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노블레스 오블리즈'
제주의 '노블레스 오블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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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이 사방을 밝히려면 나무 자신의 몸을 태워야합니다"
지난 1월22일자로 <제주의 소리> 자유게시판에 '망촉의 탄식'을 써 주셨던 필명 '헛농군'님이 다시 제주사회 지도층의 참회를 요구하는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주의 소리> 편집진은 헛농군님의 글을 정식 기사로 채택해 올립니다.<편집자 주>

서구 사회의 높은 신분에는 반드시 신분에 걸 맞는 무섭도록 엄한 의무가 수반되고, 또 그것을 먼저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귀족에게는 명예와 부(富) 그리고 권력을 일반시민들이 감히 누릴 수 없는 특권이 부여됐다고 합니다. 그 대신 높은 신분에 걸맞게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앞장서서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여 싸웠을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도의상의 높은 의무가 따랐습니다. 이러한 정신이 오늘날까지 전하여 서구의 상류사회에서는 삶의 가치관으로 여겨질 정도로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나 현재나 그 규모가 크고 작고간에 한 집단에는 지도자가 있고 지도계층이 형성되는데 지도자를 영어표기로 "LEADER"라고도 합니다.

첫글자인"L"은 LISTENING 으로 아랫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여 주는 것으로 독선과 자기주장 이전에,"E"는 Explain 으로 자상하게 설명하여 주는 것이요, "A"는 Assist 하는 것 즉 조력자로서 지도자의 역할이요, "D"는 discuss 로 함께 논의하고 상담하는 것이며, "E"는 Evaluation 으로 지도자로서 점검확인 평가를 잊지 않도록 함이며, 마지막의 "R"은 Responsibility 로서 부하의 공적인 업무추진에 있어서 어떠한 과오나 사회적 물의에 대하여 지도자가 모든 책임을 져주는 것으로 소신 있게 아랫사람이 일 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의 기본적 마인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신분에 알 맞는 여러 가지 특권과 재정적 집행권한이 부여되는 반면 그에 상응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우리 의 식속과 제주사회는 권세 지향적인 측면에만 관심이 고조되고, 의무 지향적인 측면은 생각지도 않는 병리적 현상이 팽배한 게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잘못 전도된 가치관이 제주교육사회에도 수입되어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대한 책임을 져주시고 처방을 할 수 있는 그러한 분이 차기 교육감으로서 교육행정을 펼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주의 과거사 속에서 역대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교육감, 교육위원장, 교육위원님들께서 내가 도정을, 시정을, 의회활동을, 교육행정을 잘못했으니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이상 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은퇴하신 분은 있어도...... 이러다 보니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선거 때만 되면 돈 있는 분, 이름 있는 분, 야망 있는 분, 어중이떠중이 할 것 없이 후보자 되겠다고 온통 제주사회를 흔들어 놓으며, 말장난 대회와 공약(空約) 남발은 물론 도가 지나쳐 무고까지 서슴지 않는 일들을 너무 많이 우리들은 보아왔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정치요, 자치단체장이요, 교육감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교육감이 되고 싶으면 그 지위에 수반되는 권력과 특권을 보지말고, 먼저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자나깨나 생각하여야 할 필요충분 조건인 것입니다.

제주사회의 단면으로서 초상집의 영안실 조화, 잔칫집 예식장의 축전문 등 일년 365일 내내 천편일률적으로 뿌려지는 선심성예산과 이름 알리기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두가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공적업무 처리에 시간이 부족할 것인데도 단체장. 각종 기관장께서 왕림하시고, 초상집 젯상에는 권위의 상징인양 중앙 위치에는 아무아무개 조화가 자리를 하는 세태, 그 많은 돈들은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아닐텐데, 과연 혈세를 막 써도 제동을 걸지 않는 브레이크 없는 예산은 누가 지켜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교육감의 교육이론이나, 행정능력에 관련한 자질의 문제보다는 윤리성의 문제요 양심의 문제인 것입니다. 다행히 관련 사법기관에서 이러한 정황을 은폐하기 이전에 조사를 착수한 것은 제주교육의 미래를 위하여 불행 중 다행으로 거울삼아 밝은 미래교육의 산통으로 수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내려면 녹아야하는 아픔이 따르고, 횃불이 사방을 밝히려면 그 나무 자신의 몸을 태워야하는 자기희생의 고통이 있어야 하며, 한 알의 밀 알이 새싹을 트게 하려면 먼저 땅 밑에서 썩어야 하는 그리고 껍질을 뚫고 나오는 자기몸부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온 세상 분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교육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어떻게 발효로서의 썩음이요, 몸부림에 의한 자기희생 정신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탐심(貪心)을 버리고, 긍심(矜心)을 버리고, 권심(權心)을 버리고, 특히 자중할 것은 승심(勝心)을 버리고, 이심(利心)을 버릴 줄 아는 교육감이어야 할 것입니다. 즉 마음을 진실로 비운 분이어야 합니다.

희랍의 철인 디오게네스는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하여 대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에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등불을 밝히는 마음을 비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이어야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 지역사회에서 여러 가지 유형의 크고 작은 사회단체, NGO 등에서 공동연대를 통하여 교육감 이취임식을 거부, 거부운동이 전개되는 그 진정한 의미를 노블레스 오블리즈에서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제주교육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며 여명을 맞이할 것으로 믿습니다.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거칠어지고 어쩌다가 다른 차가 느닷없이 끼어 들기라도 하면 욕설이나 삿대질을 하기 십상이고, 하다 못해 클랙슨이라도 눌려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육감이라는 핸들'을 아무런 양심의 검증 없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언제 액셀레이터나, 급브레이크를 밟을지 모르는 일이기에 충분한 믿음과 정직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직한 교육사회를 우리 다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봅시다.

2004. 1.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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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ㄹ 2004-01-25 19:23:28
오블리즈가 아니라 오블리주가 아닌가요
127.***.***.1

한라산 2004-01-25 12:25:22
제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진실은 때와 곳이 맞아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었습니다. 그것이 맞지 않으면 옳은 것도 틀린 게 된다. 아니면 옳다 하더라도 이미 힘을 잃고 만다.

저는 네 분의 후보 중 두후보로부터 정책적 조언을 요청받은 바 있습니다. 한분께 이런 말씀을 드렸었지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선거를 치러야 하는 바이니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선거판이 흙탕물이 될 터인데 교육자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나중에 그분의 참모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돕기로 작정은 했는데 돈을 뿌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당장 그만둔다. 그런데 그 두 분 누구도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까, 희극입니까?

노블레스 오블리즈... 이것은 궁극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돌아가시고 말듯이 노블레스 오블리즈 하고자 하나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겁니다. 저는 씨름선수 이만기를 좋아합니다.(이제는 대학선생님이 되셨지요.) 다른 면이 아니라 이만기선수의 뒤집기에 매료되었던 거지요. 이선수가 이봉걸 이준희의 키와 힘에 눌려 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허리의 탄력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뒤집고 말지요. 전세를 역전시키는 이만기의 승리의 원동력은 바로 강력한 허리힘이었습니다.

키는 작으나 강한 허리의 힘.... 그것이 있어서 이만기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겁니다. 다른 후보들은 모르겠으나 그 한 후보만큼은 분명히 노블래스 오블리즈를 의식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의지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하면서도 걱정을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허리힘이 약했던 거지요. 제가 진실의 힘은 때와 곳이 맞아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서두에서 말한 것은, 그 후보의 허리힘을 받쳐주는 '진실'에 대한 충성심들이 때를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반복하거니와 비유컨대 이준희 이봉걸이 극복해내야 할 대상이라면 힘도 키도 열등한 이만기로서는 허리의 힘을 배가하는 것이 가장 큰 전략이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그런 기풍을 위한 실천적인 성원이 없이는 그것은 그냥 불러보는 님의 이름일 뿐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정의가 힘을 갖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위한 용기를 가져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라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뭉쳐지는 힘들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평론가가 아니라 참여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제 겨우 지천명의 언저리에 있으면서 횡설수설했습니다.
1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