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의 흥청거림 아래에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깔려 있었다. 각 상품의 가격에는 이미 모든 정보가 반영되어 있다. 어느 물건의 가격이 너무 낮으면 더 많은 정보를 가진 투자자가 이를 매수하여 가격을 올림으로서 곧 제 가격을 찾게 된다.

그러나 조셉 슈티글리츠 교수는 이 가설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비꼰 적이 있다. 현재의 시장 가격이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따라서 누구도 정보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어 결국은 시장 가격의 왜곡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앙드레 슐레이퍼 교수도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들(noise traders)이 다수이고 제대로 정보를 가진 투자자들이 소수인 시장에서는 종종 영리한 소수보다는 무지한 다수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소수의 영리한 투자자들이 잘못된 가격을 시정하기 보다 왜곡된 시장에 편승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완벽한 줄 알았던 시장

따라서 시장이 진화할수록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지고 이에 따라 모럴 해저드, 기회주의, 해적행위가 증가한다고 보는 것이 최근의 행동경제학의 주장이다.

집을 장만한다던가, 저축한 돈을 안전한 자산에 투자한다던가 하는 모든 거래를 시장 판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유가증권으로 바꾸어 버린 서구 금융기법의 눈부신 발전은 수학적으로 완벽한 금융공학의 개가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을 진원지로 한 이번의 세계적 금융위기는 ‘회의(懷疑)가 수반되지 않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시장에 대한 믿음이 지나쳤던 만큼 경제에 대한 집착도 근시안적이었다. 경제의 성장에도 속도제한이라는 것이 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생산잠재력(potential output)이 있고 매년 이것이 늘어나는 정도가 잠재성장률(potential rate of growth)이다.

그 잠재력에 미달하는 경제성장도 문제이지만 생산잠재력을 초과하여 경제가 과열되는 것도 반갑지 않은 것이다. 속도제한을 초과하여 달리게 되면 필경 후일 인플레이션으로 고생하던가 경제의 각종 거품으로 더 큰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기상황은 속도위반의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경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실제 이루어지는 생산을 생산잠재력 선에 일치시키는 것까지라는 이야기가 된다. 근본적으로 한 나라의 생산능력은 자연적 및 제도적 조건에 의해 제약되며 이러한 제약조건들은 경제외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군사력으로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영토를 넓히는 일만큼 잠재성장력을 키우는 일이 이 없을 터였다. 오늘날은 영토나 자연자원의 크기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인구의 크기, 생산기술, 경영기법 등은 변수가 될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잠재생산력을 키울 수 있는 항목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규제와 감독의 효율성, 부패에 대한 문화적 저항, 정치적 안정,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의 개선 등이다.

그뿐이겠는가. 그 나라의 제도와 문화(culture) 모두가 그 나라의 생산잠재력을 좌우한다.

경제를 이야기할 때 금리, 수출, 소비 등에 경제영역의 변수들을 말하는 것은 일단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영역 내의 여러 항목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여 경제영역 밖에 있으면서도 한 국가의 경제적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항목들, 성장잠재력의 제 구성요소들에 대한 관심은 불균형적으로 매우 미흡하다. 경제에 대한 집착이 정작 경제의 속도제한을 늘리는 과제는 등한히 하는 역현상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재성장력의 요소들

IMF가 수정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 의하면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경제회복 속도가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특히 금년 1/4분기 대비 2/4분기 실적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신흥국가들이 연률로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여 세계의 많은 예측기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거품이 적었던 덕분으로 앞으로도 수년간 서구 경제보다 높은 성장을 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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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동서양의 문명의 다름을 합리주의와 중용의 차이로 설명하는 것은 경솔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의 속도 늘리기보다 속도제한을 늘리는 긴 안목, 그리고 시장과 경제를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보다 겸허(modesty)-겸손보다 ‘분수를 앎’에 더 가까운-라는 동양적 덕목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기를 빈다. / 前 제주은행장 김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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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내일신문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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