일경의 사주를 받은 재력가가 그 바위를 부수고 말았다.

계절 음식점 조배머들코지 동쪽에 계절 음식점이 열렸다. 천막 뒤에 보이는 바위가 조배머들 바위다. ⓒ 장태욱
 

그러다가 10년 전 쯤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 바위를 복원해서 세웠다. 조배머들코지는 고단한 삶 가운데서 주민들에게 위로를 주는 정신적 지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곳에 항구가 크게 만들어지고, 부대로 어선 접안시설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매립공사가 진행되면서 바닷물이 드나들던 조배머들코지는 육지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구실잣밤나무 그늘에서 바위 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낚시를 하던 시절을 추억하는 주민들이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대목이다.

 

천막 날씨가 궂은 날에는 손님들이 천막 안으로 모여든다. ⓒ 장태욱
 

한 달 전 쯤 여름방학을 맞아 고등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위미2리 마을회에서 수학강의를 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훈훈한 인정, 상큼한 바다 내음과 더불어 고향의 어린 학생들과 만날 기회까지 얻게 될 것이니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다. 이 일을 계기로 7월 하순부터 나의 행복한 고향방문을 매일 반복했다.

내게 수업은 저녁 9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나도록 배당되었지만, 저녁 7시 무렵이면 마을에 도착해서 자정을 넘어서야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추억이 서린 고향의 밤바다가 주는 달콤한 유혹을 단 하루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앞개포구를 배회했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조배머들코지 인근에서 바다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이래로 내게 찾아온 가장 행복한 체험이었다.

밤바다 주민들이 이 계절 음식점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밤바다의 황홀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장태욱

그런데 며칠 전부터 조배머들코지 인근에 밤마다 왁자지껄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마을 청년회에서 여름 한철 계절 음식점을 운영하는 까닭이다. 마침, 호텔요리사 경력이 있는 고향 후배가 마을청년회 총무를 맡고 있어서 일이 한층 쉽게 진행되었다고 했다.

마을 이장 직을 맡고 있는 형님이 토종닭 맛을 보고 가라고 권해서 늦은 시각에 계절 음식점이 있는 바닷가로 발길을 돌렸다.

"올해 처음으로 해보는 사업이라서 계절음식점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도 못해. 그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인건비만 나오면 되는 거지. 여기서 난 심부름꾼인데, 손님들이 권하는 술을 자주 마시게 되는데, 일부러 찾아와준 손님들이 권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술맛이 너무 좋더라고. 난, 돈들이지 않고 매일 최고로 맛있는 술을 마시는 셈이지."

청년회장을 맡고 있는 내 친구 고석건의 말이다. 내겐 초등학교에 다닐 적부터 친구인데,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라 장사에 대한 걱정과 부담이 별로 없는 눈치다.  

계절 음식점에서 준비한 음식은 토종닭 백숙, 한치물회, 고등어조림, 고등어회 등이다. 토종닭은 당일 다른 곳에서 사오지만, 해산물은 즉석에서 어부들이 잡아오는 것들을 재료로 한다. 황홀한 밤경치와 더불어 시원한 바람이 음식의 맛을 훨씬 감미롭게 한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사람의 마음까지 편하게 하였는지 자정너머까지 삼삼오오로 이어지는 술자리에 웃음꽃이 시들 줄을 몰랐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손님들 야경을 배경으로 손님들이 돗자리 위에서 술잔을 나누고 있다. ⓒ 장태욱
  
 
고등어 회 한 접시 금방 들어온 고등어로 만든 회 한 접시다. 고소하고 싱싱한게 그 맛을 비할 데가 없다. ⓒ 장태욱
 

분위기에 도취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시계가 벌써 새벽 한시를 알렸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려고 하니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배 한 척이 접안하기 위해 우리가 자리를 펴고 앉은 곳 가까이 접근했다. 자세히 보니, 배에서 나오려는 분은 친구의 아버지다. 인사를 올리고 그 배에 오르니 저녁에 잡힌 싱싱한 한치오징어들이 통에 가득 들어있다.

"한치 싱싱하니 몇 마리 가져다 먹거라."

"힘들게 잡으셨는데 팔아서 용돈 쓰셔야죠."

"먹으려고 잡은 거니, 괜찮다. 어서 가져가라."

마음에 드는 놈으로 골라서 가져가라며 통 속에 있는 한치들을 그물로 걷어 올리셨다. 죄송한 마음을 무릅쓰고 한치 두 마리를 손으로 움켜줬는데, 이놈들이 다리로 내 손등을 붙잡고 조여 왔다. 그런데 그 힘이 얼마나 센지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한치 오징어 바닷가에서 우연히 친구의 아버지를 뵈었다. 한치 오징어 두 마리를 얻어 싱싱한 회 맛을 보았다. ⓒ 장태욱
 

계절 음식점에서 봉사하는 후배에게 부탁했더니 한치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잘게 썰어 접시에 놓아줬다. 계절음식점의 싱싱하고 맛있는 음식들에 고향의 후안 인심까지 덤으로 먹었다.

인정에 취해 매일 밤 귀가시간이 늦어지게 생겼다. 부디 여름이 더디 가길 바랄 뿐이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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