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힘 (2) 김광일 동경한국상공회의소회장

▲ 일본 수도 도쿄의 한국상공회의소 회장선거에서 처음으로 경선으로 뽑힌 제주출신 김광일 회장. 그가 부모로부터 항상 가르침을 받았던 말은 '조국은 한국, 고향은 제주'였다. ⓒ제주의소리

지난 6월17일 동경한국상공회의소 사무실이 있는 도쿄 신주쿠 아스카 신용조합본점 회의실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동경한국상공회의소 역사상 처음으로 회장을 경선으로 뽑는 선거가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수도 동경 한국상공회의소 수장을 경선으로 뽑는 선거는 재일교포 사회에 비상한 관심을 쏠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동경한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합의추대였다. 현 부회장이 차기 회장을 맡는 게 거의 관례였다.

그러나 48기 회장 선출은 달랐다. 제주출신 2세 김광일(57) 부회장이 회장후보에 나서면서 일부 타시도 출신 재일교포들이 경선을 요구했다.

동경상공회의소 회장 역사상 첫 경선으로 뽑인 제주출신 김광일 회장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들이 내 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경상도 출신이 많은 동경에서 김 부회장 고향이 제주출신이란 게 밑에 깔린 이유였다.

힘들었지만 피할 수 없는 대결이 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승부는 쉽게 갈렸다. 김 부회장이 경선에 나선 최상영 후보를 26대 16으로 10표차로 이기면서 48대 회장에 취임했다.

승부처는 명료했다. 김 회장의 ‘능력’ 이었다. 대한민국 못지않게, 일본 재일교포사회에서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지역주의 때문에 ‘제주’란게 부담이 됐지만, 이미 전임 47기 오찬이 회장 역시 충분한 능력을 이미 검증받은 터였다. 지역주의는 캐캐묵은 잘못된 유산일 뿐임을 김 회장이 입증했다. 일본 수도 동경에 살고 있는 한국상공인들의 수장에 자랑스런 제주인이 뽑히는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고향’으로만 알았던 제주, 도민회 활동하면서 이젠 ‘나의 고향’으로 자리잡아

▲ 김광일 회장. 어렸을 적 가족들이 밤낮없이 식당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이제는 번듯한 사업가로 성공했다. ⓒ제주의소리
하지만 김광일 회장에게도 제주가 가슴에 뿌리내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재일제주인 2세인 그에게 처음부터 ‘제주’가 확 다가왔던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제주’하면 그저 ‘부모님의 고향(제주시 삼양동)’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외국처럼 느껴질 때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제주에 대해 가졌던 김 회장의 감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때 역시 재일제주인 2세인 오찬익 관동제주도민협회장을 만나면서 그의 행로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동경에 있는 제주출신들을 자주 만나 제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도민협회 차원에서 1년에 한두 번씩 향토학교나 탐라문화제에 참석하고, 또 벌초도 가면서 제주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김 회장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어렸을 적부터 고향 제주에 대해 항상 이야기 해 온 부모의 가르침이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는 고백한다.

“우리 2세들이 지금처럼 자란 이후에도 고향 제주가 그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 부모님의 덕택입이다. 자랄 때부터 우리는 ‘조국은 한국, 고향은 제주’라는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들고 컸습니다. 또 제사 지내는 것도 옆에서 지켜보면서 고향을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라 부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제주는 그에게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부모님의 고향’에서 ‘나의 고향’으로 자리 잡게 됐다.

“예전에는 제주에 갔다가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해야 고향에 돌아온 줄 알았는데, 이제는 거꾸롭니다. 제주에 가면 고향에 왔구나란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환환 미소와 고향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나온다.

부모도와 밤낮없이 식당일 하면서 학교마쳐...6년 직장생활 후 사업가로 변신  

지금은 웃고 있지만 모든 재일 제주인들이 그렇듯 김 회장 가족 역시 일본생활은 말할 수 없는 모진 고난이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고초가 가장 컸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부모님이 야키니쿠(갈비) 장사를 했는데, 하루 종일 누나와 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가게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은 우리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을 해 주셨습니다.”

어렵사리 고등학교 마친 김 회장은 다행히도 아는 선배 소개로 부동산회사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일본사회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스무 살. 이곳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그는 결혼과 동시에 6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를 도와 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억척스러움, ‘신용’을 생명처럼 여긴 그의 회사는 차츰차츰 주변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는 동경에 집도 3채나 갖고 있고 파친코와 호텔, 그리고 빌딩 임대업을 하는 번듯한 사업가로 자리를 굳혔다.

먹고 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면서도 도민협회 상공회의소 일에도 남에게 뒤지지 않아 지금은 관동제주도민협회 부회장직도 맡고 있다. 동경 제주사회에선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심인물로 자리 잡았다.

일본사회 차별장벽...불가피한 ‘귀화’ 이해하지만 자식 이름은 여전히 ‘한국 성명’ 고집

성공한 기업인, 존경받는 재일제주인 자리에 오른 김 회장은 이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언인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화두는 두 가지였다. 3~4세들의 진로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고향 제주와 이들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는 게 그의 과제다.

“저희들 때까지만 해도 일본 여자들과 결혼한다는 것은 교포사회에서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세대들처럼 한국, 한국인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게 지금 일본사회의 현실입니다.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거든요.”

▲ 김광일 회장. ⓒ제주의소리
김 회장에 따르면 지금도 1년에 1만 명 이상의 재일교포들이 일본에 귀화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가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 때문이다. 한국의 위상이 한껏 높아진 것은 아실이나 취업 등에서 장벽은 여전하다. 일본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귀화가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제법 자리 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뿌리는 한국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국적이나 이름이 일본을 따르더라도 우리를 낳아준 조국은 ‘한국’, 그리고 우리 고향은 ‘제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조국과 고향에 대한 강한 그리움 때문인가, 그의 조국사랑은 자녀 이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보통 재일교포들이 일본이름과 한국이름을 갖고 있는데 만해 그의 자녀는 한국이름 뿐이다. 한국이름으로 일본사회에서 생활한다.

“1~2세대도 아닌 3세대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모 입장에서 걱정도 되고, 힘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한 것 같지 않습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친구들도 많구요.”라고 말하다.

제주와 점점 멀어지는 3~4세대, 재일제주인-제주사람 교류 가장 절실

하지만 그들(3~4세대)이 고향에 대해 점점 멀어지는 느낌만큼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게 안타까움이다.

“지금 재일교포사회에서 1세대는 5%도 안 됩니다. 3-4% 정돕니다. 1세대는 제주에서 일본에 오신 분들이죠. 우리 2세대들은 아버지 어머니 덕택에 일본에서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을 갖추고 장사해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아 3~4대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도 합니다. 올해가 해방 60년인데, 우리 1세대 선배 대부분이 말고 글도 모르던 일제시대에 일본에 와서 심한 고생을 한 탓에 우리 2세대들이 있을 수 있었죠. 부모님의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도민회를 중심으로 ‘고향 제주를 잊지 말자’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

결국 그의 고민의 종착지는 3~4대에 닿아 있다. 자신들까지는 부모들 덕에 ‘조국은 한국, 고향은 제주’임을 잊지 않았지만 자식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3~4세대는 말도 모르고 제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2세대들이 잘못한 탓입니다. 부모님들이 우리들에게 조국과 고향에 대해 항상 가르쳤던 것처럼 우리가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지...솔직히 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공회의소와 도민회에서 어떻게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3~4세대가 어쩔 수 없이 일본식으로 자란다고 해도 고향을 잊지 않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고향알기 체험활동 등을 마련해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글로벌 제주상공인대회 무척 소중한 행사, 성공하도록 적극 참여” 약속

“3~세대들로 조국은 한국이고, 고향이 제주도란 것은 아는데, 일본에서 생활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일본식으로 변합니다. 일본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좋은 교육, 높은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일본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저희들은 그렇게 성공한 후 한국과 제주에 가서 언어와 문화 역사 등을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주사람과 재일제주인이 서로 많은 교류를 하면서 서로를 배워나가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상호교류를 통한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 회장은 그런 점에서 제주상공회의소가 준비하는 ‘글로벌 제주상공인 대회’는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다.

“글로벌 제주상공인 대회를 위해 제주상공회의소 회장단이 직접 일본까지 방문해 줘 무척 고맙고 반갑습니다. 늦었지만 이런 행사가 마련된데 대해 동경상공회의소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성공되도록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김만덕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고두심씨가 이곳에 왔었습니다. 그 행사에도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 이런 교류들이 재일 제주인들이 조국과 고향 제주를 잊지 않게 하는 끈이 될 것입니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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